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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근본적 정의는 합리적 판단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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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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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을 6일 동안 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모범을 따라 살 의무와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일, 곧 땅을 충만하게 하고 모든 것을 지키고 다스려 복종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모범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아무런 생각이나 계획 없이 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적 표현을 빌리자면 삼위께서 의논하시고 성찰하시고 계획하시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모범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나 단조로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존재 목적을 지향하여 창조의 결과들이 나타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보고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그들의 창조주로 바르게 인식하고 진심으로 그를 경외하며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영원한 복 가운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낙원에 두시고 그와 같은 특권과 복을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누릴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허용되었지만 오직 한 가지가 금지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세우신 원칙이고 아담이 고안하거나 제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자율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간과 모든 창조물의 유일한 입법자이시고 재판장이십니다(사 33:22). 인간은 그 자신의 입법자가 아니기 때문에 허용된 것의 범위 내에서 무엇이나 할 수 있지만 금지된 한 가지는 행하면 안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모든 명령들(금지명령을 포함하여)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목적에 따라 생각과 행동과 말과 인격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들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게 될 일차적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혼인 제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정생활, 6일 동안의 노동, 일곱 째 날의 안식, 생육과 번성,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 동산을 돌보고 지키는 것 등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야 합니다. 인간이 그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임의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길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한 가지 금령은 허용된 모든 것에 대한 보증임과 동시에 제한입니다. 허용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길을 따라 행하며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고 금지된 명령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는 것이며 파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금령은 인간의 순종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금령이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지 자신의 길을 갈 것이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내신 길 즉 정도를 갈 것인지, 다른 길을 찾으며 방황할 것인지, 아버지 집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살 것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분깃을 챙겨 먼 이방 땅으로 떠날 것인지 증명할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금령이 아담과 하와가 합리적인 이해를 통해 받아들이거나 지켜야 했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금령을 지켜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인간의 능력으로 선악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결정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선악을 정의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것인지를 증명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수많은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한 가지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허용된 천 가지 일보다 금지된 한 가지를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인간은 자기 부정에 있어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견딜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금지되었다는 금지선, 그것으로부터 욕망의 신비로운 힘이 나옵니다. 금지된 것에 대하여 왜,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등 끊임없는 질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의심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왜 먹지 말아야 할까, 왜 하지 말아야 할까, 누구를 위해서일까,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하나님을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금령을 내신 분이라고 생각하기까지에 이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금령은 인간이 그 금령으로부터 나오는 이런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 때 그 유혹과의 싸움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 능력은 무엇을 성취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선악을 정의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지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금령은 인간이 다른 모든 창조물과 구별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낙원에 거하며 모든 것을 누리도록 복을 받았지만 그들이 하늘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긴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행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그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창조 때의 무죄의 상태와 종국에 도달할 영광의 상태에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낙원에는 낮과 밤이 반복되고 아담은 저녁에 잠이 들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며 자연의 변화에 의존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고(계 21:25; 22:5), 어린 양의 피로 구원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계 7:15). 아담은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목마르지만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아담은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었지만 하늘 예루살렘에는 안식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낙원은 매일 매일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필요하지만 영광의 상태에서는 배와 식물 모두가 폐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의무로서의 복을 받아 누리지만, 부활의 때에는 결혼하지도 않고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고 하늘의 천사들과 같아집니다. 아담은 잘못하여 죄를 지을 수 있고 타락하여 죽을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곳에서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아담과 그의 후손은 죄와 죽음의 문제에 매여 살지만 부활한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아담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의 상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었지만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는 아닙니다. 인간은 부패할 수 있고 죽을 수 있으며 아직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낙원에 살았으나 그곳이 하늘이 아니었고 또한 죄를 지음으로 낙원을 잃게 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아담이 소유했던 것은 풍족했지만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그러했듯이 모든 인류에게는 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이 필요합니다. 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결정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절대 선을 추구하고 악을 극복하려고 하는 노력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의 근본은 인간의 합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복이 되고 이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지 인간이 창안하거나 결정하거나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선악의 정의나 기준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을 버리고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을 따라 결정하게 되는 순간 혼란과 방황과 곤란은 심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대 국가들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는 것이 선악의 정의를 합리적으로 결정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해 놓으신 혼인의 제도를 인간이 임의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동성결혼합법화입니다. 최초의 금령에 대하여 인간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방황을 해 온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이설을 합법화 한 동성결혼 합법화는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 자명합니다. 선악의 정의나 결정은 국가나 유엔이나 법정이 판단하고 보증하는 것이 아니고 철학이나 과학을 통해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의 정의는 오직 하나님께서 내리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금령을 어기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간 생명과 복의 근원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사는 데 있습니다. 생명과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그 형상을 드러내는 삶은 생명이고 그 반대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4-2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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