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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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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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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성경은 우리에게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받을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말씀은 인생의 삶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준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인생이 그 법대로 살지 않으면 보람된 열매가 없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나의 삶이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오래전 그러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집사람이 교회에 있는 나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그 이유는 옆집에서 사람이 찾아와서는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 차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한번만 더 세우면 경찰에 고소를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곧장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옆집 사람을 찾아갔다. 그 집에서 집사람을 위협한 사람이 나오고 나는 그에게 데이비드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왜 여기다가 세우는 것이 불법인가를 물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드라이브웨이에 차를 세우는 것이 불법일리가 없다고 했다.

그 때에 그의 부인이 나와서 “그런 게 아니고~” 하면서 자기들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차를 우리 집 드라이브 길에 세우면 자기차가 자기 집 주차장에서 나갈 때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꺾을 수 있는 공간이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좁은 길 건너로 바로 앞에 또 다른 차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웃이 되었는데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가 막혀 빼지 못하게 되면 당신이 나에게 전화를 하면 언제든지 빼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필요하면 전화를 하십시오. 그러나 다시는 경찰을 부른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고 친하게 지냅시다”라고 말했다. 그도 역시 좋다고 하고는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날 밤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법에도 맞지 않은 말을 하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 요청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구해도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주실 때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내 옆집 사람이 경찰을 믿고 불렀다고 해도 경찰은 그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법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기도는 들어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세심히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봉사하는 삶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봉사는 내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는 주님의 마음에 맞는 봉사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식당에 가서 이러한 사실을 느끼게 하는 한 작은 경험을 하였었다. 어느 날 나는 우리 집 식구들과 함께 한인 식당엘 갔었다. 그 식당의 웨이트레스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열심히 서비스를 해주었다. 배고팠던 우리 가족은 나오는 반찬을 있는 대로 미리 다 집어먹고 그 웨이트레스는 열심히 새로운 반찬을 날라다 주었다. 어떤 것은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날라다 주었다.

그러는 동안 반찬그릇은 많아지고 나는 나의 밥그릇을 놓을 자리가 없어서 반찬그릇 중에 몇 개를 다른 반찬접시들 위에 포개어 올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그 웨이트레스가 허둥지둥 뛰어 와서는 이렇게 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렇게 놓으면 사장이 자기를 꾸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밥그릇을 상 끝에 놓고 아슬아슬하게 식사를 했어야 했다. 나는 그 때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그 웨이트레스가 열심으로 서비스한 의도가 손님인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지를 않았다. 그 웨이트레스는 자기가 사장으로부터 받을 평가만을 생각하며 손님인 나를 대했던 것이다.

그런 중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나도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이 웨이트레스와 같지는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마치 그 웨이트레스가 “손님은 불편해도 내가 사장님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참아주세요” 하는 것처럼 나도 “주님,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까지 마음에 안 드셔도 참아주세요” 하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주님 앞에서 외식 했던 일들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듯 목회자를 포함하여 우리의 삶에는 항상 사단이 파놓은 “자기 욕심”이라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이것은 누구의 영광과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이냐를 묻는 습관을 가져야할 줄로 믿는다.

이종식 목사, 뉴욕베이사이드장로교회
ⓒ 미주크리스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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