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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의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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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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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그 참을 인자가 모자라 세상이 흉악해 지고 있다. 참을 인(忍)자는 마음 심(心) 위에 칼날 인(刃)자로 이루어져 있다. 못 참고 분노에 이르면 스스로 베이고 다친다는 뜻이다.

최근 프리웨이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오렌지 카운티 55번 프리웨이를 달리던 한 젊은 엄마가 몰던 차에 타고 있던 6살짜리 아들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차 뒤에서 누군가가 쏜 총알이 트렁크를 뚫고 날아들어 뒷좌석에 앉아 있던 소년이 비명횡사한 것이다. 운전자인 엄마가 프리웨이에서 운전 도중 다른 차와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가락 욕을 했는데 그 차가 뒤따라오면서 총질을 한 것이다. 무슨 서부활극 찍는 것도 아니고 문명국 프리웨이에서 이런 흉악무도한 범죄가 발생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자 범인을 잡는데 무명으로 5만 불까지 내놓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래서 현상금만 30만 불이 모아 졌다고 한다. 현상금 천만 달러가 모이면 무슨 소용인가? 피기도 전에 저물어간 소년의 목숨만 불쌍하다.

운전하다가 화가 나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깜빡이도 안 주고 끼어들면 내려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왜 없겠는가? 카풀레인에 들어와서 40마일로 달리는 앞차를 만나면 옆으로 빠질 수도 없고 화가 치민다. 클랙션을 빵빵 눌러서 좀 빨리 달려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내차 꽁무니를 바짝 쫓아오는 사람, 좁은 골목길에서 깜빡이를 켜 놓고 더블주차해 놓고 있는 사람, 내 차 앞으로 끼어들어 왕창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도록 골탕을 먹이는 운전자 등등 고약한 행동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걸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욱’하면 살인까지 부르는 결과가 온다.

로드 레이지(Road Rage)란 운전 중에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난폭한 말과 행동을 하며 다른 운전자를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말한다. 코로나에서 서서히 자유로운 일상이 회복되자 길바닥에서 이 로드레이지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오토클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 2013년 이래 로드레이지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300여명, 부상자는 1만3천 명으로 조사되었다. 미국심리협회 조사에 따르면 매년 30건의 살인사건이 로드레이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CNN은 지난 10년 동안 로드레이지가 500%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매일 운전하고 출퇴근하는 길이 이처럼 분노와 공포의 하이웨이가 되고 있다면 백신으로 겨우 회복되고 있는 일상의 평화가 또 위태로워지는 게 아닌가?

내가 개체교회 담임목회를 할 때 한 남자 권사님은 “목사님, 운전할 때 액셀을 꽉꽉 밟아도 덕이 안돼요. 조심스럽게 운전하세요. 브레이크를 마구 밟아대도 안됩니다. 목사로서 덕이 안돼요” 그렇게 겁(?)을 주곤 했다. 목사에게는 ‘특별운전법’이라도 존재한단 말인가? 하긴 내가 무늬 있는 손수건을 들고 강단에 서면 “목사님, 하양색 손수건을 쓰셔야죠, 하양색이 경건해 보이거든요”라고 말 해 주던 ‘잔소리 박사’였으니 그 정도는 참고 넘어갔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지금도 운전할 때면 그 분의 잔소리가 기억날 때가 있다. 난폭운전은 목사에게 결코 덕이 되지 않는다는 잔소리가 내게는 지금도 메시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로드레이지를 비켜가는 길은 우선 내가 참는 것이다. 참지 못하는 사회, 똘레랑스가 무너져가는 사회 속에 그리스도인들까지 화내며 난폭운전에 끼어든다면 이 세상의 운전 길이 얼마나 더 사납고 난폭해지겠는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는 잠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운전수칙 1조가 되어야 한다.

끼어들겠다면 길을 열어주자. 급하게 병원에 가는 임산부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자. 천천히 가면 내가 알지 못할 기막힌 사정이 있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자. 100세 먹은 할머니 운전자, 다리를 다쳤지만 어쩔수 없이 운전해야 할 환자 운전자가 있을 수도 있다. LA에 처음 와서 버벅대는 운전자일 수도 있고 면허 따고 처음 길에 나온 왕초보 운전자일 수도 있다. 4스톱사인이 있는 사거리에서 내 차례 무시하고 냅다 앞질러 가는 운전자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나보다 이해하자. 깜빡이를 켜고 내 앞길을 막고 있는 운전자도 먹고사는 일 때문에 저러고 있나 보다 이해하고 기다려주자.

그래도 화날 일이 생기면 1부터 10까지를 세어보자. 숫자를 셀 때는 이성에 관여하는 ‘좌뇌’를 쓰기 때문에 감정에 관여하는 ‘우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 마인드 컨트롤이 된다고 한다. 급격하게 일어난 분노 호르몬은 15초면 사라진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단 10초만 참아도 분노 조절이 된다는 것이다. 그 10초의 인내로 로드레이지를 비켜갈 수 있다면 이 세상 운전 길은 훨씬 더 평화로워질 게 아닌가?

스톱 시그날을 받고 있던 내가 그린 라잇으로 변한 걸 모르고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를 알아 채리고 미안해서 얼른 액셀을 밟으며 백미러를 보니 내 뒤에 있던 운전자는 빵빵은 커녕 내가 알아차릴 때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름 모를 그 운전자의 10초의 인내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행복했다. 이 못 참는 사회 속에 우리는 10초만 인내하며 살자.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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