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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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7-10-1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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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말은 누가 한 말인가?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은 스피노자가 한 말로 기억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네델란드 유대계 철학자로서 유명한 범신론자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심지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피노자하면 사과나무요, 사과나무하면 스피노자로 기억하고는 있다. 그만큼 우리는 철썩 같이 그 말은 스피노자가 창작한 말로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은 마틴 루터가 한 말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10월의 남자’다.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여 종교개혁의 방아쇠를 당겼으니 10월이 되면 종교개혁기념일과 함께 그를 기억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10월의 남자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아니라 바로 10월의 남자 루터가 이 말을 했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정말 루터가 한 말 맞아? 그렇게 파고 들어가면 또 2가지 곤란한 주장이 대두된다. 요즘말로 하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루터는 아이제나흐에서 보냈다. 지금은 ‘루터 하우스’라고 작은 표지판이 붙여진 목조 3층 건물인데 이 집은 본래 루터의 고모집이었다고 한다. 고모는 루터가 노래 잘 부르는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집에서 가까운 성 게오르겐 교회 찬양대에서 봉사할 겸 어린 루터를 돌봐주었다고 전해진다. 감수성이 민감했던 루터의 아이제나흐 청소년 시절,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라고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썼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 도시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황제의 소환을 받아 비텐베르크를 출발하여 보름스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옭기고 있을 때 여기 아이제나흐를 지나면서 자기가 어린시절 다니던 예배당에 들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또 하나의 설이 있다. 루터가 한말은 맞는데 어린시절 일기장이 아니라 루터가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을 이끌어 가면서 자신의 목사관에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 가운데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루터는 결혼은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믿고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독신주의에 정면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수녀원을 나온 카탈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그가 가정생활을 꾸리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루터를 몰래 납치해서 자신의 별장인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겨주었던 프레데리히 선제후였다. 그는 비텐베르크에 비텐베르크 대학교와 수도원을 지은 사람인데 루터의 결혼생활을 위해 자신이 소유한 수도원을 도네이션 한 것이다. 그래서 폰 보라와 알콩달콩 신혼살림을 차렸으니 그 집이 바로 지금의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박물관이다.
수도원을 가정집으로 바꿨으니 그 건물 크기가 상상이 간다. 이미 우리 크리스천 위클리의 종교개혁 발상지 여행을 통해 그 집을 가본 사람들은 다 안다. 3층 대 저택이다. 폰 보라 사모님은 이집에 몰려드는 객식구들, 그러니까 신학생, 친구, 고아, 거지등과 거의 집단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루터는 밥 먹으면서 학문적인 대화를 즐기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강의시간이 되기도 하고 변론이 오가기도 하고 좌우지간 시끌벅적 대단한 식탁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9월 이 루터하우스를 또 방문했을 때 나는 대식당 테이블을 유심히 살펴봤다. 원형은 없어졌지만 모형은 전시되어 있었다. 식당 테이블이 얼마나 길고 큰 지 중가주에 있는 허스트캐슬의 대식당 테이블이 연상될 정도였다. 오늘날의 작은 개체교회 사모님들처럼 주일예배가 끝나면 죽어라 음식 만들어 친교실에 상납(?)하는 것처럼 폰 보라도 뼈 빠지게 노동 치면서 그 밥상을 책임졌다고 한다. 채소도 직접 키우고 지하실에서 맥주도 직접 만들고. . . 그런데 이같은 고달픈 사모의 일과 중에도 그녀는 언제나 그 식탁에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 끼어들어 남편과 함께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경청했다고 한다. 이 대식당 테이블에서 주고받은 말들이 나중에 그 유명한 ‘탁상담화(Table Talk)’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루터의 저작물가운데 하나다. 바로 이 탁상담화 중에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나는 내일을 위해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처음 나왔다는 것이다. 탁상담화인지 일기장인지 두 가지 설은 있지만 결론은 루터의 말이지 결코 스피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남의 설교를 베껴서 강단에 서는 설교표절 목사들이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판국인데 그럼 스피노자는 루터의 말을 훔쳐간 명언 표절자? 루터가 16세기 사람이라면 스피노자는 17세기 사람이고 과거사 정리차원에서 그냥 묻고 가면 되는 일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우리처럼 스피노자가 아니라 루터가 한말이라고 다 알려져서 믿고 있는 중이다.
따지고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우리는 철썩 같이 소크라테스가 한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다고라스가 했다느니 탈레스가 했다느니 설이 분분하다.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재판을 받고 나오던 갈릴레오가 한 유명한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란 말도 진짜 갈릴레오가 한 말일까?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전기 작가가 지어낸 말이라고 한다.
좌우지간 루터이던 스피노자이던 그럼 그 유명한 말의 뜻은 무엇인가? 아마도 범신론자인 스피노자라면 사과나무를 희망으로 봤을 것이고 루터에게 사과나무는 복음이란 말이 아니었을까?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복음의 나무를 심겠다.” 자꾸 혼란해지는 이 세상 지나가면서 그래도 루터의 명언처럼 이 땅에 복음 심는 일로 우리의 희망을 삼자.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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