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와 후임자
페이지 정보
조명환ㆍ2018-12-06관련링크
본문
지난주 별세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소개하는 가족사진을 보면 “이 집안이 몰몬 집안인가?” 생각될 정도로 아들, 며느리, 손자, 증손자 등등 대가족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다복한 가정이란 게 한눈에 확 들어온다. 미국 역사상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은 2대 존 아담스와 6대 퀸시 아담스 대통령이 있고 41대 부시 대통령과 그의 장남 43대 부시 대통령 딱 두 부자 뿐 이다. 퍼스트 네임을 어렵사리 기억하는 것 보다 그냥 미국인들은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로 이들 부자를 구분해 왔다.
부인 바바라 여사가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뒤따라 나선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도 너를 사랑해(I love you, too)”였다고 한다. 임종을 지켜본 오랜 친구인 베이커 전 장관은 아들 부시가 병실로 전화가 오자 스피커폰을 틀어놓고 함께 들었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였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아들아,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고 했다.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대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을 땐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아들아. 나도 너를 사랑해. . ” 사실 그 말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죽을 때 의식이 살아있어 그런 말이라도 또렷하게 전하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랴! 요즘엔 말 한마디 못하고 의식 없이 누워있다 가족들과 허무하게 이별하는 죽음이 흔해지고 있다.
‘동서냉전을 종식시킨 품위의 리더’라던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던가 여러 가지 수식어가 그에 붙어 다니지만 사실 그에게 뼈아픈 역사는 1993년 재선에 실패한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재선에 성공하는 게 통례였지만 부시는 아니었다. 41대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도전했으나 경제가 나빠진 탓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친 젊은 클린턴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부시는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백악관을 등지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클린턴 8년 임기가 끝나자 그 아버지 부시의 아들이 클린턴 시절 부통령을 지내다 대통령에 출마한 앨 고어를 보기 좋게 물 먹이고 43대 대통령으로 승리를 거뒀다. 정치라는게 민주당, 공화당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알 수 없는 파도타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정적들에게 보기 좋은 복수의 펀치를 날린 셈이 아니던가? 훗날 아버지는 “내가 42대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대통령이 될 수 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떠오르는 별처럼 기세가 등등해진 빌 클린턴에게 “너 한번 두고 보자”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고 나왔을까? 아니었다. 젊은 대통령 부부에게 너무 감동적인 손 편지를 남겨 놓고 그는 1993년 1월 백악관을 나섰다.
편지에서 아버지 부시는 신임 대통령 클린턴과 그의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겠다는 격려의 말로 시작하여 “더 어려운 시련의 때가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판자를 밀어내거나 공격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이제 당신의 성공은 곧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난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몇 년 후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회상하기를 부시 대통령이 남기고 간 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클린턴이 퇴임 후에 이 41대와 42대 미국 대통령은 너무나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부시는 공화당이요, 클린턴은 민주당이었다. 당이 달랐다. 그래도 ‘위대한 미국’을 위해서라면 쉽게 그 당을 초월했다. 2004년 12월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하여 무려 23만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재난이 지구촌을 엄습했을 때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미국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이 참가하여 재난현장에서 손을 걷어 부쳤다. 바로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달려간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었다. 미국의 위대함은 이런데서 표가 난다. 이들이 타고 간 전용기엔 침대 칸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클린턴이 정중하게 사양함으로 아버지 부시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동남아시아를 오고 간 것이다.
후임자 클린턴은 전임자 아버지 부시에게 쓰디쓴 정치적 패배를 안겨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클린턴의 후임자인 아들 부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임자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두 전임 대통령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재난현장에서 손발을 맞췄다. 백악관을 나가면서 후임자에게 “나는 당신을 응원한 것이요, 당신의 승리가 곧 우리나라의 승리”라는 부시의 손 편지는 거짓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수 틀리면 잡아 넣겠다는 식으로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이 나라의 전임자와 후임자들의 모습이다.
사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나는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시련이 있어도 흔들리지 마십시요”란 따뜻한 손 편지는 백악관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이 교회를 부임하고 떠나갈 때도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떠남의 매너가 아니겠는가?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부인 바바라 여사가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뒤따라 나선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도 너를 사랑해(I love you, too)”였다고 한다. 임종을 지켜본 오랜 친구인 베이커 전 장관은 아들 부시가 병실로 전화가 오자 스피커폰을 틀어놓고 함께 들었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였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아들아,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고 했다.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대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을 땐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아들아. 나도 너를 사랑해. . ” 사실 그 말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죽을 때 의식이 살아있어 그런 말이라도 또렷하게 전하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랴! 요즘엔 말 한마디 못하고 의식 없이 누워있다 가족들과 허무하게 이별하는 죽음이 흔해지고 있다.
‘동서냉전을 종식시킨 품위의 리더’라던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던가 여러 가지 수식어가 그에 붙어 다니지만 사실 그에게 뼈아픈 역사는 1993년 재선에 실패한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재선에 성공하는 게 통례였지만 부시는 아니었다. 41대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도전했으나 경제가 나빠진 탓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친 젊은 클린턴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부시는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백악관을 등지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클린턴 8년 임기가 끝나자 그 아버지 부시의 아들이 클린턴 시절 부통령을 지내다 대통령에 출마한 앨 고어를 보기 좋게 물 먹이고 43대 대통령으로 승리를 거뒀다. 정치라는게 민주당, 공화당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알 수 없는 파도타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정적들에게 보기 좋은 복수의 펀치를 날린 셈이 아니던가? 훗날 아버지는 “내가 42대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대통령이 될 수 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나오면서 떠오르는 별처럼 기세가 등등해진 빌 클린턴에게 “너 한번 두고 보자”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고 나왔을까? 아니었다. 젊은 대통령 부부에게 너무 감동적인 손 편지를 남겨 놓고 그는 1993년 1월 백악관을 나섰다.
편지에서 아버지 부시는 신임 대통령 클린턴과 그의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겠다는 격려의 말로 시작하여 “더 어려운 시련의 때가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판자를 밀어내거나 공격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이제 당신의 성공은 곧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난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몇 년 후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회상하기를 부시 대통령이 남기고 간 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클린턴이 퇴임 후에 이 41대와 42대 미국 대통령은 너무나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부시는 공화당이요, 클린턴은 민주당이었다. 당이 달랐다. 그래도 ‘위대한 미국’을 위해서라면 쉽게 그 당을 초월했다. 2004년 12월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하여 무려 23만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재난이 지구촌을 엄습했을 때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미국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이 참가하여 재난현장에서 손을 걷어 부쳤다. 바로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달려간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었다. 미국의 위대함은 이런데서 표가 난다. 이들이 타고 간 전용기엔 침대 칸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클린턴이 정중하게 사양함으로 아버지 부시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동남아시아를 오고 간 것이다.
후임자 클린턴은 전임자 아버지 부시에게 쓰디쓴 정치적 패배를 안겨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클린턴의 후임자인 아들 부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임자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두 전임 대통령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재난현장에서 손발을 맞췄다. 백악관을 나가면서 후임자에게 “나는 당신을 응원한 것이요, 당신의 승리가 곧 우리나라의 승리”라는 부시의 손 편지는 거짓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수 틀리면 잡아 넣겠다는 식으로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이 나라의 전임자와 후임자들의 모습이다.
사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나는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시련이 있어도 흔들리지 마십시요”란 따뜻한 손 편지는 백악관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이 교회를 부임하고 떠나갈 때도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떠남의 매너가 아니겠는가?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