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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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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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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어떤 여자분이 평생 시골교회 목사의 아내로 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나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돌보는 딸을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나 죽으면 너 여기서 혼자 어떻게 사냐?
이 서방하고 살면 되지 …
이 서방 죽으면 너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사냐?
엄마 걱정 마. 외로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그렇지 … (끄덕끄덕)

“외로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라는 말은 여러 다른 말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어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또는 “아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어려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평생 청빈과 경건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았던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목사는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의 대부분은 외로웠다. 외로움이란 성도가 그의 성스러움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것 같다.”라고 하였고, “예언자”를 쓴 레바논의 사상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The loneliest man is the greatest man)”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프거나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과 가까워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외롭지 않아도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프거나 어렵지 않아도 하나님께 가까워지려고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일상의 과잉으로 쫓기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일에 관계하며 쫓기듯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는 없습니다. “외로워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라는 말을 뒤집으면 “재미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배부르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 “즐거우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심지어 “행복하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본성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인생이라니 심각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는 삶의 특징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고 경건하게 살았던 이들이 보여준 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심리 특성 중 하나가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산 사람도 은퇴 후에 찾아올 외로움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할 일이 없이 무료하게 될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며 각종 모임에도 열심히 나가고 별 의미 없이 수다를 떠는 수준의 대화에도 참여하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는 것은 일을 쉬기 위함입니다. 일을 쉬게 되면 외롭게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외롭게 홀로 있게 될 시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과 내면은 홀로 있을 때 깊어지고, 성숙해집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 중에는 동굴이나 광야, 산중에서 홀로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가나 철학자나 사상가나 시인도 깊은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인격적 내공을 쌓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이들도 외로움을 통해 경건이 깊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이나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과정은 깊은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서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 호렙산 기슭에서 40년을 양 떼를 돌보며 제국의 왕자로서의 때를 벗고, 이름 없는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외로움을 통해서였습니다. 엘리야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원하던 중에 천사가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사십 주야를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 굴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소생하는 것도 외로움을 통해서였습니다. 신약의 바울도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아라비아 사막 깊은 곳에 들어가 홀로 3년을 보내며 자신의 영혼을 순화(純化)했던 것도 외로움의 과정을 겪은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의 세계는 고독한 자리에 혼자 있을 때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성숙한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 장관인 랍사게로부터 나와서 무릎 꿇으라는 조롱과 협박의 항복을 요구하는 문서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약소국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만 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었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흔적들을 남겼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가까이 한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특징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지낸 대표적인 사람은 에녹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음으로 그는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외로운 상황을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에녹에게서 우리가 받는 깊은 인상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올라갔다는 것이고 또 다른 사실은 그가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지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이 임마누엘인데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의미에서 유추해 보면 에녹은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과 복음 성취의 복을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훨씬 전 계시가 아브라함 시대보다 어두웠던 시대에 살았던 에녹이지만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외로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복과 상을 받았는데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과의 동행이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또 한 사람인 노아를 소개하면서 그 시대의 특징을 후대인들이 거울삼도록 촉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 받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가 수많은 사람에게 의를 전파하였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심각하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의 삶이 힘들고 한없이 외로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의 순종으로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워서 하나님과 가까워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을 때 그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음으로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외로움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대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 받았습니다.

2023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에녹, 노아,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법과 거짓과 폭력과 속임이 만연한 이 시대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길이 참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잠시 심판을 유보하시고 계시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인지상정으로 사람은 누구나 가능하면 피하려는 것이 외로움이고 고독이지만 그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조금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모범을 주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며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과 많은 사람과 종일 분주하게 보내시던 때에도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날이 저물면 주님은 한적한 곳에 혼자 계셨습니다. 인적이 없는 광야에서 홀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예수님, 생활 속에서 늘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시고 자신을 성찰하시고, 사명을 다잡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해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삶에는 반드시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프거나 어려움이 동반됩니다. 외로움은 거룩한 존재로 부름을 받은 이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입니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온갖 것을 다 찾고 추구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는 없습니다. 먹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에 지배받는 일상으로 사는 삶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지향하는 삶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7:13,14, 16:2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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