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목사 "조직 속에 숨어 있는 영적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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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ㆍ2022-06-2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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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넘게 걷기 모임에 목사님들이 동참했다. 월요일, 목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함께 걸으면서 건강도 다지고 친목도 하면서 점점 정이 깊어 가는 사이들이 되었다. 걸으면서 말다툼해야 할 이슈가 없다. 그냥 걸으면서 세상사는 이야기, 목회이야기, 때로는 교계 흐름에 대한 이야기 좀 더 나가면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다는 드라마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 몇 분이 목사회 임원이 되어 교계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생각들이 분산되고 목사회 운영에 대한 자기주장이 어필되다보니 의견이 충돌되면서 말다툼이 생겼던 적이 벌써 몇 차례다. 참 이상하다. 그냥 걷기만 하면 좋은 이야기들만 무성한데 단체 안에 들어와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이야기가 변하여 자기주장이 강하게 나타나고 의견 충돌되면서 좋았던 사이가 깨져버리기가 일쑤다.
오래 전 본 영화중에 친구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다. 뭐 숨길 것 없고, 다투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함께 해 주는 친구다. 세월이 지나 준석이란 친구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조직 폭력에 대장이 되고, 동수라는 친구는 그 조직에 함께 할 수 없어 다른 조직원이 된다.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하게 되자 이들은 친구이지만 조직에는 거추장스런 존재가 된다. 친구이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그렇게 좋은 친구가 조직에 몸을 담자 원수가 되어 죽고 죽이는 친구로 변한다.
도대체 조직이 뭔가? 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친한데 조직 안에 들어가면 개인의 정이나 의리는 없어지고 조직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초라한 존재가 되어야 하나?
뉴욕 교계에는 두 개의 큰 단체가 있다. 그리스도의 선한 사업을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이 단체에 소속된 목사님들은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인격있는 목사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계 단체는 싸우는 단체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한쪽은 불법을 저지르는 조직이고 한쪽은 의를 세우는 조직이라 하면서 나누어져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다 선후배 목사요, 친구 목사들이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는 한쪽은 불법조직에 일원이고 다른 한쪽은 의로운 조직의 일원이란다.
서로의 조직으로 나누워져 하나님의 의를 이룬단다. 뭔가 모순되어 보이지 않는가? 이상하게도 개인이 조직 안에 들어가면 개인에 생각이나 주장은 우선이 될 수 없다. 조직이 원하는 거대한 계획과 정책에 개인의 창조성은 무시된다. 무시당한 개인은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자기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조직을 편성하여 조직이 둘로 갈라진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원칙을 규범으로 정해 놓고 다수에 원칙에 의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된 계획이나 정책을 반대했던 다른 조직은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받아들이고 그 정책을 따라 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사는 사회 규범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규범까지 무시하면서 민주주의 질서를 깨뜨리고 개인의 주장을 어필하면 그 개인은 조직에서 잘라내던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없애버려야 한다.
결국 사회 규범이라고 하는 민주주의도 개인보다는 다수를 선택함으로써 개인이 가지고 있는 창조성이나 자율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 이것을 나는 기독교적 시각으로 조직 안에 들어 있는 영적 실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왜 개인이 무시되는 조직이 기독교 단체가 되어야 하나? 기독교 단체는 분명 일반 사회적 단체와 다른 조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교회라는 곳도 단체이고 조직이다. 당회가 있고, 제직회가 있고 조직이 있다. 분명히 일반 사회와 비슷한 조직이다. 그런데 목적이 다르다. 교회목적은 교회가 잘되기 위한 조직도 아니고, 당회장인 목사가 잘되기를 원하는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영적인 실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적인 조직체이다.
