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목사 "범람하는 하나님 말씀"
페이지 정보
한준희ㆍ2022-07-21관련링크
본문
개척 초기, 주일설교를 녹음하여 카세트테이프에 복사한 후에 각 마트에 배포하는 일이 우리 교회 주된 사업이었다. 대체로 주일마다 수백 개의 테이프를 복사하여 배포하면, 어찌되었든 그 테이프가 다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테이프를 가져가는지 아니면 업소 측에서 남은 테이프를 쓰레기 처리를 하는지는 몰라도 설교를 테이프에 복사해 배포하는 일은 중대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교회가 어찌 우리교회뿐이었을까? 설교 카세트테이프는 갈수록 많아졌고, 세월이 좀 지나서는 CD의 출현이 대세를 이루면서 설교 CD가 점포마다 차고 넘쳤던 적이 있었다. 설교 테이프가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말씀이 넘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업소마다 설교 테이프만 넘치는 것이 아니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주말이나 주일이면 종일 목사님들 설교 말씀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TV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사님들 설교말씀은 TV의 주된 방송 메뉴였다.
그래도 아직은 은혜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듣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는 분들이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오히려 하나님말씀은 더 많이 우리 주위에서 외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사마다 목사님들의 설교 동영상이 매주일 수십 편씩 들어온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름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시시각각 동영상으로 올라올 뿐 아니라 동시간대에 아주 생중계를 하는 교회들도 많다. 이제 핸드폰으로 그 모든 설교말씀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성도들마다 이제는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가 서서히 귀에 익숙해졌고, 자기가 선호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매일 인터넷으로 듣고 있자니 우리 담임목사 설교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씀 홍수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는데 교계의 목사들이나 성도들의 신앙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유명목사님이 대형 집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도 모이는 성도가 많지 않다.
벌써 말씀을 듣고 이제는 목사님들의 수준을 평가하는 그런 시대에 온 것 같다.
어쩌면 역으로 말씀이 범람하다 보니 말씀의 귀중성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하나님의 말씀, 일반적인 하나님 말씀을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하는데 로고스적인 말씀은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데, 가슴에 와 닫고 역동하는 레마적인 말씀은 점점 사라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왜 그럴까?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성도들이 다 안다. 10분, 15분으로 요약해서 설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우리목사님은 40분, 50분 설교하여 듣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단다. 그만큼 목사님들의 설교 수준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성도님들이 하도 설교를 들어 수준이 높아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설교가 아닌 성경말씀 그대로를 전한다. 목사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말씀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설교말씀이 아니 성경구절을 그대로 담아 카톡으로 보낸다. 전하는 분은 그래도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말씀으로 인사하고 말씀으로 승리할 것을 소망하면서 카톡으로 성경구절을 보낸다. 이제는 그것을 사명처럼 여기면서 매일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성경구절이 카톡으로 들어오면 어쨌건 한번을 읽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 오늘도 카톡으로 성경 말씀이 들어온다. 설교시간에도 카톡이 도착했다는 알림소리가 들린다. 한 개가 아니다. 많게는 10여군데에서 말씀이 들어온다. 정말 카톡 공해인지 말씀 공해인지 나도 헷갈린다. 카톡이 짜증스러운 것인지 말씀이 짜증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말씀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 읽는 것이 형식화 되어 버렸고, 말씀에 희소가치가 사라지는 듯해서 많이 안타깝다.
어떻게 말씀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고, 말씀이 온통 주위에 깔려 있는데 왜 말씀에 감동은 점점 사라지는가? 이렇게 성경구절이 내 손안에 많이 들어오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강팍해져 가는가?
나는 오늘도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성경책을 세어 보았다. 톰슨성경, 통독성경, 빅칼러성경, 큰글짜성경, 파트너성경, 웨딩성경, 새번역성경, 공동번역성경, 어린이성경, 킹제임스성경, 바른 성경, 주석성경, 현대인성경, 쉬운성경... 정말 많다. 다 하나님 말씀만 가득하게 내 주위에 채어 있는 것같이, 설교말씀이나 카톡으로 들어온 성경구절이 꽂혀져 있는 성경책같이 여겨진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설교말씀, 성경구절, 성경책이 문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문제란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설교말씀으로, 성경구절로, 성경책에서 하나님말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 하나님과 내통하면서 하나님음성을 듣는단다. 그런 분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다 직통계시의 선두자들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했는데 이제는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안 듣고 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이 보기에 말씀의 가치가 상실된 것 아닌가 보여진다.
