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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평등의 문제14-페미니즘의 과유불급(過猶不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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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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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류 역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불평등한 처우를 받아왔습니다. 가부장제와 종교는 이러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철학도 이러한 사조와 틀을 거스르지 못하였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차이가 곧 여자에 대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취급하였습니다. 또한, 철학은 오랫동안 여성을 학문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러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파악하기 시작하는 사상이 생겨났습니다. 사회계약론과 같은 계몽주의 사상은 자연권으로서 인권을 주장하였고 이는 미국의 독립 선언과 프랑스혁명 시기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등을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고 확신한 이들조차 어린이, 광인, 수형자 또는 외국인들은 무능하므로 정치 참여가 불가하다고 여겼습니다. 인권 선언을 주창한 사람들의 이러한 배제 대상자 가운데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장자크 루소는 그의 작품 《에밀》에서 "성(Sex)을 제외하고는 여성도 남성과 다름없는 인간이지만, 그 성별 차이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따라온다. 다른 도덕, 다른 교육, 지식과 진리에 이르는 다른 차원, 그리고 남성에게 주어진 것과 다른 사회정치적 기능 등등 …"과 같이 서술하여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였습니다. 루소는 성의 분업을 정당화하는, 이를테면, 젠더 담론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였습니다.

루소와 동시대인이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7년-1797년)는 루소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연권이 내세우는 평등과 인권에 어긋나는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였고, 그의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가운데 많은 부분을 루소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하였습니다.

여성주의 철학은 여권 신장 운동과 함께 발전했습니다. 제일 먼저 부각 된 것은 참정권의 문제로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참정권 행사에 여성을 배제하는 것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제일 먼저 논의된 것은 1900년 국민회의였고, 1919년 하원을 통과하였으나 상원에 의해 부결되었고, 1945년이 되어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습니다.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17년에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919년이 되어서야 백인 여성에 대한 참정권이 주어졌으나 유색인종을 포함하는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1965년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928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인정되었습니다. 국가가 아닌 조직에서 의사 결정 구조에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YMCA가 여성 회원에 대해 총회원의 자격을 주지 않은 것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난 것은 2009년의 일이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여성성에 대한 논의는 주로 생물학적 성 구분에 기댄 것이었습니다. 1949년 출간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년 - 1986년)의 《제2의 성》은 여성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명확히 구분하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성 역할은 생물학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중심적 사회의 시각을 통해 남성이 아닌 타자(他者)로 만들어진 여성성을 내면화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후의 여성주의는 여러 다른 형태들로 분화하게 됩니다. 이 분화한 형태의 흐름을 이전 시기, 즉 제1세대 여성주의가 벌인 참정권 운동과는 다른 흐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주의의 "제2의 물결"이라고 합니다. 현대 여성주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과 종교 신념 성/젠더의 역할 등에 따른 생각에 따라 수많은 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철학과 관련이 깊은 사조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 급진적 여성주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생태여성주의 등이 있으며, 실존주의, 해체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다양한 철학 사조 역시 여성주의 철학과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여성주의라는 이러한 광범위한 여성 해방 운동의 일환으로 여성 신학이 생겨난 것은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만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신학은 해방신학의 한 유형으로 발전했지만, 그 영향력과 도전의 강도는 매우 급진적이며 혁명적일 뿐 아니라 매우 다각적입니다. 그 이유는 여성 신학이 바로 성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범주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 신학의 이성에 대한 사고의 전향은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관, 인간관, 문화관, 세계관을 낳게 하고 결국은 여성들을 위한 종교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게 합니다. 여성주의자들은 종래의 모든 학문 영역이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전제 아래, 그 모든 분야에 대한 여성 중심의 연구를 활발히 하여 물리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 영역뿐 아니라 고고학, 문학 인류학, 고전 문헌학 등을 여성의 관점에서 연구하여 인류의 기원, 문명의 발생 및 인류의 역사도 재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성 신학은 이러한 다방면의 연구 결과들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신학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 이단, 마법, 주술 등 모든 사용 가능한 종교적 자료들을 이용해 여성주의적 영성 (feminist spirituality)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여성 신학은 초기의 해방신학의 사회정치적 색채보다는 뉴 에이지 영성을 강하게 띄면서 생태 신학과 결합하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부르짖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 그물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성 신학의 도전은 다각적이며 심각한 것으로서 기독교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주요 종교들도 다 함께 당면한 문제입니다.

