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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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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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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1970년대 한국 최고의 배우였던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한다. 남편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전한 말인데 딸도 못 알아본다고 했다. 벌써 10년째 투병중이고 점점 병은 깊어진다고 했다. 배우 윤정희를 기억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아내의 쾌유를 기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은막의 여왕’이란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위대한 여배우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니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충격이자 금방 마음이 심란해 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윤정희 출연’이란 말에 수년전 아내와 함께 보았던 이창동 감독의 ‘시’란 영화가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된 셈이다.

알츠하이머 하면 우리는 레이건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다. 동서냉전시대를 평화공존시대로 풀어가려던 그의 정치적 노력을 인정받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지난주 레이건 동상이 베를린에 입성하려 했으나 베를린 시정부의 반대로 공공장소에는 세워지지 못하고 결국 치외법권지대인 미 대사관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건은 위대한 정치가였다. 나의 평가는 그렇다.

신사적이고 자상했던 그의 미소를 알츠하이머에게 강탈당하고 그저 남루한 노인네 모양으로 표정 없이 노년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갔을 때 미국 국민들은 참으로 가슴 아파 했다. 워싱턴 내셔널 캐시드럴에서 국장을 마치고 남가주 시미밸리에 묻히기 위해 그의 시신이 옥스나드 해군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석양을 배경으로 서서히 움직이던 운구행렬을 바라보며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를 가진 적도 없고 그런 환자를 직접 경험해 본 적도 없다. 다만 그게 얼마나 비극적인 질병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그 참혹한 아픔을 상상만 하고 있는 정도다.

미 연방 대법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이는 샌드라 오코너 대법관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추천해서 대법관이 된 사람이다. 금년 89세. 오커너 대법관은 라이프 타임이 보장된 대법관 직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2006년 아리조나 초야로 귀환했다. 20여년동안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남편 존 오코너를 내조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인생의 남은 부분을 남편 곁에 있어주기 위해서였다. 아내도 못알아 보던 남편이 200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요양시설에 있던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질투가 아니라 오히려 연민의 미소로 남편의 말년을 지켜주었던 오코너 대법관.

인간관계를 이토록 잔인하게 비틀어 놓는 알츠하이머란 폭군을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지진도 아니고 허리케인도 아닌 것이 이토록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는 이 질병의 행패에 맞설 과학은 아직 죽은 시체처럼 구경만 하고 있는가?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는 전 세계에서 4초마다 한 명씩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의 일종인 이 알츠하이머가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67초, 한국에서는 15분마다 새로운 알츠하이머 환자가 생겨난다고 조사되었다.

만약 가족 가운데 한명이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며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다면 쓰러질 듯 절망하면서 그냥 알츠하이머에게 항복문서를 써주어야 하는 것일까? 반대로 나 스스로 알츠하이머에 걸려들고 있다고 생각될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가정적, 사회적, 신앙적으로 알맞는 행동일까?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하는 여러 방법을 여기저기 뒤져보니 “그렇구나” 공감이 가는 말이 있었다. 우선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주는 너그러운 인격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내가 치매 끼가 있다고 느껴지거나 진단이 나왔을 때 겁에 질려 우울증에 빠지기 보다는 치매에 질수 없다는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좌우지간 알츠하이머는 먼데 있는 병은 아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병이고 내 가족이 그 병에 걸리면 내 평생의 멍에가 될 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와 노력을 동원하여 좋은 약으로 인류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다. 만약 항생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 인류 역사는 오래 전에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 플레밍이란 사람을 사용하셔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인류를 보호해 주셨다. ‘기적의 약’이라 불리는 페니실린으로 1941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이 아스피린이라고 한다. 이 진통소염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세상은 온통 통증병원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비타민C의 발견을 인류의학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괴혈병을 잡는 이 비타민C가 없었다면 영국은 18세기 결코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그깟 몹쓸 알츠하이머도 마침내 굴복시키는 위대한 발견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하나님의 때에 이르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알츠하이머에 맞서는 사랑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요양원에서 아내를 몰라보고 다른 여자와 어울리며 시시덕거리던 남편을 바라보며 연민의 정으로 그의 말년을 지켜주던 오코너 대법관의 그 사랑의 용기.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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