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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인간의 불신과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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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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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으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활도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당시 사람들과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과 자신의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동일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오해하여 잘못된 신앙의 태도를 보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사실을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갑자기 자의로 결정하신 일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대로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갑자기 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대로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이 믿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 계시가 없었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그렇게 탓하거나 나무랄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일로서 그 예언을 읽고 배운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은 책망받을 잘못입니다. 그들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어서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었음에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터무니없이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믿을만한 근거와 토대와 이유를 주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가 우리의 불신을 변명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한 제자들의 불신과 잘못을 지적하고 책임을 물으시는 일보다 그들이 부활을 믿도록 하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 정당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수준이고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나름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수준이고 한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수준과 한계를 전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복음도 구원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부활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고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일이라고 하여도 믿지 못하는 것은 인간적인 표현으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리와 법칙에 따라 온 우주가 유지되고 진행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리와 법칙을 벗어나는 초자연적 일에 대해서는 비록 예언된 일이라고 하여도 인간은 놀라게 되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도 부활을 비롯하여 과학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는 초월적 일은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신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극복해 가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초월적 일을 믿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관계된 일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이 죽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도 예수님의 죽음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바르게 믿고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도들이 예수 부활의 복음을 전할 때에 강조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대로 부활하셨는데 그 예수님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는데 그 예수는 다름아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내가 몹시도 괴롭히다가 죽인 사람이 살아났다면 누구나 보복을 두려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핍박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가 살아났으니 지은 죄에 상응하는 보응이 예상됩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해도 죽었다가 살아난 존재는 살아 있는 자가 당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기에 그기 보복을 허려고 한다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살아난 것은 충격과 두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사도들의 대답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죽인 죄에 대한 그 어떤 문책이나 벌도 없을 것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약속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이 자신들이 죽인 그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직면했던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약속된 구원을 받은 감격과 그 후 그들이 참 교회로 세워져 가게 되었던 구체적 사실들을 우리가 따라야 할 본으로 삼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온갖 핍박을 받고 극형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는데, 그 부활의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인 범인이 내 자신이라는 오금이 저리고 뼈가 떨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과 두려움을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의 동기와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성경의 진술은 곧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라고 한 것은 당시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자들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지목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충격과 두려움 가운데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던 이들이 보여준 바른 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2:37-47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6-38).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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