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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기억하는 존재, 올바른 기억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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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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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많지만, 그중에 중요한 것은 기억과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짐승에게도 어느 정도 기억하는 능력이 있지만, 짐승의 기억은 매우 단순하고 기억 시간 또한 매우 짧고 정보를 축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전과 문화가 불가능하여 천 년 전의 개나 21세기의 개나 같습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동물도 기억을 통한 정보의 축적을 할 수 없으므로 편리를 위해 의자나 세발자전거 하나 만들 수가 없습니다. 동물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기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기억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빵을 먹는다'고 할 때 '먹는다'는 단어는 앞의 단어 '빵'을 기억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적절한 문장이 됩니다. '빵을'이라고 말하고 금방 그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다음 먹는다고 해야 할지 던진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바로 직전의 일을 기억할 뿐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일도 기억하고, 기억만 할 뿐 아니라 기억에 기억을 점점 축적하기 때문에 문화와 문명이 가능합니다. 연필 한 자루에도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더 편리하고 성능 좋은 연필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한, 인간은 기억을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두뇌 밖에 기억하는 장치를 만들어 기억합니다. 책이나 기록, 녹음기, CD, USB, Microchip 등 온갖 기억장치를 통해 기억합니다. 사실 인간 문명은 인간 기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기억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기억하는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기억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계시와 섭리와 통치는 인간이 기억하는 존재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은 언제나 자동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 아니고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해야 할 것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성경은 '기억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기억은 하지만 잘못 기억하거나 왜곡되게 기억하기도 하기 때문에 바른 기억에 대해서도 많은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억에도 바른 기억과 바르지 못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기억에 도덕적인 평가와 판단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억은 단순히 지난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억 자체가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은 지나간 사건이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으로 인하여 많은 갈등과 분쟁과 심각한 문제에 휩싸이게 됩니다. 개인이 겪은 상처와 고통, 국가나 사회가 겪는 수많은 사건 사고 등 인간 역사에는 일일이 다 기억할 수도 없고 또한 잊을 수도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역사는 개인이나 국가 사회에 획기적인 발전과 이익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많은 사건이나 역사는 그것을 겪은 사람이나 후대인들까지 불행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잊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원한을 남긴 사건일수록 후손들을 미래지향적으로 되지 못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그 불행했던 사건이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이며 윤리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가 그의 저서 『기억의 종말』에서 인간의 기억 문제를 윤리와 신앙적인 차원에서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는 기억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하라” 혹은 “잊으라”라고 단순하게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언제’ 기억하고 잊을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심리학적 통찰에 자전적인 고백을 더한 답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볼프는 용서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억의 악순환을 극복할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며 기억과 망각이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사려 깊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올바르고 진실하게 기억해야 하고, 그러나 그다음에는 그 고통을 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 논의의 최종 목표는 결국 ‘사랑’입니다. 이 땅에서 그 사랑으로 인한 화해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소망이 그의 글에 깊이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신학자 콜린 한센이 볼프에게 "기억이라는 주제가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갈등에 불을 지피는 것은, 그것이 개인들 사이의 갈등이든 공동체들 사이의 갈등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미래에 유사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기억의 방패’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방패가 너무나 빨리 칼로 변질합니다. 기억은 나의 고국 크로아티아에서 발생한 최근의 갈등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의 관심은 우리의 기억이 방패에서 칼로 변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기억이 화해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방식을 찾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단순히 기억 자체가 아니라, 바르게 기억하는 것입니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아픔들이 정직하지 못하거나 왜곡되게 기억되어 끊임없이 불행과 아픔의 기억들을 양산하여 발전을 방해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안타까운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억에도 윤리와 신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바른 기억은 불행한 과거를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36년이라는 일제강점의 역사,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를 비롯하여 불행했던 5.18과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행한 역사에 대해서도 기억을 정직하게 해야 하고 그 기억에 윤리와 신앙적 접근을 통해 교훈삼아야 할 부분은 기억해야 하고 잊어야 할 부분은 망각의 무덤에 묻어버려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기억은 확대하여 아픔과 불행을 자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볼프는 잊어버려야 할 기억에 대해 망각하지 않는 한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잊기 위해서만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용서하기 위해서만 기억해야 합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피해자와 상처 입힌 가해자 모두에게 올바르게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랑만이 기억의 종말이자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익을 앞세우는 단체들과 언론들을 통해 날마다 “당신이 당한 악행을 기억하라”는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소리치는 피해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그런 일들이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더 큰 불행을 낳게 하는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볼프는 유고슬라비아 군대에서 스파이 혐의로 심문을 받은 몇 달에 대한 자신의 쓰라린 기억과 면밀한 심리학적 통찰과 신학적 사색을 통해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과 자신과 하나님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의 아픈 과거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적으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모두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억 자체에 대해, 그리고 기억의 내용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행을 당한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만약 그 기억을 잊어야만 한다면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악행이 공동체와 국가 차원에서 행해질 때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지 신학적 접근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기억의 종말이 되게 하는 결론에 다다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될 것입니다. 기억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영적 기억 상실증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 속에 있는 참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알게 된 이후 계속 당신은 내 기억 안에 임재해 계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곳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 안에서 기뻐할 때, 당신을 찾아 만나게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자신의 밖에서 헛되이 하나님을 찾다 이렇게 탄식합니다. “그렇게도 오래되셨지만, 그렇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시는 당신을 나는 너무 늦게 사랑했습니다. 보시옵소서, 당신은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내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참 자신을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참 자신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 속에 있는 나이며, 하나님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참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헛되이 자신의 밖에서 하나님을 찾을 뿐입니다. 어거스틴은 이제 우리의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숨어 있는 참 자신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에게 기억이란 ‘회복된 자아’(the reintegrated self)입니다. 잃어버렸지만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자아, 분열되고 나누어진 자아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찾아가는 것이 바로 기억의 사명입니다. 그 하나님 찾는 여정에서 비로소 바른 기억을 하게 되고 바른 기억의 중요성과 능력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암 4:11-1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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