즉 모든 개개인 조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기 위한 유기적인 조직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로가 서로를 유기적으로 받들어 주는 조직을 말한다, 손이 발을 돕고, 발이 손이 닫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고, 눈이 보게 해주어 손과 발이 움직이도록 도와주고, 귀가 듣고 말하게 하면서 서로서로 돕는 유기적 조직체라는 말이다. 만일 손이 다치면 온몸이 손을 돕게 된다, 눈이 다치면 귀가, 손이 발이 대신하면서 눈을 돕는다. 어느 하나의 개인적 조직이 무너지면 온몸 전체가 무너지는 유기체란 말이다. 한마디로 개개인을 귀하게 여기면서 서로 연결된 조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단체는 교회 단체인 것이다. 무슨 행사를 한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개개인 목사님들이 서로 존중받으면서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이 되어 약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중심으로 온몸에 조직이 하나가 되어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조직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교계 단체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는 목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목사와 목사끼리 싸우고, 서로 의롭다고, 서로 불법이라고 다른 조직을 만들고, 같은 조직이면서도 전혀 돕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고, 저쪽이 죽든 말든, 잘되든 못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조직이라면 이것은 분명히 사탄의 우리 조직 속에 침투하여 목사와 목사를 갈라놓고, 원수가 되게 하고 교회와 교회를 경쟁하게 만들고, 높고 낮음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랑의 공동체를 깨뜨리고 있는 영적 실체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 주님께서 선교대회를 해라, 전도대회를 해라, 기도운동을 전개하라 하셨는가? 다 사람이 만든 행사요 사업 아닌가? 분명히 사람이 만들어 논 행사요 사업이지만 하나님께서 행사나 사업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그 행사와 사업을 허락하셨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행사와 사업의 성공 유무는 하나님께서 진행하실 문제이고, 우리는 그 사업, 그 행사를 진행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교회를 세우면서 어려운 이웃 교회를 돕고, 목사들 개개인을 존중하고 서로 연합된 유기체가 되어 예수님을 들어내는 조직이 되라 하신 것이 행사나 사업을 허락하신 것 아니겠는가!
그 유기적 사랑의 공동체인 조직이 목적이 되지 않으면 우린 2000년전 예수님께서 오셔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의 조직, 사두개인이나 제사장들의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결과가 계속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5)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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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Moses님의 댓글
Moses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니 지지했던 이쪽이나 반대했던 저쪽이나 거기서 거기였음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결국 마음이 무관심 무관여에 점점 기울어 지고 멀어지게 되니 냉랭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글만큼 주어진 역할과 자리에서 좋은 열매를 보여 주세요.
'뒤에서 책임전가하는 비겁한 소리'라고 일갈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만 자원하여 참여할 수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시는 것 또한 앞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무거운 사명이라고 생각되어 위로의 말씀 아울러 전합니다.
허윤준님의 댓글
허윤준
한준희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모임의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저도 뉴욕에서 지난 25년 동안 연합 사역에 함께 섬기면서 많은 실수도 하고 열심히 잘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으면서 항상 느낀 것이 있는데 바로 가까운 분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늘 기도하는 것은 적어도 교계의 리더들은 세가지의 자격이 갖추어 저야 한다는 것을 늘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정직함입니다. 불법을 보고 다른 사람은 지적하면서 자신은 문제없는 것 같이 생각하는 리더를 세울 때에 그 조직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끝나게 됩니다.
2)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교협은 교회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리더가 세워져야 합니다. 목사회는 목사님과 사모님을 사랑하고 그 목회하는 현장을 생각하는 리더가 세워져야 합니다. 내가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하는 리더가 세워지면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구석 구석 문제만 만들어 낼 뿐입니다.
3) 더 나아가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가지 불합리한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잘 참고 인내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리더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리더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사람으로써의 리더가 세워져야 합니다. 나같은 사람을 리더로 세워서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불합리하고 뭔가 마음에 안맞는 사람이 있어도 내가 주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니까 그 사랑으로 다 이해하고 사랑하며 교계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벌써 두달만 지나면 뉴욕교계의 선거철이 돌아옵니다. 진정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목회자님들과 성도님들과 그리고 함께 사역하는 팀들을 사랑으로 존경함으로 섬겨 주시기를 바라며 저는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