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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언약 파기-비극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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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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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류의 비극적 종말에 대한 다양한 묵시적 이야기들로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세계가 온갖 재난으로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다는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파국적 이미지가 막연한 불안을 넘어 현실적 공포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연의 종말론적 재난 공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홍수를 이루고 그에 대한 종교적 과학적 정치적 설명도 넘쳐나지만 그러한 주장과 그에 대한 종교적 과학적 정치적 설명까지도 사이비적인 것들이 많아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재난은 왜 일어나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파국적 종말의 공포 앞에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제시되는 종교적 과학적 정치적 대안은 신뢰해야 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재난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와 주장과 대안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그에 대한 논의를 외면할 수 없지만, 그 모든 진지한 질문들도 정작 재난을 직접 당한 사람들 앞에선 재난을 피하거나 살아남은 자들, 그래서 미래를 염려해야 하고 염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조차 사치 인 것 같아서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이 세계는 전쟁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뿐만이 아니라 정치, 종교, 이념, 사상, 인종, 계급, 거짓, 왜곡 등으로 재난 못지않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이 속절없이 당하는 재난과 폭력 앞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재난과 폭력과 질병과 온갖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고통 그 자체도 견디기 힘들지만, 재난이나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합니다. 고통의 이유가 없거나 이유를 알 수 없음은 인간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 허무가 때로는 하나님 부재를 생각하게 하고, 그동안 믿었던 하나님에 대해서도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하는 확신으로 고착되게 하기도 합니다. 욥 같은 의인도 이러한 지경에서 재난과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음에 견딜 수 없어 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가 범하는 결정적인 오류는 '상실'과 '결핍'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소유했던 대상의 상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대상을 결핍하고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울증은 “마치 결핍된 대상을 과거에 소유했지만, 나중에 잃어버리고 만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일종의 자기기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울증의 패러독스는 결핍이 상실처럼 기만적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마치 대상을 소유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 부재 같은 경험은 결코 근원적인 결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울증처럼 애초부터 없던 것을 나중에 가서야 원래 있었다고 착각하는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로 있음을 경험해온 것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상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하나님 부재 경험만큼이나 하나님 현존은 우리에게 너무나 확실한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비극의 사건들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 부재만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희생당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사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차원의 비극적 사건들, 자연재해건 사회적 시스템의 위기에서 초래된 재난이건 인간관계 안에서의 불행한 사건이건 간에 그런 사건들엔 언제나 신학적 해석의 공백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기독교는 현실적으로는 비관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낙관적이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세계관은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현실에서는 의인이 고난을 받아 죽기도 하지만 결국 구원을 받으므로 ‘기독교적 비극’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사의 현실은 정의가 부재한 듯, 하나님 부재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문학적으로 비극과 희극을 가장 쉽게 구분한 사람은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끝나면 비극이고 결혼으로 끝나면 희극이라고 하였습니다. 넓게 보면 비극은 파멸과 죽음이고 희극은 환희, 결혼, 축제, 번식, 재생 같은 것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극과 희극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비극적인 결점’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이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이라고 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비극적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해 비극으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처리방식에 따라 나타나는데 비극은 갈등의 해결책이 없을 때 일어나고 희극에서는 갈등이 결국 해결되는 것입니다. 비극이 주로 죽음으로 끝맺는 것은 문제를 끝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8세기 고딕 소설의 선구자 호레이스 월폴은 “세상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라고 하였고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세상을 깊이 생각하고 깊이 느꼈으나 세상에서 우스개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찾아내지 못해 비극만 썼다고 전해집니다. 인간이 비극을 어떻게 경험하고 느끼고 설명하건 그것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지만 그 설명은 비극 자체에 대한 것일 뿐 비극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파기지만 구체적인 자연재해나 고통을 구체적인 어떤 원인 때문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모든 구체적인 비극을 초월적 차원과 매개시키는 것이 윤리적 또는 정치적으로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학조차도 일단은 침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대지진이나 쓰나미나 자연재해의 원인이 피해자 자신들에게 있다고 하는 그 어떤 종류의 주장이나 신학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당분간은 침묵 가운데 고통의 당사자들을 최대한 애도하고 위로하면서, 고통에 공감하고자 노력하며, 또한 그들의 회복을 위해 연대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재난이 왜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겪는 현실적 비극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합리적 설명들이 주어지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결코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것과 매개된 설명이 많은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낳아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고통의 당사자들 처지에서 생각했을 때 그들이 정말 원한다면, 초월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윤리적 정당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신학적 설명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인간 비극의 원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반역한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비극이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인간에 의한 재난이나 그 원인을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여기 죽음은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ㄴㅣ다. 아담과 하와가 그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죄를 짓게 되었고 그 결과 죽음이 찾아왔으며 그 죽음이 인간 비극의 원인입니다. 창세기의 그 범죄의 사건을 선지자 호세아는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라고 하였습니다.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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