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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거스르는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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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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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독일 도르트문트 대학의 통계학과 교수 발터 크래머와 괴츠 트렌글러가 공동으로 “상식의 오류”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흡연과 흡연자가 보건복지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흡연과 흡연자는 보건복지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흡연은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마초나 해시시 같은 마약은 포도주보다 덜 위험하고, 땅콩은 콩류인데 견과류로 알고 있고, 만리장성은 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데 보인다고 생각하고, 모유에는 갓난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만, 모유에는 비타민 D가 전혀 없고, 벌은 침을 쏜 후에 죽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자는 용감하여 대부분 먹잇감을 스스로 사냥하는 줄 알지만, 사실은 다른 동물들이 잡은 먹이를 가로채는 걸 더 좋아하고, 산호는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고, 상아는 코끼리의 이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각고래나 하마, 수멧돼지의 어금니로 만들어지고, 모든 알은 둥글다고 생각하지만, 복상어의 알은 주사위처럼 네모이고, 코끼리의 살갗은 두껍지 않아서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히말라야는 눈과 얼음뿐인 지역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은 대단히 건조하며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 등 상식의 오류 286 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상식은 때로는 이데올로기보다 더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은 상식이 보편적이고 영원하며, 반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어떤 이데올로기로부터도 독립된 가치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5가지 기본 감각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감각들의 교차점에 '공통 감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공통 감각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대에 이르게 되면 상식은 정치와 결합하여 자본주의자에게는 자본주의가 상식이고, 사회주의자에게는 사회주의 이론이 상식이 됩니다. 그러고보면 보편타당한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 논쟁도 일종의 상식 싸움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대중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를 놓고 사람들은 포퓰리즘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상식으로 포장해 대중에게 주입하고 싶어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상식을 이데올로기화 하여 대중을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일반인들이 상식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집단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정직한 학자들은 왜곡되거나 상대적인 상식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검토하여 지적하지만 정치인들은 상식을 규제시스템이나 정치적 권위로 이용합니다.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나 일반적 사리 분별을 의미하지만 매우 추상적입니다. 이 때문에 상식은 끊임없이 악용되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왜곡되어 왔습니다. 개인은 의식적으로 상식의 밖에서 그 상식이 작동하는 과정과 그 힘과 결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식은 언제나 전문적 지식과 긴장관계를 통해 본질을 점검 받아야 하고 개인은 끊임없이 전문지식의 도움을 받아 왜곡된 상식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버지니아대학 역사학 교수인 소피아 로젠펠드가 쓴 '상식의 역사(Common sense: A Political History)'는 상식이라는 것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사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영국의 명예혁명 때부터 프랑스혁명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350년 간의 상식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법이나 이념보다는 어떤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인가를 놓고 벌인 명분싸움의 성격이 강했다고 하였습니다. 프랑스혁명이 진행 중이던 1793년, 혁명 세력들은 루이 16세의 처리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아무리 혁명시기라 해도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왕을 처형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 헌법이 왕의 불가침적 권한을 인정하고 있었던 데다 내란이나 반역을 저지르지 않은 왕을 단지 무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처형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강경파였던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재판정에서 상식을 들이대며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서야 했고 대중과 혁명 세력들은 로베스피에르의 연설이 상식에 맞는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상식은 진리보다는 훨씬 덜 권위적이라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도구로 쉽게 사용됩니다. 17세기 영국 보수주의 철학자들은 회의주의와 무신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상식을 동원했고, 18세기 토머스 페인 등 급진 사상가는 미국 독립혁명에 불을 댕기는 도구로 상식을 부르짖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상식을 외치고, 급진주의자들은 정치질서를 뒤집기 위해 상식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상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식의 한계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의 주장이나 편견을 상식으로 포장해 이용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상식은 집단착각을 일으켜 무거운 무기가 됩니다.

상식은 현실의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매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판단을 간단히 내리도록 해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재능 또는 이 기본적인 재능에서 나온 자명하면서도 폭넓게 공유되는 결론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누군가가 상식을 들고 나왔을 때,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비상식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묘한 이분법을 만들어내어 혼란을 심화시켜 판단을 어렵게 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활동을 어렵게 한 이들은 예수님을 반대한 자들뿐만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상식적 판단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진리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상식적 태도를 엄히 경계하시고 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나 귀신이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여러 번 금하셨습니다(막 5:43, 마 9:30-31, 막 7:36).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바르게 계시해 가시는데 귀신이 끼어들고, 병 고침 받은 자들이 생각 없이 떠들고 다니는 것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방해가 되기 때문에 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런 일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셔야 했고, 쉬지도 못하시고, 오해도 받으시고, 대적들에게 빌미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려움을 겪든 말든 좋은 일이니까 소문을 내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일 하시는 분이라고 소문을 내면 예수님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고 또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겠느냐는 식으로 상식적인 입장에서 처신한 것입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것을 상식의 차원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진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좋다 나쁘다, 또는 바르다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판단할 문제가 못됩니다. 복음 진리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시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을 겸손해서 그러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여 판단하면 예수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해야 하고 소문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것을 명하셨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엄히 경계하신 경우가 여러 번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행하신 이적이 단순히 좋은 일이라는 공익적 차원에서 알려지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문을 내지 말라는 예수님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이니까 그런 명령은 불순종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독교인 중에 기독교가 전하고 가르치는 복음은 매우 좋은 가르침이라는 차원에서 동의하고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나 가르침을 좋은 일이라는 차원에서 떠들고 다니는 것은 공리적인 반응이고, 복음을 공리적으로 반응하며 확산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을 왜곡하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실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이나 액을 물리치고 자기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차원에서 예수님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런 상식적 반응을 예수님은 엄히 경계하고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기복적인 신앙을 추구하고 전하는 것을 금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간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기적으로 병을 고친 사람들은 좋은 일이라는 차원에서 간증을 하고, 그런 간증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것을 금하신 예수님이 오늘날은 기뻐하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오늘날 모든 간증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내는 것을 금하신 뜻은 진리인 말씀 계시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병을 고친다거나,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이라든가, 상식이든가 그 어떤 것이라도 말씀 계시가 확증되는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진리를 상식적으로 대하거나 판단하게 되면 공리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판단으로 진리를 거스려 행동할 위험이 있어서 금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대하거나 실천할 때 상식적 판단을 따르지 말고 진리인 말씀의 분명한 뜻을 따라 순종하도록 특별히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막 7:36)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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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상식이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라 여겼던 부모의 사랑의 상식이 각종 부모자식간의 살인으로, 어린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는 상식이 각종 유아, 영아 살해와 어린이집 등에서의 학대로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상식이 무너질때, 우리는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영원불변의 진리는 오직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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