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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의식의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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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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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의 딸들과 아내가 특권의식의 갑질로 물이를 빚어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그들의 갑질이 빌미가 되어 한진그룹은 1년간 경찰, 검찰, 관세청, 법무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11개 정부 기관으로부터 동시 다발적으로 수사를 받아왔으며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 압수수색은 총 18회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그의 가족들은 14번이나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야했고 결국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로 조회장은 경영권까지 잃게 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진그룹 조회장의 죽음은 여러 각도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특권층의 갑질, 현 정부의 반 대기업 정책, 여론몰이 또는 기획수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언론의 왜곡 또는 선정적 보도 등이 한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가볍지 않은 문제들입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특권의식을 최대로 드러내고 또한 행사하여 총체적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정부나 공공 분야의 특권은 소위 갑질을 위한 것이 아니고 봉사를 위해 국민이 위탁한 권리인데 국민은 스스로가 위탁한 그 특권에게 견디기 힘든 온갖 종류의 갑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집단에서도 질서와 효율을 위해 특권이 필요하지만 특권의 오용인 소위 특권의식의 폐단으로 한국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고린도는 헬라와 마케도니아 전역에 뻗어 있는 아가이야(Achaia)라는 대단히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로마 영지의 수도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정치, 경제, 학문적으로도 대단히 발전한 문화를 가지고 있던 도시였으며,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고린도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부심과 특권의식을 가졌었습니다. 특권의식이란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그것이 재물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학문일 수도 있고, 특별한 재능이나 가문이나 스펙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런 것을 더 많이 가지고 누리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정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더 나은, 더 구별 된 수준을 추구합니다. 부자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수준의 차를 타거나 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같은 동내에 사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지나친 사치와 낭비는 그와 같은 특권의식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특권의식을 가질 만큼 정치 경제 학문의 수준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정죄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분야의 특권의식이라도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추구하는 가치를 변질시킵니다.

무엇보다 특권의식은 하나님 나라 원리에 반한다는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 가치관에서 특권의식이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가 교인들 가운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인들은 고린도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특권의식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고 학문이 깊고 다른 이들보다 수준 높은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교회 안에서도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기들보다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소외시켰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고 특권의식을 갖게 하는 재물과 학문과 권력과 문화 자체를 나쁜 것이라고 폄하하지 않습니다. 고전 1:4-7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여기“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은 일반적인 지식과 통찰력과 지혜를 가리킵니다. 고린도 같은 좋은 도시에 살아서 누리게 되는 이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특권들 자체도 은혜이지만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사로 활용하게 된 것은 더 큰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은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그것을 인하여 바울은 고리도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학문이나 문화가 복음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참으로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특권의식이란 언제나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지고 많이 배웠다는 사실이 갖는 매력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 구별에 대한 매력이 없다면 부나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도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도 자기가 누리는 특권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자기를 구별하는데 이용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 뿐 아니라 음식으로도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은사들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고린도 교회 안에 진영과 분파, 심하게 말하면 패거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가 있었습니다. 은사를 잘 못 활용하면 이단이 되고 사이비가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와 같은 수준에서 구별하였습니다. 사이비란 특별히 성경을 왜곡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람과 동일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학문과 지혜가 아무리 깊고 탁월해도 그것은 은사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 은사를 가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별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 수준으로 분류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러한 경향은 은사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매력과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학문이 깊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성경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잘하는 사람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유리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잘한다는 것이 곧 성경을 잘 안다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잘 하는 사람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 바르게 믿는 경우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영어권에서 살고 활동하는 사람에게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실력이고 은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성경과 신학 지식도 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특히 이곳 미국 이민 교회에서 한인 2세나 1.5세 목회자들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성경과 신학을 잘 아는 것을 혼동합니다. 1세들 중에는 2세들이나 1.5세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똑똑하고 실력 있는 것으로 인정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성경과 신학 지식이 깊은 2세나 1.5세 목회자를 만나보기가 어렵습니다.

일반 지식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은사로서의 지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서의 지식이 내용을 대체하여 복음이 아닌 지식을 자랑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의 지혜로 복음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는 말로 인간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하였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볼 때 전도는 미련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도의 미련한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인간은 그 어떤 지식이나 능력으로도 특권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말의 지혜와 지식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은사이지만 그것은 복음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미련한 것입니다. 복음이 미련하게 보는 그들의 판단 기준이 자기들의 지식과 지혜입니다. 그들의 지식과 지혜는 헬라의 철학과 그 철학을 근거로 한 판단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과 지혜로 판단해서 납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하면서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니까 그런 복음을 헬라 철학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세상 지식이란 언제나 여기가 한계입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일상의 일을 이해하는 데는 이 지식이 유용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으로 복음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마치 유치원생이 박사 학위 논문을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지식의 관점으로 보면 복음은 어리석게 보인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복음 자체만 그럴 뿐 아니라 그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세상 지식의 관점에서 보면 미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하는 자들은 미련하게 보여서 복음을 믿지 않았고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멸망하는 자들은 아니지만 자기들도 모르게 멸망하는 자들의 삶의 방식을 취하여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고 분열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 바울은 그것의 위험을 경고하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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