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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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9-09-0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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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은 그랜드페어런츠 데이, ‘조부모의 날’이다.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이 있는 미국에서 조부모의 날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란 말만 나오면 귀찮은 꼰대, 잔소리 쟁이, 낄 데 안 낄 데를 분간 못하는 주책, 그래서 늘 뒷전으로 밀어내려는 ‘젊은 것들’의 숨어있는 구박 때문에 쉽게 지켜지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경축일이 이날이다.
조부모의 날은 1956년 웨스트버지니아에 살던 마리안 맥퀘이드(Marian McQuade)란 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들에게 서서히 잊혀 지면서 양로원에 머물고 있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커뮤니티 차원의 행사를 마련한 것이 조부모의 날의 기원이 되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1973년에 이르러 조부모의 날을 처음 제정한 주가 되었고 맥퀘이드 여사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 날을 지켜야 된다고 발 벗고 캠페인을 벌인 결과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 내셔날 할러데이로 정하는데 성공했다. 그해부터 매년 노동절이 지난 첫째 주일을 조부모의 날로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적인 연방공휴일은 아니지만 경축일로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언뜻 보기엔 꽃집이나 대형 카드회사들이 로비를 벌여서 탄생된 날처럼 보이지만 전혀 상업적인 목적이 배제된 순수한 민간효도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꽃집이나 홀막같은 카드회사에 따르면 조부모의 날은 크리스마스, 발렌타인스데이, 어머니 날이나 아버지의 날, 부활절, 핼로윈, 댕스기빙과 비교하면 잽도 안된다고 한다. 심지어 세인트패트릭스데이보다도 뒤처지는 세일즈 실적을 갖고 있다고 하니 아! 서글픈 조부모의 날!
그러나 우리 이민자 사회의 조부모들은 정착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오고 있는 자녀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가정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소리 없이 흘러온 큰 강물이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죽순처럼 무섭게 솟아오르는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징검다리 노릇을 마다않고 소통의 불편함과 문화적 고립을 용기 있게 감내해온 어른들이 아니던가?
생애의 마지막 수년을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다 돌아가신 필자의 장모님은 우리 집 1남1녀에게도 그런 할머니셨다. 결혼하여 이제 중년에 접어든 아들이 UC버클리에 들어갈 때 기숙사로 짐을 싸가지고 들어가는 ‘무브인 데이’에 할머니도 함께 동행했었다. 기숙사에 짐을 챙겨주고 이튿날 아침 헤어질 때 할머니와 손자는 기숙사 앞에서 부등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 . 일년에 한 두번 집에 다녀갈 때마다 할머니는 떠나가는 손자의 자동차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그리고 어렵사리 모은 용돈을 손자의 손에 쥐어 주셨지만 말은 없으셨다. 그냥 눈으로 하는 말이었다. 사랑한다고. . .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
아들은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인생의 메모리칩에 간직하며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분의 3주기를 앞두고 지난주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할머니의 기일이 다음 주라고.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어떻게 바쁜 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니?” “매년 1월이 되면 달력에 다 표시하고 있어요.”
아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조부모와 손주들과의 소통은 사랑 하나로 충분하다. 미국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들과의 언어소통도 어려운데 조부모와는 더 어려울 수밖에.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엔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사랑이란 폭포수가 흐르고 있음을 손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우리 손자 손녀들이 자랑스럽게 떠오르고 있는 이 땅의 별들이 되어가고 있다. LA시의회에는 자랑스럽게도 이제 2명의 한인 시의원이 탄생했다. 주 의회나 연방의회로 진출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LA한인들에게는 더 큰 긍지요 자부심이다. 지난 주말 여자프로골프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예리미 노’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LPGA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금년 18세의 이 골프천재 말고도 LPGA를 누비는 자랑스러운 한인 2세들을 보면 눈물 나게 자랑스럽다. 이들을 길러낸 부모들의 노력은 물론이지만 조부모들의 눈물의 기도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주 나에게도 조부모가 되는 행복한 뉴스가 찾아왔다. 아들집을 방문하니 며느리가 벌써 임신 8주 째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You are going to be Grandparents"라고 새겨진 작은 액자를 우리 부부에게 선물했다. 가운데는 흑백 태아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럼 나도 드디어 늦깎이 할아버지가 되는 건가?
그날부터 나는 머리 숙여 기도할 때마다 세상에 나오기 위해 워밍업을 하고 있는 그 새생명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 나 뿐이겠는가? 모든 조부모들은 이처럼 자랑스럽게 세상으로 진군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손주들을 위해 한결같이 기도해 온 것이다.
내가 양로원에 누워있을 어느 날 멍하니 창밖에 시선을 두고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그 무료한 순간에 뚜벅뚜벅 고요한 양로원 복도의 침묵을 깨고 걸어오는 내 손주가 아름다운 꽃다발을 손에 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 질 행복의 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보다 먼저 양로원에 누워 있는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 행복을 선사하자. 손주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부모와 손자, 손녀가 합작품을 만들어서라도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가을낙엽처럼 저물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행복의 순간을 선물하자. 금년 조부모의 날에는 . . .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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