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전명에 등장한 신앙… 국가와 하나님 나라는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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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6-03-1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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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이란 전쟁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수사가 군대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평화 교회를 비롯한 비평가들은 이를 위험한 '극단주의 신학'으로 규정하며 십자가의 본질 회복을 외친다. 이 사태가 뉴욕 등 미주 한인교회에 던지는 국가주의 경계와 종말론적 설교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시사점을 짚어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싸우는 군대다." 미군 기지 예배실에서 울려 퍼진 한 장교의 발언은 전쟁의 본질을 묘하게 비틀어버렸다.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닌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으로 포장시키는 시도다.
신앙의 언어가 국가의 군사 작전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 이란 폭격 이후 군과 정치 영역에서 등장하는 종교적 수사들은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 원칙을 흔들며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논쟁을 낳고 있다. 교회가 국가의 무력 행사에 신학적 면죄부를 내어준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군대와 정치에 스며든 십자군 전쟁의 그림자
미 국방부 안팎의 비공식 기도 모임에서 일부 지휘관과 군목이 이란 전쟁을 하나님의 종말 계획 일부로 묘사한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이란을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적으로 규정하고, 참전을 거룩한 희생으로 치켜세운다. 다양한 신앙과 배경을 가진 장병들이 모인 군대 내에서 아군과 적군을 신앙의 잣대로 나누는 위험한 시도라는 것.
정치권의 수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란을 종교적 광신도 국가로 몰아붙이며 미국을 문명과 자유의 수호자로 자처한다. 문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라는 논리다. 이란 강경파 역시 똑같이 성전(Holy War)의 언어로 맞선다. 서로를 악의 축으로 낙인찍으며 상대를 인간이 아닌 제거 대상으로 보는 탈인간화가 양쪽 모두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극단주의 신학을 거부하는 비평가들의 반격
일부 미디어들과 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평화주의 전통을 잇는 학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군사력을 미화하는 행위를 극단주의 신학으로 규정한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알라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구조적으로 완벽히 동일하다는 지적.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며 십자가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냈다. 교회가 국가의 무력을 축복할 때 복음의 본질은 무너진다는 것.
세대주의 종말론과 정치의 위험한 결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분쟁을 종말 시나리오의 필수 요소로 보는 시각은, 어떤 잔혹한 전쟁이든 예언 성취를 위해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로 합리화할 수 있다. 성경의 종말론은 부당한 권력과 제국에 저항하라는 부름이지, 현실의 폭력을 부추기는 도구가 될 수 없다.
한국 교회를 향한 뼈아픈 질문들
미국 교회의 분열은 미국의 한인 교회에도 적지 않은 과제를 던진다.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한인 교회 역시 유사한 정치적, 신학적 프레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와 하나님 나라를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은 매력적이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설교 강단에서 이 선을 긋지 못하면 교회는 쉽게 국가주의의 포로가 된다. 이란 정권의 악행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분노가 무차별적 폭력의 정당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의와 복수심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종말론을 다루는 방식도 재고해야 한다고 부탁한다. 특정 국가나 전쟁을 예언의 필수 퍼즐 조각으로 고정하면, 전쟁터에서 피 흘리는 사람들의 생명은 신학적 소품으로 전락한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때로 전쟁을 지지했고 때로는 평화를 위해 저항했다. 지금 우리는 국가의 야망 앞에서 십자가의 제자로서 어떤 선을 긋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큰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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