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모독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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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9-04-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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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를 신(神)이라고 부르는 것이 신성모독인가?” 라고 교황에게 물으니 교황은 “이론적으로는 신성모독(blasphemy)”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리오넬 메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신으로 추앙받는 축구천재다. 현재 호날두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손꼽히는 메시를 두고 한 스페인 신문이 농담 삼아 교황에게 물으니 “그의 경기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메시는 스페인어로 신을 뜻하는 ‘디오스(DIOS)’와 그의 등번호 10번을 결합한 ‘D10S’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메시와 교황은 모두 아르헨티나 사람들이다. 교황도 남미사람이라 그런지 축구를 좋아하고 당연히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고향사람’ 메시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을 두고 신이라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못 박았다는 기사였다.
메시만 신라고 부르는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연기의 신,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를 놓고도 요리의 신, 골프를 잘한다 하면 골프의 신. . . 이렇게 신이란 이름을 실속 없는 과장법에 이용해 먹던가 아니면 마구잡이식으로 아첨하는데 사용해도 되는 말인가? 교황이 아주 정색을 하고 한 말은 아닐지라도 “이론적으로는 신성모독”이란 말이 꽤 합당하게 느껴졌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한 분파 중에 경건한 은둔형 금욕주의자들이 있었다. 에세네 파였다. 바리새파나 열심당원들과는 전혀 다른 경건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모세 오경을 필사하면서 쿰란지역 동굴을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면 쓰던 일을 멈추고 정화조에 들어가 온 몸을 세척한 다음에 다시 자리에 앉아 그 하나님, 즉 여호와란 글자를 계속 필사하곤 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란 말은 발로 밟지도 않았고 그 말에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늘 비켜서곤 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너무 죄송하여 하나님 대신 그들은 그냥 ‘주님(Lord)’이라고 불렀고 그 분이야말로 바라 볼 수도 없고 만져서도 안 되는 거룩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런데 갈릴리 시골에서 나타난 한 청년이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돌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격노한 것이다. 감히 얼굴을 들어 바라보지도 못하는 지엄하신 자신들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저자의 무엄한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죄목은 신성모독죄였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건 실수였지만 신성모독은 참을 수 없다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 신성모독죄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성경을 불태우면 신성 모독죄로 걸린다. 코란을 불태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신성모독죄가 없지만 지금도 독일이나 캐나다는 신성모독죄가 존재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이 죄가 존재해오다 근래에 들어 없어졌다.
국가에서 법으로 만든 신성모독죄는 그렇다 쳐도 우리들은 한 차원 높은 의미의 신성모독죄로 우리들의 영적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십계명의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명령이시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경솔하고 모욕적인 언행심사를 삼가라는 말씀이다. 신약성경에서도 모든 죄는 용서 받을 지라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
신성모독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건만 우리들은 어떤가?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 경솔하거나 모욕적으로 그 이름을 대한 적은 없는가?
예를 들어 보자. 한 목사님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니 예수님이 너무 반가워하셨다고 한다. “야, 김 아무개 목사야, 참으로 반갑구나!”라며 대환영을 해 주시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천국에 목사가 들어 온지가 하도 오래되어 오랜만에 목사를 만나니 너무 반갑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 모르지만 이런 조크가 바로 신성모독이 아니겠는가?. 목사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예화가 설교시간에 선포되고 있다면 존귀함을 받아야 할 주님의 존재를 코미디 배우로 전략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목사님이 넥타이를 풀어 제키고 강단에 오르는 것까지는 좋다고 해도 그 자유로움에 취하여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강단마저 코미디 극장으로 전락시킨다면 이건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내가 한번은 그런 농담을 했다. 어느 모임에서 나에게 식사기도를 시키길래 “내가 요즘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를 했다하면 길어지는데 여러분, 길어도 상관없겠습니까?”라고 너스레를 떤 것이다. 거기에 왜 충만하지도 않은 성령충만이 들어갔을까? 하나님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값싸게 이용해 먹는 게 바로 신성모독이려니 생각하고 회개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좀 잘한다 싶은 사람을 신이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신성모독이라 했는데 기독교인들이라면 하나님이나 예수님 이름을 팔아 농담 따먹기 하는 신성모독죄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지 말자.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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