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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미국이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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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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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누가 더 현명(賢明)한지 비교해 달라고 하였을 때 공자는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자공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자공의 이 질문에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과유불급이란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는 뜻입니다.

힘이 센 사람은 무엇이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이 힘이나 지식의 효용을 경험하게 되면 힘과 지식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힘이나 지식을 다다익선이라고 하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지식은 그 어떤 천연자원보다 유용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힘과 지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갖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힘이 세고 어떤 사람은 지식이 많은데, 그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사람보다 적게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힘과 지식 외에도 부와 권력과 재능과 지혜 같은 것도 사람에 따라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로 인하여 인간 사회에는 계층과 계급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여러 가지 능력과 자원을 이용하여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얼마를 가져야 행복한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해야 더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힘과 지식과 부와 권력과 재능 같은 것도 원칙적으로는 그 가치가 다다익선이지만, 문제는 그런 것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아주 밀접한 관계 가운데 존재하면서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유불급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다다익선은 경제학 초기의 중상주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18세기 유럽의 경제는 중상주의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중상주의는 한마디로 무역 흑자 지상주의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중상주의자였던 토머스 먼은 “우리의 재산과 재물을 늘리는 통상적인 방법은 무역이다. 단, 우리가 외국인에게서 사서 쓰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많은 국산품을 팔아야 한다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중상주의를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국왕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많은 금과 은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을 강력히 추진하였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는 초기에는 수요가 많아서 많을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인 현상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상황이라면 수요가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지나치면 해가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채를 과도하게 늘린 것은 경제적 과유불급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다익선의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과유불급인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외운 문장이 "Rome was not built in a day."였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미국에 적용하여 “미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천년 로마 제국을 몇 문장의 글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로마 제국은 부정적인 많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로마 제국은 막강한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인권을 짓밟았지만, 로마 제국을 인정하는 나라와 개인에게 나름의 특혜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도 로마 제국의 그런 정책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혜지만 로마 제국의 정책이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워가시는데 로마 제국을 사용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나 개인들에게 팍스 로마나 정책은 그 나름의 특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을 설명하면서 팍스 로마나도 패러디하여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합니다. 로마 제국이 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팍스 로마나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은 엄청난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팍스 로마나 정책으로 나름 그 힘을 절제하여 제국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 미국만큼 너그러운 경우가 없었다고 하지만 미국이 팍스 로마나를 제대로 패러디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의 힘이 천 년은커녕 백 년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초강대국의 힘을 약한 나라에 폭력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온 세계에 끼친 좋은 영향력도 많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식민지로 출발한 북아메리카가 초강대국이 된 데는 그들의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아메리카에 온 청교도들이나 더 나은 삶을 개척하기 위해 온 자들이나 그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도전한 프런티어 들입니다. 처음 신대륙 북아메리카 동부에 도착한 이들은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며 서부로 서부로 나아갔습니다. 1803년 루이지애나주 매입 전까지 무질서했던 사회는 안정을 찾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일확천금을 노린 이민자들, 카우보이들 등이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며 그들만의 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그들의 노력은 도전과 개척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땅 아메리카에 정착한 그들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미국의 민주주의》에 따르면 아메리카에 정착한 이들은 자연환경에 따른 거친 생활 방식과 습관, 누구나 평등하고 계급 없는 자유, 보편화한 실용주의로 인한 지적 평등,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종교와 정치의 분리, 국민이 참여하면서도 거의 혁명이 불가능한 대의 민주주의를 발전 정착시켰습니다. 또한, 지역 정서, 헌법 해석상의 이견, 노예제를 비롯한 여러 제도상의 문제들로 전쟁과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유럽인, 멕시코인, 흑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으로 형성된 아메리카는 정치적 인종적 차별과 배척과 갈등 등으로 심한 혼란을 겪으며 독특한 다민족의 ‘도가니 문화’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인종과 문화의 차별과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이상적 국가나 사회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땅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메리카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꿈과 기회의 땅이고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처하며 전쟁과 분쟁과 갈등을 억제하며 조정해왔습니다. 미국의 군사력과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력은 전쟁과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는데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국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기는 아마도 9.11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노골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테러국으로 지목하여 전쟁을 벌이면서 대량파괴 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은 세계 모든 비민주주의 나라들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을 믿고 전쟁과 국제적 분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비민주주의 나라들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연착륙시키려 한 그 야심 찬 미국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힘이 센 개인이나 국가는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한 생각은 인간에 대한 무지이고 교만입니다. 힘은 절제를 통해 적절히 사용해야 유용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큰 힘을 갖게 되면 잊어버리게 될 위험이 있는데 미국이 지금 그 위험에 빠져 있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을 비롯한 나토와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라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미국은 러시아를 위협과 제재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과 달러의 위협과 제재가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잘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는 미국과 버금가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식량과 에너지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러시아는 공산품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화들짝 놀란 것은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는데 제재를 가한 미국과 나토와 서방 나라들이 러시아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미국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나토와 서방측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패권국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미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미국이 그 막강한 힘을 절제하여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아직까지는 러시아나 중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쉽게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처럼 미국이 힘을 함부로 사용한다면 미국의 신뢰는 더욱 떨어지고 미국이 사용한 그 힘은 러시아나 중국의 힘을 키워주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 자명합니다. 개인이나 국가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과신하지 않을 수 있는 겸손과 지혜는 무신론자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미국 정부가 미국의 힘을 과신하여 함부로 휘둘러서 사용한 것도 무신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 부재를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하며 울었듯이 미국의 교회는 미국 안에 하나님 부재를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하며 울어야 할 것입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 렘 8:18-22 -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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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지문서님의 댓글

