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마스크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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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20-12-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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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자정에 땡하고 종을 치면 우리의 일상을 자근자근 밟아버린 코로나가 종적을 감춰 달아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전염병 대통령’으로 널리 알려진 파우치 ‘영감님’은 “꿈 깨라, 1월 중순이 되면 아마 코로나 확산세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겁을 주고 있다. 추수감사절에 풀어졌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또 한번 몰려다니면서 결국은 1월 중순이 되면 속수무책 확진자 폭증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그 분 말 중에 내가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말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에 대적할 최고의 무기가 있다. 비밀병기인 셈이다. 바로 마스크다!” 내겐 격문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미국이 전염병에 맥을 못 추고 쩔쩔매다보니 여전히 국제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통제가 불가능하고 각 주별로 코로나 대책이 늘쑥날쑥 따로 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미국 50개주가 코로나와 싸우는 게 모두 제 각각이다.
언론이 타이르고 보건전문가가 지적해도 꿈쩍 않고 ‘노마스크’를 무슨 치적인양 자랑하고 다니던 대통령 때문에 공화당 사람들이나 트럼피즘 추종자들이 여기저기서 마스크 무용론을 터트리긴 했지만 요즘에 와서는 마스크만큼은 50개주 모두가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할 방역활동으로 굳어져 버렸다.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의 빅데이터 전문기업 바이브컴퍼니가 지난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트위터와 블로그,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 게시물 42억만 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단어가 ‘마스크’였다고 한다. 267만 건이었다. 2위는 ‘집,’ 3위는 ‘확진자’로 나타났다. 또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물으니 의외로 ‘학교’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카페’ ‘식당’ ‘수영장’ ‘공원’이 2~5위로 나타났고, ‘노래방’은 8위, ‘교회’는 12위. 수시로 드나들던 우리들 일상의 중심이 언제부터 ‘가고 싶은 곳’으로 변해 버렸으니 팬데믹 시대의 슬픈 현주소가 아닌가?
아내는 외출할 때면 마스크를 두 장씩 겹쳐서 쓰고 나간다. 내 차속엔 앞좌석에도 마스크, 뒤 좌석에도 마스크, 썼던 마스크와 새 마스크가 서로 뒤엉켜 뭐가 뭔지 난장판이다. 우리 집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가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얼른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린다.
마스크 때문에 편한 것도 있다. 골프 연습장에 넓은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마음이 편하다. 골프 연습장엔 의외로 ‘선생’이 많다. 별로 잘 치는 실력이 아니면서도 날 보면 한수 가르쳐 주겠다고 귀찮게 접근하는 골프 선생님들을 물리치는데는 마스크가 최고다.
그런데 어느 날 놀랐다. 집 근처 큰 쇼핑 몰 한구석에 큰 천막을 치고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도 마스크는 쓰고 있었다. 실내 체육관이 모두 폐쇄대상이 되다보니 운동기구를 모두 밖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물론 돈 내고 하는 회원제 체육관이었지만 추위 따위에 상관없이, 불편한 마스크 따위에 상관없이 체력단련을 하고 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영적으로 쇠잔해 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 지는 게 아닌가?
사실 코로나 때문에 대면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처음 온라인, 유튜브, 줌을 이용한 화상예배가 신기한 듯 보였다. 반응도 좋았다. 교회당 않나가도 이렇게 예배드리는 세상이 왔구나! 처음엔 신기했지만 그것도 조금 지나니까 시들해지고 있다. “에이, 목사님이 날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영상예배 빠졌다고 내가 불신자는 아니잖아?” 그렇게 자기합리화가 누적되다 보니 예배? 그게 아주 중요하지 않은 아이템으로 멀리 밀려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라도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의 훈련에 열중인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마스크 뒤에 숨어 적당히 예배도 빼먹고, 성경공부도 빼먹고, 그러다 보니 적당히 예수도 빼먹고 사는 ‘날나리 그리스도인’으로 변하고 있는 내가 보인 것이다.
마스크는 밝아온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비밀병기다. 백신이 나왔어도 집단면역에 이르기엔 한참 걸린다고 한다. 마스크를 쓰고도 육체의 훈련에 힘쓰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마스크 뒤에 숨지 말고 ‘금생과 내생에 유익한 약속’인 경건의 훈련, 영적인 훈련에 게으르지 않는 새해를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한 마스크이지 주님 앞에 날나리로 숨어살기 위한 마스크는 아니다. 마스크를 쓴다고 주님에게 내 모습이 감춰질 수 있는가?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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