여성주의 제2의 물결은 신마르크스주의의 급진전이 아젠다들과 결탁하면서 제1세대 여성주의 운동의 범위와 목적을 한참이나 멀리 벗어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가 남녀 간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을 타파하자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면 이는 여성 뿐만이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여성 차별의 적(適)이 지나친 남성중심주의(男性中心主義)이지 남성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주의는 전통적인 여성관 자체를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모든 설명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까지도 거부하므로 여성의 창조적 정체성을 심각하게 파괴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전통 신학에 대해 여성 신학이 도전하는 것들을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여성들의 반항으로 일축해 버리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반항적인 독소를 바로 파헤쳐 그 위험성을 경계하는 것과 더불어 그 뒤에 숨어있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짊어지고 주님 앞에서 회개하며 우리 자신들이 바로 성경의 이름으로 그 많은 죄악을 저지른 장본인이 아닌지 말씀 앞에 뼈아픈 자성의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미 교회 안에 여성주의가 들어와 있거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여성신학이 자신과 기독교 신앙을 접목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의 변질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주의에 기초한 여성 신학의 기본 전제들이 기독교 본래의 신본주의 신학의 기본 전제들과 출발과 토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향하는바 여성 해방이라는 목표는 성경의 본래 목적인 인간 구원의 맥락에서 볼 때 쉽게 거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형식상으로는 여성 해방이 기독교 구원의 하나의 당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의 복음 안에 여성 해방의 단초들을 발전시켜 결국은 신앙의 본질 자체를 변형시킬 것이 자명합니다.

제1세대 여성주의가 여성도 인간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과 주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페미니즘은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시민혁명의 근간이 된 천부인권론에서 미처 담지 못한 공백을 채우는 사상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이었습니다. 천부인권론이라는 보편적 인권개념은 은폐된 성차별의 영역을 발견하여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현대로 올수록 페미니즘은 여성차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성 역할 구별로 억압을 느끼는 성 정체성이 사회가 허용하는 범주와 맞지 않아 갈등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페미니즘 사상은 근대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분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단수가 아니라 복수 feminisms로 쓰기도 하여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실존주의, 생태주의 등의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개선되고 여권이 신장 되자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실존주의, 생태주의 등의 욕구와 목표 그리고 아젠다를 공유하거나 그러한 사상들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들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고 여성을 나타나는 호칭 사용을 거부하고 여성 성에 대해 긍정적인 묘사, 이를테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표현도 성차별이라고 하여 거부 합니다. 심지어 머리를 짧게 깎아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까지 스스로 거부합니다. 이러한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행동은 단순히 여성 인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부하는 무신론의 극단까지 거침없이 파괴해 버리고 있습니다. 현대 페미니스트들은 미인선발대회를 여성의 삼품화라고 반대하고 낙태 금지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는 20세기 후반 이후를 주도한 문명 코드이자 글로벌 세계를 장악한 문화의 가면을 쓴 마르크스주의로써 공산주의보다 더 심각하게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인류 문명사 위협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끝나지 않는데, 마침내 젠더주의를 통해 기사회생하여 다시금 21세기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젠더주의의 사상적 뿌리인 급진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은 마르크스주의의 지대한 영향으로 세력을 공고히 다져왔습니다. 젠더주의에 자양분을 주었던 68혁명과 성 정치, 성 혁명 이론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건설된 근대 서구 기독교 세계에 총체적으로 반발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킨 68혁명은 네오-마르크스주의(Neo-Marxism)의 영향으로 반체제, 반문화, 반기독교의 기치를 올린 이후 히피(hippe) 문화와 베트남 반전(反戰) 운동을 통해 국제화, 조직화한 좌파 단체들과 결탁하였습니다.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무너졌지만, 북미와 서유럽에서 젠더주의가 강행하는 패륜적 성 혁명을 통해 재기에 성공함으로써 다시금 지구촌을 디스토피아(dystopia)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젠더주의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지만, 사실상 그 둘의 커넥션은 이미 여러 사상적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고 많은 정치 사회 활동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사조 속에는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마르크스주의 망령이 전방위적으로 드리워져 있고 그 파도를 타고 페미니즘은 파죽지세로 보편 가치와 전통문화 그리고 기독교를 지우고 있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하는데, 여성주의는 더는 여성 자신에게는 물론 인류에게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18,22-2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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