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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영적 권위는 수요 없는 진리 선포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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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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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바울은 사랑의 특징을“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나타내야 할 특징이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중에 이 사랑의 특징을 드러내는 아들은 많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불의를 기뻐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일단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기의 이름으로 고쳐 읽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이나 “주님” 으로 바꾸어 읽으면 얼마나 적합한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특징이 주님의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인간에 대하여 요한은 누구도 변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참 빛으로 소개하고 난 다음“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으며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하였고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원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탁월한 능력은 없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특별히 요긴하고 어려운 연구 분야에서 일해야 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야 합니다. 연구와 가르치는 탤런트가 없는 사람은 그런 일에 종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그런 탤런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좋아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옳고 선하고 정의로운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선하고 정의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진리를 따르는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좁은 길이란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좁은 길은 사람들이 가기를 싫어하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넓은 길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멸망할지라도 넓은 길을 선호하고 생명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길을 싫어합니다. 좁은 길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길이기 때문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좁은 길, 진리의 길은 찾는 이가 적은, 이를테면 수요가 없는 길입니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인간 타락의 특징은 인간을 한없이 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유약하게 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유약하여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만,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진리를 따라 사는 부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거짓과 불의를 좋아하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유약하게 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거짓과 불의를 좋아합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사람, 불로소득을 탐내는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직자가 사익을 우선 챙기는 사람, 이기심을 숨기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유약한 인간임과 동시에 악한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이바지하기를 싫어하고 제도와 남을 탓하며 노력해서 성공한 부자들을 시기하며 남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를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이 정의와 공평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이들에게서, 종교적으로는 이단과 사이비 신앙인들에게서 위와 같은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납니다.

현대인들은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몹시 피곤합니다. 힘든 노동과 정신적인 일로 몸과 마음이 피곤을 느끼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몸이 피곤을 느끼는 것은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입니다. 피곤하다는 느낌이 올 때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 의욕과 활력이 솟아납니다. 정당한 노동 후에 찾아오는 피로감은 건강하다는 신호이지만 정당하지 못한 일 때문에 피곤을 느끼게 되는 것은 육체적 또는 도덕적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개인의 거짓말과 불의한 행동 때문에 그 개인이 피로감을 느껴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됩니다. 만약에 어떤 집단이나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거짓말과 왜곡과 불의를 자행한다면 사회 전체가 병적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온 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진실이 무엇인지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와 의회의 입장이 다르고 언론들도 너무나 다른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여 일치된 견해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비웃는 역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고 모두가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말할 수 없는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 존엄한 인간 생명을 다루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사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면 이는 살인보다 악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의 경우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코로나 19처럼 전 세계에 걸쳐 수만 명의 사람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 단순한 음모론이길 바라지만 코로나 19가 자연발생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비중 있는 정부 인사의 입에서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세계인들이 지쳐 있습니다. 사람들이 단순히 코로나19 때문에 지친 것이 아니고 그 문제를 다루는 정부와 의회와 언론들로부터 전해지고 흘러나오는 정보들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국민들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나 의회나 언론이나 국민이 정당하고 옳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피로를 느끼는 것이라면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너무나 온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왜곡과 불의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국민을 지치게 하는 것은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치와 언론과 학계와 문화예술계 할 것 없이 온통 거짓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국민들은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진실과 올바른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민이 올바른 정보를 얻어야 상황을 분별하여 바르게 대응할 수가 있는데 온통 거짓되고 왜곡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어서 국민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데 교회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가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회 안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도자가 정치 사회의 불의를 질타하는 것에 국민들은 몹시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사회 불의를 질타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당신은 아닌 것 같아”라고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급한 마음에,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인격이 훌륭한 사람의 도움만 받아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예수님께서 남의 눈에 티를 빼려면 먼저 자기 눈에 들보를 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허물이 없이 온전한 사람만 사회 불의를 지적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고, 자기 눈에 들보를 끼고 사회를 바로 세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태도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나 교회 지도자가 영적 권위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사회개혁 운운하는 것은 무지요 교만입니다. 교회가 영적 권위를 회복하려면 몇 가지 선행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복신앙은 교회를 사회와 같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영적 권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한부 종말론이나 지나친 내세 지향적 신앙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치유나 신령한 체험이나 힐링코드 같은 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메시지인 것처럼 교인들을 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교회 밖에도 얼마든지 많고 민간신앙이나 심리학이나 의학이나 과학으로도 메시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교회가 그런 것을 전하는 것은 영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진 메시지는 다른 종교나 심리학이나 의학이나 과학이 결코 줄 수 없는 차원의 것입니다. 교회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전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 되심과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부활과 천국을 믿으며, 천국은 이미 이 땅에 임하였고 또 장차 임할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청지기로서 오늘을 사는 자들임을 전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믿음의 내용으로부터 평생을 전해도 다 전하지 못할 풍성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이런 메시지를 바르게 전하고 선포할 때 교회가 영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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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비누하스님의 댓글

비누하스

맞습니다. 지금 정부에 대항해서 집회를 열고 거짓말하여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하나님께 등돌리게 만든 사람들이 전도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방역당국에 거짓말 했다고 신문에 나온 사람들은 왜들 다 목사요 성도입니까? 한 둘이 아닙니다. 계속 어느 어느 목사가 방역당국을 속였다고 하는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는 목사"...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와 사역자들이 먼저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 가장 급하고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되려면 한 몇 십년 걸릴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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