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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명(生則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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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20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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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윌리엄 홀(William J, Hall)과 그의 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여사는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갔다가 서울에서 1893년에 결혼하여 그 이듬해에 평양으로 가 선교한 의사부부이다. 남자 의사가 여자 환자를 볼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아펜젤러선교사와 의사였던 스크랜튼의 요청으로 미 감리교 여선교부는 1890년 이들을 한국에 보내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서양 기독교선교사들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던 평양에서 사역하도록 보내지게 되었다. 그 당시상황은 통역자와 그들에게 집을 판 사람들까지도 관아에 붙들려 가 죽도록 매질 당하였던 시대였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속에서 윌리엄 홀은 노블선교사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나의 생명을 희생하여 이 도시를 개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생명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If it is God’s will to open up this city by the sacrifice of one life, I am not unwilling to be that one)”

결국 그는 1894년 청일전쟁 때 평양 인근에 있던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한 알의밀알이 되어 땅에 묻혔다. 홀로된 로제타 홀 여사는 그 이후 어린 딸을 또한 평양에서 잃게된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그녀는 선교사역을 포기할 정도로 완전히 희망을 잃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스로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용기를 얻어 남편과 딸이 묻힌 한국을 다시 찾아오게되고 1899년 맹인들을 위한 점자교육을 실시하고 1928년에는 고려대학교 이과대학의 전신인 조선 여자 의학강습소를 설립하여 최초로 한국에서 여의사들을 길러내는 등 의료선교사로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도 한국과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하며 한국에서 결핵요양원을 처음 설립하고 크리스마스 실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들은 미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있는 조건을 마다하고 선교사로서 머나먼 한국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리게 된 것이다.

노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박애와 봉사정신으로 인술을 펼치며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바보의사'라고 불리며 살아온 고 장기려박사는 "나는 의학도가되려고 지원할 때 치료비가 없어서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하고 죽는 환자들을 위하여 의사 일을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의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치료비가 없던 환자를 위한 책임감을 잊버버린 날은 없었다. 나는 이 결심을 잊지 않고 살면 나의 생애는 성공이요 이 생각을 잊고 살면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다(부산모임 1980년 4월호)"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순간의 사명, 아름다움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지 모른다. 인생이란 마치 올림픽 선수가 경기에 한 번 출전하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인생이란 음악인이 한 순간의연주회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연습하는 것과 같다. 인생이란 십자가를 앞에 둔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자기의 전 재산인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사는 것과 같다. 가장 고귀한 일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전체를 한 순간에 깨뜨리는 것이다. 그 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과의 고별설교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자신의 삶을 통해 ‘생즉명! 살아있음은 사명’임을 고백했다.

이민의 삶에 수많은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 땅에전하고 뿌리내리기 위해 선교적인 사명(Mission)과 소명(Calling)에 이끌림을 받는 '생즉명(生則命)의 삶'은 한 순간의 사명을 위해 하나님앞에서의(Coram-Deo)가장 고귀하고 축복된 발자취이다.

(글: 장재웅목사, 워싱톤MD 하늘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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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따뜻한 편지님의 댓글

따뜻한 편지

주 5일을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며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던
한국 최고령 의사 한원주원장님

지난 9월 30일, 영원히 환자들 곁에서
함께 해주실 것 같았던 원장님이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인 지난달 7일까지도
직접 회진을 돌며 하루 1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셨다던 원장님은 갑작스레
노환이 악화해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1주일전까지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한원주 원장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였습니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Kate님의 댓글

Kate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낍니다.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음이  곧 소명임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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