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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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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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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사람들이 좋아할 사람이 못 된 것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존중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존경과 존중을 받는 것은 내가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치는 개인이나 국가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이나 국가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100%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인격과 선한고 의로운 일에 헌신적인 사람일지라도 역시 부족한 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고 개인보다 국가는 ‘좋다’ 혹은 ‘나쁘다’를 더욱 상대적으로 평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국가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에게는 양심과 염치가 있지만 집단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양심이나 염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양심이 깨끗하고 선한 개인이라도 집단의 일원이 되면 그 깨끗한 양심과 선행이 집단의 이기적 목적을 이루는데 기여할 뿐입니다.

교회도 이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국가를 비롯하여 모든 사회 집단은 이기적 집단이지만 가정과 교회는 비이기적 집단입니다. 아니, 가정이나 교회는 비이기적 집단이라기보다 이타적 집단입니다. 이타적 집단인 가정이나 교회가 이기적 특징이 심화되면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교회는 이기적 집단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데,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과 교회공동체가 모두 이타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 집단처럼 이기적이 되면 공동체 구성원의 순수한 충성과 헌신이 하나님이 아닌 공동체라는 집단 이기심에 공헌하게 되고 공동체 구성원은 그렇게 왜곡되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합니다. 사회 집단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기적이 된다고 해도 그 기능상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상 이타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기적이 되면 하나님 나라에 적대적이 되고 이는 곧 교회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물리적 규모나 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해하게 되지만 그러한 물리적 능력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아닙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그라프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실적이나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거룩함과 경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 되어, 즉 거룩함과 경건을 잃어버려 세상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나 교회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70년대만 해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교회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유무식이나 남녀노소의 할 것 없이 그 누구라도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는 교회 본래의 모습이 아닌 교회가 많고 교인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이들이 많습니다. 전에는 믿지 않는 부모라도 자녀를 교회에 보내면서 나쁜 것은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 되어서 교회에 나가면 사람 버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교회의 불법을 취재하고 조사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경제적 비리가 가장 심각한 곳이 교회지만 사법 기관은 여론과 반발과 표를 의식해서 함부로 수사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불법이 자명함에도 사법 기관이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대형교회들은 마치 무죄확정이라도 받은 것처럼 뻔뻔스럽게 처신합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형편이 이런데도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욕하고 비난하는 세상을 탓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문제이기 이전에 교회의 문제입니다. 거룩함과 경건이 없는 교회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경건의 능력을 잃고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은 하나님께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잃고 불법을 행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에게 짓밟히는 교회를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외면당하는 경우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그 역사 또한 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유기(遺棄)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선택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구원이 인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유기는 선택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버리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선택이나 유기는 인간 이성이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성경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인간의 책임 문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선택이나 유기를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책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해제되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로봇에 불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은 인간 이성이나 논리에 제한 받지 않습니다. 이성이나 논리를 만드신 분이 그런 것에 얽매일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말하고 또한 인간의 책임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인간의 책임과 어떻게 관계되는지, 또는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적용되는지 그 신비를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선언하고 서술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유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와 행동과 관계없이 나를 버리셨다는 논리적인 이해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보아 그것이 인간의 행동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인간 편에서 억울하다는 생각은 성경 어디서도 그 정당성의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오해를 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심판 때는 인간의 오해와 억울하다는 생각의 이유 없음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유기는 완전히 버림받는 것이지만, 유기보다는 낮은 단계의 버림이 있습니다. 그 버림은 아주 버림이 아닌 한시적 버림입니다. 한시적 버림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특징이라고 할 만큼 많습니다. 전쟁, 포로, 기근, 사고, 질병, 가난, 고통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습니다. 때로는 외면하시고 때로는 버려두시고 때로는 지나가십니다. 이 모두는 버리심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유기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한시적 버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또는 이스라엘을 버리거나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탄원하였습니다. 한시적 버림이 유기는 아니지만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이 따릅니다. 이 하나님의 외면과 버림에는 너무나 명백한 인간의 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려 자기 하나님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외면과 버림이 반드시 이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버려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버려도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요즘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이 주변국과 우방국들에게 소외되는 현상을 일컫는‘Korea pass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Hell Chosun이나 Korea passing은 좋은 말이 아니지만 전적으로 부인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의 제2차 회담이 곧 열립니다. 북핵 위협의 일차 피해당사국은 한국인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정치에서 Korea passing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결국은 한국을 제외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 정부가 아무리 반미를 해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정부가 하는 정책과 태도로 보아 미국이 주도하는 북핵 문제나 경제 문제나 인도태평양 전략 프레임에서 Korea passing을 의심할만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는 미국 주도 국제정치에서 한국이 아주 버림을 받지는 않겠지만 여러 측면에서의 Korea passing으로 상당한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우방들에게 Korea passing당하는 것은 우방들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한국의 문제입니다.

때때로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이 곧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나 자녀를 우방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게 하는 방법으로 외면하시거나 버리시기도 하십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Korea passing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당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화를 내며 예수님을 언덕으로 끌고 가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려 하였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은 자기들 앞으로 유유히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그렇게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으로 지나가셨다는 것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메시야를 거부하자 그들을 passing하여 메시야의 길을 가셨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당신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말씀하시고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하시며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 이야기, 엘리사와 나아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삼년 육 개월 가뭄으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가 어느 이스라엘 과부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냄을 받았으며,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그 중의 한 사람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도움과 고침이 필요한 사람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Israel passing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절실하고, 한국에 하나님의 보호가 이렇게 절실한데 하나님께서 Korea passing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우방들이 Korea passing을 한다면 그것은 우방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제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 4:25-2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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