이제는 많은 말씀보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립다. 많은 하나님 말씀보다 몸으로 말씀하는 그 한사람의 메신저가 보여지길 기도해 본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13:14)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그렇게 생각하는 교회가 어찌 우리교회뿐이었을까? 설교 카세트테이프는 갈수록 많아졌고, 세월이 좀 지나서는 CD의 출현이 대세를 이루면서 설교 CD가 점포마다 차고 넘쳤던 적이 있었다. 설교 테이프가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말씀이 넘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업소마다 설교 테이프만 넘치는 것이 아니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주말이나 주일이면 종일 목사님들 설교 말씀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TV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사님들 설교말씀은 TV의 주된 방송 메뉴였다.
그래도 아직은 은혜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듣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는 분들이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오히려 하나님말씀은 더 많이 우리 주위에서 외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사마다 목사님들의 설교 동영상이 매주일 수십 편씩 들어온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름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시시각각 동영상으로 올라올 뿐 아니라 동시간대에 아주 생중계를 하는 교회들도 많다. 이제 핸드폰으로 그 모든 설교말씀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성도들마다 이제는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가 서서히 귀에 익숙해졌고, 자기가 선호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매일 인터넷으로 듣고 있자니 우리 담임목사 설교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씀 홍수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는데 교계의 목사들이나 성도들의 신앙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유명목사님이 대형 집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도 모이는 성도가 많지 않다.
벌써 말씀을 듣고 이제는 목사님들의 수준을 평가하는 그런 시대에 온 것 같다.
어쩌면 역으로 말씀이 범람하다 보니 말씀의 귀중성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하나님의 말씀, 일반적인 하나님 말씀을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하는데 로고스적인 말씀은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데, 가슴에 와 닫고 역동하는 레마적인 말씀은 점점 사라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왜 그럴까?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성도들이 다 안다. 10분, 15분으로 요약해서 설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우리목사님은 40분, 50분 설교하여 듣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단다. 그만큼 목사님들의 설교 수준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성도님들이 하도 설교를 들어 수준이 높아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설교가 아닌 성경말씀 그대로를 전한다. 목사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말씀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설교말씀이 아니 성경구절을 그대로 담아 카톡으로 보낸다. 전하는 분은 그래도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말씀으로 인사하고 말씀으로 승리할 것을 소망하면서 카톡으로 성경구절을 보낸다. 이제는 그것을 사명처럼 여기면서 매일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성경구절이 카톡으로 들어오면 어쨌건 한번을 읽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 오늘도 카톡으로 성경 말씀이 들어온다. 설교시간에도 카톡이 도착했다는 알림소리가 들린다. 한 개가 아니다. 많게는 10여군데에서 말씀이 들어온다. 정말 카톡 공해인지 말씀 공해인지 나도 헷갈린다. 카톡이 짜증스러운 것인지 말씀이 짜증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말씀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 읽는 것이 형식화 되어 버렸고, 말씀에 희소가치가 사라지는 듯해서 많이 안타깝다.
어떻게 말씀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고, 말씀이 온통 주위에 깔려 있는데 왜 말씀에 감동은 점점 사라지는가? 이렇게 성경구절이 내 손안에 많이 들어오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강팍해져 가는가?
나는 오늘도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성경책을 세어 보았다. 톰슨성경, 통독성경, 빅칼러성경, 큰글짜성경, 파트너성경, 웨딩성경, 새번역성경, 공동번역성경, 어린이성경, 킹제임스성경, 바른 성경, 주석성경, 현대인성경, 쉬운성경... 정말 많다. 다 하나님 말씀만 가득하게 내 주위에 채어 있는 것같이, 설교말씀이나 카톡으로 들어온 성경구절이 꽂혀져 있는 성경책같이 여겨진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설교말씀, 성경구절, 성경책이 문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문제란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설교말씀으로, 성경구절로, 성경책에서 하나님말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 하나님과 내통하면서 하나님음성을 듣는단다. 그런 분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다 직통계시의 선두자들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했는데 이제는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안 듣고 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이 보기에 말씀의 가치가 상실된 것 아닌가 보여진다.
이제는 많은 말씀보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립다. 많은 하나님 말씀보다 몸으로 말씀하는 그 한사람의 메신저가 보여지길 기도해 본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13:14)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