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우리 시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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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ㆍ2018-12-2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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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역설의 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강림하신 일이 가장 큰 역설이 아니겠는가.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천상과 지상, 영원과 시간이 한 인격체 안에서 서로 만나 인류 역사 속으로 확장되는 단회적 사건을 함께 기념하고 기뻐하는 달이 12월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역설을 제하여 버리면 남는 것이란 없다. 역설이 사라진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닌 것이다.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 역설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다(고전 1:27). 해가 갈수록 성탄의 계절이 지닌 영적 의미는 퇴색하고 상업적 의미가 덧칠되는 것은 성탄절이 지닌 역설과 반전의 의미를 세상이 망각하기 때문이거나 한갓 신화로 여겨 거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탄절의 역설이 사라진 세상에는 물질주의와 성장주의를 동력 삼아 우리의 삶을 피폐케 하는 이상한 역설이 난무하고 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고, /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 버렸고, /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 우주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고, / 세계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더 줄어들었다.”
이 시는 오버레이크 교회(Overlake Christian Church) 밥 무어헤드(Bob Moorehead) 목사가 1995년에 출판한 책 <경우에 합당한 말>에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글이다. 이 시는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역설적 사고를 보태어 계속해서 연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거대 자본으로 쌓아올린 외향적 화려함과 성장을 향한 광기서린 속도감에 비해 점점 벌어지는 빈부간 격차, 정신적 빈곤함, 삶의 의미 상실, 타락한 심성과 오염된 환경으로 황폐해져 가고 있다. 우리 시대 역설 한가운데는 현대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려 이성과 절제의 메커니즘을 망가뜨리는 그 탐욕이 문제다.
시인 임보는 <사자와 사람>이란 시에서 탐욕에 찌들어 더불어 살아감, 즉 ‘상생(相生)’의 이치를 망각하는 인간의 우둔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다.
“배부른 사자는 / 사냥하지 않는다 / 그러나 / 사람은 먹이를 쌓아 놓고도 / 투망을 던진다 / 아직 굶주려 죽은 사자는 / 지상에 없다 / 그러나 / 가장 많이 아사한 동물은 / 인간이다 / 사자는 / 제 몫만 챙기면 / 나누어 갖도록 두지만 / 사람은 / 곳간을 만들어 / 먹이를 가두기 때문이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인 고든 게코의 대사다. 게코는 ‘탐욕’처럼 미국 월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라며 “탐욕은 옳은 것이고, 탐욕이 일을 한다”고 역설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당대 지도자들의 그릇됨을 다음과 같이 거칠게 지적한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56:11)라고 일갈한다. 각기 제 길로 가는 ‘이기적 분열’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이라는 연료로 가는 물신주의 기관차는 전 세계를 종횡으로 여전히 달리고 있다. 절제와 조화와 상생으로 가는 기관차로 옮겨 타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역설’조차도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이 인간되신 역설을 음미하고 묵상하는 때이다. 가장 누추한 말구유에 태어나신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역설 그 자체다. 성탄절은 약함으로 강함을, 죽음으로 부활을,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역설의 지혜를 배우는 계절이다. 인간 역사를 파멸로 이끄는 탐욕을 무력화시키는 강림절의 역설에 기대어 우리가 묵상한다면 기적은 그리 멀지 않다. 온갖 이상한 역설로 가득한 인간사를 되살릴 진리가 그 역설 안에 깃들어 있다. 성탄의 역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소외된 곳, 절망과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반전에 있다. 그 반전과 역설 속에서 인간의 모든 헛된 욕정과 탐욕은 무너진다.
아기 예수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이 역설이다!
이상명(목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 크리스천위클리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 역설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다(고전 1:27). 해가 갈수록 성탄의 계절이 지닌 영적 의미는 퇴색하고 상업적 의미가 덧칠되는 것은 성탄절이 지닌 역설과 반전의 의미를 세상이 망각하기 때문이거나 한갓 신화로 여겨 거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탄절의 역설이 사라진 세상에는 물질주의와 성장주의를 동력 삼아 우리의 삶을 피폐케 하는 이상한 역설이 난무하고 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고, /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 버렸고, /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 우주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고, / 세계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더 줄어들었다.”
이 시는 오버레이크 교회(Overlake Christian Church) 밥 무어헤드(Bob Moorehead) 목사가 1995년에 출판한 책 <경우에 합당한 말>에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글이다. 이 시는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역설적 사고를 보태어 계속해서 연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거대 자본으로 쌓아올린 외향적 화려함과 성장을 향한 광기서린 속도감에 비해 점점 벌어지는 빈부간 격차, 정신적 빈곤함, 삶의 의미 상실, 타락한 심성과 오염된 환경으로 황폐해져 가고 있다. 우리 시대 역설 한가운데는 현대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려 이성과 절제의 메커니즘을 망가뜨리는 그 탐욕이 문제다.
시인 임보는 <사자와 사람>이란 시에서 탐욕에 찌들어 더불어 살아감, 즉 ‘상생(相生)’의 이치를 망각하는 인간의 우둔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다.
“배부른 사자는 / 사냥하지 않는다 / 그러나 / 사람은 먹이를 쌓아 놓고도 / 투망을 던진다 / 아직 굶주려 죽은 사자는 / 지상에 없다 / 그러나 / 가장 많이 아사한 동물은 / 인간이다 / 사자는 / 제 몫만 챙기면 / 나누어 갖도록 두지만 / 사람은 / 곳간을 만들어 / 먹이를 가두기 때문이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인 고든 게코의 대사다. 게코는 ‘탐욕’처럼 미국 월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라며 “탐욕은 옳은 것이고, 탐욕이 일을 한다”고 역설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당대 지도자들의 그릇됨을 다음과 같이 거칠게 지적한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56:11)라고 일갈한다. 각기 제 길로 가는 ‘이기적 분열’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이라는 연료로 가는 물신주의 기관차는 전 세계를 종횡으로 여전히 달리고 있다. 절제와 조화와 상생으로 가는 기관차로 옮겨 타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역설’조차도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이 인간되신 역설을 음미하고 묵상하는 때이다. 가장 누추한 말구유에 태어나신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역설 그 자체다. 성탄절은 약함으로 강함을, 죽음으로 부활을,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역설의 지혜를 배우는 계절이다. 인간 역사를 파멸로 이끄는 탐욕을 무력화시키는 강림절의 역설에 기대어 우리가 묵상한다면 기적은 그리 멀지 않다. 온갖 이상한 역설로 가득한 인간사를 되살릴 진리가 그 역설 안에 깃들어 있다. 성탄의 역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소외된 곳, 절망과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반전에 있다. 그 반전과 역설 속에서 인간의 모든 헛된 욕정과 탐욕은 무너진다.
아기 예수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이 역설이다!
이상명(목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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