누지문서

한국에 나와 2일째입니다. 이곳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황상하 목사님의 글을 오래동안 봐왔던 사람입니다. 그러데 한국에서 봐서 그런지 이 글을 읽고 어떤 깨달음이 있어  이곳에 올립니다.

첫째,  황목사님은 본인의 글 주장에 대한 반대 댓글이 있으면 다시 한번
새 글을 올리셔서 본인의 주장에 대한 우월성(?) 을 나타내고져 노력하심을 깨닫습니다.  제목을 바꾸었지만 내용은 동일한 소위 " 속 빈 강정 "임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패권국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저는 " 패권안정 이론 "에 대해서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에 그 내용을 인용하는 바입니다.

<<패권안정 이론은 패권국가의 존재 유무에 의해서 국제질서의 안정과 불안정이 결정된다고 말함.
패권국가가 존재하면 국제체제가 안정되고, 패권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불안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장 강한 국가가 국제 공공재를 공급함으로서 국제사회의 안정이 이루어진다고 봄. 국제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 안보측면에서는 침략국을 응징하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환율안정이나 무역체제의 안정 등이 필요하다고 봄. 이러한 응징과 경제적 안정이라는 국제 공공재를 공급할 패권국가의 존재가 국제평화를 이끌어 낸다고 봄. >>

이 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과거에는 영국이 그랬고 2차 세계대전후에는 미국이 그랬고 현재 미국의 패권 세력이 약화되니 러시아와 중국이 이에 도전하는 세계 정세의 모습입니다.

즉, 패권국가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동일하며 그것이 영국이든 미국이든 이제 혹시 러시아든 중국이든 패권국가의 소위 ' 하는 짓'은 똑같은 모습이기에 러시아가 옳고 미국이 잘못했다던가 미국이 옳고 러시아가 잘못됐다는 관점은 올바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혹시 제가 올린 댓글의 주장이 맞다고 동의하신다면 그런 잘못된 관점의 글을 올리며 신앙적인 모습을 가미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성경 본문을 나열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인용한 ' 속 빈 강정 '에 대해서는 고전서적인 연암 산문집에 그 설명이 나옵니다,
" 깨끗하고 예뻐 먹음직스럽긴해도 속이 텅 비어있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 "

혹시 필요하신 분들을 위한 팁입니다.
저는 2개월간 한국에 머므를 예정이며 그래서 한국에 머므르는 동안 미국 거래은행인 Chase Bank 를 비롯하여 금융 결제나 기타 중요 사항을 위한 업무시 " Surfshark" 라는  app 을 노트북에  올리라고  둘째애가 조언을 해주어 이곳에서도 미국에서와 동일하게 문제없이 사용중입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누지문서님의 댓글을 읽으니 뭔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사실 황목사님의 글은 넘 길고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여 이해해봤자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허무한 기분이 들어서 참 읽기 싫은 글들입니다. 그래도 제가 댓글을 다는 이유는 너무 어이없는 거짓정보들이 많고 거기에 혹하는 분들이 많은것 같아서였는데 이 글은 제 능력 밖의 어려운 글이라 포기했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반론을 적어주신 누지문서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사실 황상하님이 가르치려고 하는 이런 내용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제가 정치적 글을 쓰지 말자고 주장했을때 나왔던 반론 중 하나는 "공산주의가 얼마나 기독교를 탄압하는지 아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공산주의를 물리치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복음은 "그런거 상관없다" 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 대해 별 말씀 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독교가 가장 강력하게 부흥했던 때는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했을때였습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면서 기독교는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가장 타락했던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천주교가 국교가 되었을때였습니다. 교황이 왕들을 좌지우지하면서 기독교는 강해졌지만(?) 면죄부를 파는 등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건 뭘 뜻하는 걸까요?

기독교인으로서 정치에 관심가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 황목사님처럼 전문적으로 알 필요도 없고 정치에 기독교가 좌우될 필요도 없습니다. 외부의 탄압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편안할때의 유혹이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정치가 어떻든 패권주의가 어떻든 그저 복음 전하고 이런 글 읽을 시간에 성경 한 구절이라도 더 읽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멘넷에서는 다른 목사님들이 좋은 글 많이 쓰시는데 황목사님은 좀 자제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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