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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가 불편한가요?" 그 불편함이 당신 영혼의 청신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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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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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나의 생각과 완벽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위기일 수 있다. 북미개혁교회 교단지는 목회자의 설교가 성도의 기호와 다를 때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신앙의 성장은 익숙한 편안함이 아니라, 말씀이 주는 거룩한 불편함과 저항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통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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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는 청중의 기호를 맞추는 서비스가 아니라, 아프더라도 영혼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용 칼이어야 한다. (AI사진)

 

매주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면,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생각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가."

 

목회자의 설교가 당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가치관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갈등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적 청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자기 확증 편향'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미 개혁교회(CRC) 교단지 '더 배너(The Banner)'는 특집 기사를 통해 "당신의 목사가 당신이 싫어하는 내용을 설교할 때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현대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소비하려는 '설교 쇼핑'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불편한 설교'가 갖는 영적 유익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기사는 복음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저항의 메시지'임을 상기시킨다.

 

알고리즘에 갇힌 강단, 말씀의 '날'을 무디게 하다

 

우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만 보며 자신의 취향과 사상을 강화하는 시대에 산다. 이 습관은 교회 선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보수적인 성향의 교인은 보수적인 정치색을 띤 목사를, 진보적인 교인은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선호한다.

 

그러나 성경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히브리서 4:12)"고 기록되었다. 해당 기사는 복음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죄성과 편견을 도려내는 수술용 칼임을 강조한다.

 

목회자가 회중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설교가 아니라 '종교적 서비스'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당대 종교 지도자와 대중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 그 불편함이 십자가 사건을 만들었고, 동시에 구원의 길을 열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설교만 듣길 원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신의 에고(Ego)를 숭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아멘"보다 "아픈" 설교가 영혼을 키운다

 

'더 배너'의 글은 운동선수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중력에 저항해야 하는 원리를 신앙 성장에 대입했다. 근육은 무거운 무게를 견디고 찢어지는 고통을 겪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돈, 성(性), 권력, 그리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바로 그 지점이 성장의 변곡점이다.

 

기사는 "목사가 당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듣기 싫은 주제를 설교할 때, 그 순간이야말로 당신의 세계관이 성경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편식하는 아이가 건강할 수 없듯, 편식하는 신앙인 역시 영적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다. 듣기 좋은 위로의 메시지만 섭취한 성도는 고난이라는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쉽게 무너진다. 반면, 말씀의 책망과 훈계로 단련된 성도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맷집을 갖게 된다.

 

소비자가 아닌 제자로 남을 것인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상당수는 "목사님과 생각이 달라서" 혹은 "설교가 마음에 안 들어서"다. 이러한 태도는 교회를 진리를 추구하는 '제자 공동체'가 아닌, 취향을 공유하는 '동호회'로 전락시킨다. 건강한 목회자는 회중의 이탈을 두려워해 메시지를 검열하지 않는다. 청중 역시 설교자를 자신의 대변인이 아닌,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예배는 회복된다. 당신의 마음을 찌르고 불편하게 만드는 그 설교가, 사실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이 보내는 긴급한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강단 앞에서 "은혜받았습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 대신, "오늘 말씀이 나를 아프게 찔렀습니다"라는 정직한 고백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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