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철저히 배제된 구속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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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0-07-2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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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민족이나 나라에는 그 시작이나 성립과정에 신화나 신화적으로 채색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국가나 민족의 그러한 특징 중 하나는 민족의 시조나 나라를 건국한 존재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이거나 반신반인으로 그려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최초로 세운 나라인 고조선의 건국 신화가 있습니다. 민족이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시조가 신이나 반신반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초역사적 또는 초인간적 기원을 상정하므로 자신의 존재가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고구려, 신라, 가야의 신화에 그 시조들이 모두 알에서 나왔다는 것도 그 출생이 보통 인간의 출생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도 같은 맥락에서 그 시조가 알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천황의 권위와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희랍의 신화는 나라와 민족들의 존재와 행위의 정당성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그 시대 가치관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역사가 짧고 종교개혁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뉴턴의 자연과학 영향을 받아 다른 나라와 같은 건국 신화는 없습니다. 종교개혁과 자연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신화적 무지몽매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미국에는 17세기부터 식민지가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이성의 세기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에 미국이 세워졌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신화나 동양의 여러 나라와 같은 건국 신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화를 만들기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는 미국의 건국 신화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건국 신화는 신들의 존재나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채색된 그리스 신화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미국 건국 신화는 건국의 아버지들에게(Founding Fathers) 덧씌워졌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비상한 예지와 헌신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토마스 제퍼슨, 존 애담스, 리차드 헨리 리, 패트릭 헨리, 샘 애담스, 존 핸콕 같은 이들을 포함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심 없이 고매한 정신과 신앙으로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 했던 인물로 신화화되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건국도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고 그 투쟁 안에는 진영 논리의 첨예한 갈등이 심하였습니다. 건국 초기에 버지니아의 세력은 막강했었습니다. 식민지와 영국과의 갈등은 매사추세츠와 본국 사이에서 무역에 관한 관세를 둘러싸고 일어나며 비화했습니다. 매사추세츠가 반란으로 나갈 것을 결정하자, 많은 논란 끝에 버지니아가 반란의 대열에 합세하게 되었고, 나머지 주저하던 식민지들도 버지니아의 거취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버지니아의 역할이 미국의 건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미국의 건국 신화에는 남부의 영향력이 평가 절하되었고, 북부의 뉴잉글랜드가 높게 평가되면서 미국의 건국 신화는 종교적으로 윤색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습니다. 퓨리턴들이 추구했던 신앙의 자유가 건국 신화의 주요 주제로 떠오르면서,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는 이상적 나라를 세우려는 건국 정신이 ‘언덕 위의 도성(City Upon a Hill)’을 건설하기 위한 퓨리턴 정신의 연장 선상에 놓이게 되어 미국의 꿈과 역사와 존재 이유가 필그림이 타고 온 ‘메이 플라워’호로 상징되고 압축되었습니다. ‘언덕 위의 도성’은 예수님의 산상설교 중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의 “산 위에 있는 동네”입니다. 퓨리턴은 미국을 전 세계에 빛과 소금이 되는 ‘City Upon a Hill’로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건국이 합리를 숭앙하던 계몽시대에 이루어졌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퓨리턴들이 아니고 합리주의에 영향을 받은 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화제도, 삼권분립, 연방주의, 권리장전을 논하고 이런 원리들을 국가 건설의 초석으로 헌법에 심어놓았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그들의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이고 초인적 능력과 끝없는 헌신을 후손들은 칭송하고, 퓨리턴의 언덕 위의 도성을 설계하는데 바쳐진 헌신과 동일시하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영웅의 신전에 안치시킨 것이 이를테면 미국의 건국 신화입니다. 어떤 사가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탐욕스럽고 이윤추구에 몰두한 위선적 인간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사실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유산가들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영국과 절연한 것이고 온 세계에 빛과 소금이 되는 ‘언덕 위에 도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퓨리턴도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면이 많지만, 또한 지나치게 편협하고, 이교도를 박해하고, 관용이 없고,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이나 국가를 인위적으로 신화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정신과 가치에 반합니다. 지금의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이 순수한 신앙과 고매한 정신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신화입니다. 미국의 건국과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끄러운 면도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구속의 역사에는 일체의 신화가 배제되고 있습니다. 신화가 배제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과장하거나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 중에는 훌륭한 이들도 많지만 그들 역시 허물과 실수가 많은 죄인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속의 역사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인간 영웅이 필요하지 않고, 또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성경적 인간관에서 볼 때 인간 영웅이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어떤 국가를 지나치게 높이거나 신성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예수님의 조상의 계보를 잇는 유다와 그의 가족사를 보고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라는 세 아들을 낳았고, 큰아들 엘을 역시 가나안 여자인 다말과 결혼시켰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이방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엘은 악하여 하나님께서 쳐서 죽이셨습니다. 야곱이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의 대를 잇게 하였으나 그 의무를 거역한 것이 악하여 역시 하나님께서 죽이십니다. 셋째 아들 셀이 형의 대를 이어야 하지만 나이 어려서 다말을 친정에 가서 기다리게 하는 동안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오인하여 동침하여 임신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유다와 그의 가족사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추하고 더럽고 역겨운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알고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한 족보이야기는 3절에 가서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뿐만이 아니라 마 1:5-6절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예수님의 족보에 더럽고 추한 인물들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이런 어두운 면은 숨기는 것이 후손들에게 교육상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역사에 일체의 신화를 배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역사에 과장이나 거짓이나 왜곡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신화를 만들고 족보에 집착하는데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바울은 교회가 허탄한 신화와 족보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3,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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