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앞에 선 두 권력: 백악관의 칼날과 바티칸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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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12-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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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미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와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이민자 추방' 정책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교황과 미 가톨릭 주교회의(USCCB)가 반인도적 처사를 지적하며 복음의 핵심 가치를 역설하자, 백악관과 보수파 신자들은 "종교는 정치의 영역에서 물러나라"며 맞서고 있다. 신앙과 이념이 뒤엉킨 미 가톨릭 내부의 거대한 균열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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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 이민자 추방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가톨릭 신자들과 공권력이 대치하고 있다. (AI사진)
"예수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 끝날에 우리는 '나그네 되었을 때 어떻게 영접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11월, 미국 출신의 교황 레오 14세가 던진 이 한마디는 워싱턴 정치권에 투하된 폭탄과 같았다. B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민자 보호를 호소하는 교황의 발언 직후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USCCB)는 12년 만에 이례적인 '특별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의 무차별적 대규모 추방 정책에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복음의 가치인가, 통치권 침해인가
충돌의 지점은 명확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와 법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교회는 그 과정에서 훼손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주목한다. 포덤 대학교 종교문화센터의 데이비드 깁슨 소장은 "백악관의 계산은 명확하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 가톨릭 표심이 충분하기에, 교황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손해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백인 가톨릭 신자의 약 60%가 정부의 이민 정책을 지지한다는 통계는 교회가 처한 내부적 분열의 깊이를 보여준다.
보수적 가톨릭 팟캐스터 제시 로메로는 이러한 기류를 대변한다. 그는 "교황은 천국 가는 법이나 가르쳐야지 정부의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교황의 권위를 개인적 의견으로 치부했다.
반면 시카고 성 거트루드 교회의 잔 래튼버리는 구금 시설 밖에서 '민중 미사'를 집례하며 "교회가 이민자의 인권을 말할 때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럽다"고 맞선다. 하나의 성경을 든 신자들이 국경이라는 물리적 선 위에서 두 진영으로 갈라진 형국이다.
성소(聖所)까지 들이닥친 추방의 공포
긴장은 교회 담벼락 안까지 침투했다. 워싱턴주 야키마의 조셉 타이슨 주교는 현재 진행되는 추방이 범죄자 표적 수사가 아닌, 성실한 이웃들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교회 내부 인력조차 위태롭다. 타이슨 주교가 서품한 사제 중 3분의 1 이상이 임시 비자 상태이며, 시카고의 한 신학생은 입국관리국(ICE)의 체포 공포 때문에 늘 서류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매사추세츠주 데덤의 성 수산나 교회는 성탄 구유의 아기 예수 자리에 'ICE가 다녀감'이라는 문구를 배치하는 파격적인 시위를 벌였다. 교구청의 철거 명령에도 교회는 요지부동이다. 교회를 세운 뿌리가 곧 '이민자'였음을 기억하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정치적 계산 너머의 '생명의 복음'
현 행정부의 실세인 JD 밴스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은 모두 가톨릭 신자다. 이들은 신앙이 자신의 정치를 형성했다고 말하면서도, 현재의 정책이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타이슨 주교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의 시각은 단호하다. 무차별적 추방을 지지하는 공직자들의 양심에 "그것은 생명의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 가톨릭은 지금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낙태 반대 등 보수적 가치에서는 정부와 궤를 같이해왔지만, '이민자'라는 가장 낮은 곳의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복음주의적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국가라는 왕국과 하느님의 나라 사이에서, 미국 가톨릭이 선택할 '환대'의 크기가 곧 현대 미주 교회의 영적 주소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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