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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의 6.25, 전화위복의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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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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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 내리 이 나라 이 겨레”해마다 6.25가 되면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 이 6.25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6.25는 삼척동자의 시각으로 보아도 명약관화하게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전쟁입니다. 6.25의 노래 2절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라고 규정짓고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원한을 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침을 감행하고도 남한이 북침을 했다는 북한의 적반하장에 남한의 국민들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더욱 우리의 복장을 터지게 했던 것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 사르트르 같은 자가 6.25 북침설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서구 세계에서 사르트르의 지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제는 게 편이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에 끌렸던 이들은 사실 진위와는 상관없이 북한이나 소련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지도 상에서의 공산주의는 소련과 중공에 의해 유라시아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절반인 남한만 공산화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구 사회의 주류 지식인들은 거의가 마르크스주의에 기울어 있었고 심지어 미국까지 공산주의와 타협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철저한 반공 사상과 정책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은 존재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극단적 반공주의자였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남한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대했던 자들은 지금까지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사상을 반민족적 반역 행위라고 비판하지만 세계사조의 구도에서 볼 때 자유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 경제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반공은 위대한 건국의 초석과 같았습니다. 공산화의 붉은 물결에 유라시아 동쪽 끝자락에 붙어 있는 한반도의 절반인 남쪽이 삼켜지지 않고 살아남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탁월한 반공사상과 박정희가 혁명공략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고 한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강정구 교수 같은 이는“한국 전쟁은 통일 내전이다. 맥아더가 원수다. 맥아더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조국은 한 달 안에 통일 되었을 것이다.”라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5년ى월 30일 한반도 정세 토론회에서 䄞.25전쟁은 통일 내전 광복 후 공산주의를 택했어야 했다”는 발언을 했고, 또한 䄞.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 달 안에 전쟁은 끝났고 인명 피해는 1만 명 이하였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보주의 성향이 강했던 강원용 목사까지 이에 대해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교수가 대한민국 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도 빨리 끝나고 통일도 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북한에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6.25전쟁 때 시골에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 숨어서 지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때 구덩이 속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서서 춤을 췄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강정구 교수를 비판했습니다. 또한 인터넷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올린 기고문에서 “북한이 한반도 전쟁의 주범이나 주적이 아니라 미국이 바로 주범이고 주적”이라며 “전쟁주범이면서 주적인 미국에게 한미동맹과 한미공조 운운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과 같은 자살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을 제국주의 또는 학살자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자신은 미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았고 그의 아들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미국에서 살게 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진정 좋다면 그 자신이 공산주의 국가에 가서 살고 자식도 그렇게 좋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게 하는 것이 정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레이몽 아롱의 말을 빌리면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고 했는데 강정구 교수는 정직하지 못한 좌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정구 교수처럼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정직하지 못한 좌파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이나 이곳 미국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정치, 종교, 사상, 학문, 문화, 예술, 경제, 외교, 군사 등 많은 분야에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들이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러한 사조를 나는 성경과 기독교의 이름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시대사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고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 나라 왕이신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는 것이 그 나라 백성의 마땅한 태도라고 믿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가 왜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지만, 목사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치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고 신학교에서 정치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학교에서는 정치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교회와 노회와 총회는 성경의 원리를 따른 정치 원리로 치리를 합니다. 정치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성경에 대하여 무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치 뿐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관심을 쏟으시고 그의 백성들도 하나님과 함께 그 모든 것에 관심을 쏟으며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신론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거부하게 되면 그 결과는 인간을 절대화 하게 되고 인간을 절대화 하게 되면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는 사람을 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정치를 거부하고, 개발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개발 자체를 반대하고, 법의 미비한 점 때문에 모든 법을 거부하고, 몇몇 경찰의 잘못 때문에 경찰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전형적인 무신론 좌파들의 논리 패러다임입니다.

6.25 같은 침략 전쟁은 어느 지역이나 나라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인류의 불문가지 소망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쟁의 결과가 아무리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수단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정쟁이라도 그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 보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흔히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섭리로 역사를 운행하시고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이나 광야를 통과 하는 것이나 바벨론 포로 생활 등의 부정적인 역사들의 긍정적인 면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6.25를 기억하는 이 주간에 6.25의 비극적인 면만을 기억하고 원한을 부추기거나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6.25는 약 140만 명으로 추산 되는 희생자를 낸 엄청난 유혈 참극의 잊을 수 없는 민족의 비극이지만, 그 참극의 과정과 결과를 통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기여를 한 측면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원한을 불태우며 복수의 칼을 가는 것보다 지혜로운 유비무한의 미래지향적 태도일 것입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복음을 일찍 받아들였고, 복음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개명되었습니다. 따라서 북한 지식인 계층과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북한 공산당이 점점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중에 6.25를 감행하자 북한의 지식인 계층과 부자들은 거의 모두 공산당을 피해 1.4 후퇴 때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결과 북한에는 지식인 계층과 경제인 계층의 인적 자원이 고갈되어 아무런 저항 없이 공산주의로 떨어졌고 남한은 지식인과 경제인 계층의 인적 자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한 조선은 후견인도 없는 고아처럼 국제사회에 던져졌는데 북한은 소련이라는 후견 국가에 입양이 되었고 남한은 미국이라는 후견 국가에 입양이 된 셈입니다. 공산당을 피해 월남한 지식인들과 경제인들로 인한 남한의 인적 자원의 폭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을 위한 기초가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한반도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눠지게 된 것은 비극이지만 그 비극은 지리멸렬 되고 낙후 된 조선시대의 의식과 전통의 고리를 끊고 개화 된 문명국가와 사회를 지향하게 하였습니다. 한반도는 소련 공산주의 하에 들어가 지금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거나 미국이나 소련이 없었다면 조선시대 수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국가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노예제나 다름없는 조선 시대의 노비제도가 지금까지 지속되어 인권 유린이 정당화 되는 미개한 수준의 국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명과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의 전통과 의식과 가치관에서 단숨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할 수 있게 한 것은 6.25입니다. 정치나 교육이나 심지어 혁명으로도 그 같이 획기적인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6.25라는 독특한 참극의 전쟁은 말할 수 없이 비극적인 조선 시대를 건너 뛰어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6.25는 극도로 사회 혼란을 일으켰던 국가 전복의 공산주의 세력을 거의 소탕하였고 남아 있던 공산주의자들을 북한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6.25로 인하여 남북이 갈라지게 되자 북한이 경쟁상대가 되어 남한은 더욱 분발하게 되었습니다. 옛 말에 한 사람이 소 한 마리를 먹을 수 없어도 열 사람이 소 열 마리를 먹는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은 일본에 이어 경쟁 국가가 하나 더 생긴 셈이고 일본을 따라 잡으려고 그리고 북한보다 월등하려고 피나는 경쟁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6.25는 수 백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조선 시대의 기득권 계층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사회 리더 그룹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새로운 리더 그룹은 철저한 반공사상으로 무장한 이들과 군인들이었는데, 공산주의 위협의 사면초가 상황인 자유대한민국 초기에 이들 리더들은 더 없이 요긴한 역할들을 감당하였습니다. 무엇보다 6.25는 앞서가는 초 강대 문명국인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게 하였습니다. 한민동맹관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그 어떤 인적 자원이나 근면성으로도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후견 국가와의 동맹관계라는 크레딧은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자유세계의 자본을 끌어 올 수 있게 하였고 세계 시장을 상대로 마음껏 무역할 수 있게 한 정치 경제의 엄청난 인프라로 작용하였습니다. 6.25,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었고 잊을 수 없이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전화위복이 된 6.25라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셨나니”(창 50:2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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