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무지의 치명성 > 아멘넷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이곳은 2017년 이후에 올려진 글입니다. 이전에 올려진 오피니언 글은 지난 오피니언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멘넷 오피니언

이중 무지의 치명성

페이지 정보

황상하2020-01-18

본문

황상하무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모르는 것의 무지입니다. 무엇을 모르는 무지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문제로서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앎이란 사실 무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가“빛은 어두움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것처럼,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무지는 알고자 하는 욕망의 에너지가 됩니다. 다만 자신이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인정할 때 그 무지는 앎을 향한 에너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지식의 대양으로 항해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에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무한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했던 무지의 지, 즉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지식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입니다.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는 그것을 안다고 믿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 둘째 무지가 그 자신에게는 물론 그가 관계하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상과 영역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플라톤은 무엇을 모르는 무지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무지를 이중 무지라고 하였고 그 둘이 합쳐져서 오류를 만들어 낸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여 한 순간 착각을 할 수도 있고 그 착각의 시간이 몇 시간 혹은 몇 년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한 평생을 착각 속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착각도 오류이지만 착각에는 오류에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류는 고쳐질 수 있지만 착각은 반박을 받더라도 나름의 그럴듯한 변명으로 살아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철학이든 과학이든 전통적인 인간의 사유는 오류에 대해 반박하기 때문에 수정하고 보완하며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오류에 대한 반박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의혹의 철학은 이데올로기적 착각에 빠져 있는 자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그의 숨은 욕망과 이익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사상과 철학과 이념에 대한 분석과 학문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만 하더라도 혼동과 불균형과 서로 상충하는 집단들의 집단이기주의로 인하여 극도의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라는 것이 거의 국가적 비전 차원에서 목표가 제시되고 정책들이 세워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조화와 협력이 아니라 마치 자기 면역체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처럼 서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권력이 충돌하고 노사가 충돌하고 교육계가 충돌하고 법조계가 충돌하고 심지어 교회가 서로 충돌하는데, 이 충돌이 건설적 견제나 비판이 아니라 서로를 제거하는 공멸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을 간파할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나라가 절단이 나도 자기들의 생각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근에 와서 비로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의식이 여전히 국가적 목적과 비전의 확실한 토대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닌 “이제 보니 나쁜 놈들이잖아”라는 식이라서 내일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의 평준화는 다음 세대들의 국제 경쟁력을 형편없이 약화시키고 있으며, 원전에 대한 미신은 에너지 부족을 초래하고 있고, 재벌 억제와 생산 수단의 정부주도, 형편에 맞지 않는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 정치적 이익집단이 되어 버린 노동운동, 지배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선심성 과도한 복지 정책 등은 필연적으로 나라 경제를 망쳐 놓을 것이 분명하지만 나쁜 지도자들이나 무지한 국민들은 거기까지 내다보지 못하고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을 희생할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국민의 뜻”이라는 우상 앞에 보편적 이성이나 합리적 이론과 과학적 분별력도 감히 제시하지 못합니다.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이 이기적이고 무지하기 때문에 바른 길로 인도하고 그릇된 욕망을 억제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개인이나 집단이 성숙하여 모두가 정직하고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한다면 국가라는 기관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뜻은 무조건 옳고 선하다는 것은 미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민의 뜻이 곧 하늘의 뜻, 기독교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해야 하고, 지도자는 국민이 일하기 싫어하고 거짓말 하고 정당하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는 엄히 꾸짖을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 뿐 아니라 학자들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도 그런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지하고 거짓말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국민을 꾸짖을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지도자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국민의 뜻이라고 하면 입을 다무는 형국인데, 정말 국민의 뜻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보신적 처신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나쁜 정치지도자는 자기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이기적이고 무지한 국민을 이용합니다. 나라 살림을 거덜 내는 복지 정책을 펴도 국민은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눈앞의 이익을 좋아합니다. 그 예가 남미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이고 남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입니다. 그 나라들이 어렵게 된 것에 정치 지도자와 국민의 부패도 크게 작용했지만 결정적 실수는 과도한 복지 정책 때문입니다. 복지정책의 극단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과도한 복지 정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산을 위한 노동을 싫어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게 되고 게으름은 필연적으로 가난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한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수준과 경향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파악한 토대에서 한 말씀입니다.

성경적 인간관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능력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입니다. 그 책임은 자신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고 자연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까지를 포함합니다. 절대 왕이나 제도에 의존하거나 노예적 굴종을 하거나 그러한 태도에 따라 남을 탓하는 태도는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태도에도 합당하지 않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도 옳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유달리 남 탓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대통령의 신년 국정 연설에서 그 같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지금의 정부는 과거 어떤 정부보다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정부지만 잘 못된 것은 모두 전 정부나 국민이나 야당이나 언론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하였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청와대에 있는 이들이 하는 발언들을 들으면 거짓과 왜곡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철부지 청소년 아이가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것처럼 여간 불안하지가 않습니다. 대통령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자유, 민주, 경제, 안보, 외교, 교육, 자연 환경, 에너지, 윤리 등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보편 이성에 맞지 않습니다.

앞에 열거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입장과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부라면 국가가 표방하는 이념과 목적에 부합하는 정책을 펴 나가야 하고 무엇보다 보편이성에 부합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정책을 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공산주의인 중국이나 북한과 비슷한 이념이나 정책을 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같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것이라도 비판적으로 심사숙고하여야 마땅한데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의 방향과 정책에 맞추어 가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지금의 정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앞에서 열거한 것들에 대한 국민들의 무지로 인하여 광우병 소동이 벌어졌고, 촛불 시위가 일어났고,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 탄핵이 저질러졌습니다. 이 모두는 보편적 이성과 자유와 법치와 상식에 맞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그런 일들이 나름 정당하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무지가 무지인 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여지지만 이는 나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적 통찰력을 가진 이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와 성리학이 맞닿아 있는데, 이는 곧 자유와 인권이 무시된 조선시대의 노비근성과 사회를 계층 구조로 이해한 사대부들의 뿌리 깊은 남 탓의 습속의 역사와 연계된 무지라고 보는 것입니다.

서양 봉건 시대의 왕과 조선 시대의 임금이 다르고 서양의 노예와 조선의 노비가 다르며, 서양의 법과 조선의 국법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법에 대한 개념도 동서양이 다릅니다. 합리적 보편 이성이 지배한 서양에서는 자유에 따른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었지만 사회적 계약 아래서 질서라는 것이 조선에서는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잘못된 것의 책임은 앞 선 지도자와 제도를 탓하는 습속으로 조선인의 의식에 인지구조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임금의 지배만 있었고 법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 자연재해까지도 임금의 탓으로 돌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모릅니다. 지배자는 통치의 폭력 뒤로 자신을 숨겼고 백성은 지배자에 대한 충성 뒤로 무책임한 자신을 숨겼습니다.

이와 같은 습속을 이어받은 조선이 근대국가로 탈바꿈하였지만 의식은 여전히 조선시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온갖 견문을 넓혔을 텐데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보편이성은 작동하지 않고 형벌과 남 탓만이 작동하는 사회로 남아 있습니다.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책임지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정신과 의식 구조는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경제가 부흥하여 소득이 높아지게 되자 욕구는 점점 늘어 정치 사회적 불만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운 것이 대통령 탄핵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나 동조한 세력이나 반대한 세력이나 침묵한 이들 중 책임지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고 탄핵을 넘고 가야한다거나 덮고 가야한다거나 탄핵을 주도한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자들뿐입니다. 대명 천지에 헌법에도 없는 죄목으로 대통령을 탄핵시켜 놓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었는가를 되짚어 보며 지금까지도 무지를 무지인 줄 모르는 무지에서 깨어나려는 의식 개혁의 어떤 운동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의회가 예수님을 어떻게 처치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를 체포하자니 민란이 일어날 것 같고 그냥 두자니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을 것 같아서 여간 남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공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보았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기가 막힌 신의 한 수를 내 놓았습니다.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온 백성을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였습니다. 그 신의 한 수는 해박한 성경 지식과 높은 신앙의 경륜을 토대로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의 한 수는 그 자신이 하나님도 하나님의 나라도 메시아도 복음도 모르면서 그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중 무지로 인하여 저지른 실수였고 죄악이었습니다. 무지를 무지인 줄 모르는 무지는 그 무지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가야바의 실수는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들과 교회 지도자들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저지르고 있는 이중 무지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요 11:49,5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멘넷 오피니언 목록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등록과 게시물 관리행사광고 안내후원하는 법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42-35 190 St Flushing, New York 11358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