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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뒤에 숨겨진 배제와 혐오, 우리가 몰랐던 ‘추수감사절’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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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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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미국인 10명 중 9명이 기념하는 추수감사절, 그 기원에는 우리가 아는 ‘청교도와 인디언의 화합’ 이상의 복잡한 정치학이 숨어 있다. 역사학적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추수감사절 서사는 19세기말 이민자 급증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배제의 역사’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둔 2025년, 분열된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이 회복해야 할 진짜 감사의 의미를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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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그림 신화 뒤에 가려진 1920년 이민 제한법과 배제의 역사, 그리고 2025년 우리가 다시 차려야 할 포용의 식탁 (AI사진)

 

우리가 기억하는 1621년 플리머스의 추수감사절 식탁은 사실 20세기 초에 급조된 ‘정치적 신화’일지 모른다. 미국인 10명 중 9명이 칠면조를 굽는 이 거대한 명절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사회의 결속이 아닌 ‘배제’를 위해 설계되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종교사학자들의 최신 연구는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배운 낭만적인 그림에 차가운 팩트의 매스를 댄다.

 

미국 역사 전문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과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적 의미의 추수감사절 서사는 188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이민자가 가장 폭발적으로 유입되던 때였다.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그리고 동유럽 유대인들이 뉴욕과 보스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미국의 주류였던 백인 개신교도(WASP)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들은 이질적인 이민자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기 위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필그림(Pilgrims)’을 미국의 유일한 정신적 조상으로 격상시켰다.

 

필그림 신화, 이민자를 막는 벽이 되다

 

‘미국 땅의 종교(Religion in the Lands That Became America)’의 저자는 추수감사절이 1621년의 역사적 사실보다 1920년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듬어졌다고 지적한다. 1885년 베스트셀러였던 조지아 스미스 목사의 ‘우리나라(Our Country)’는 당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미스 목사는 “이질적인 피와 종교를 가진 이들이 필그림 후손들의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필그림의 300주년 기념식이 열린 1920년 직후, 캘빈 쿨리지 부통령(훗날 대통령)은 악명 높은 ‘1924년 이민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이후 40년 동안 미국의 국경을 사실상 닫아버렸다. 즉, 우리가 매년 기념하는 청교도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당시에는 타문화를 배척하고 국경을 봉쇄하는 명분으로 사용된 셈이다. 이는 이민자 혐오와 양극화가 극에 달한 2025년의 미국 사회에 서늘한 기시감을 준다.

 

삭제된 감사들: 가톨릭과 원주민의 식탁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필그림 중심의 서사는 북미 대륙의 다른 ‘감사절’들을 철저히 지웠다. 1565년, 플리머스보다 55년이나 앞서 플로리다 세인트 오거스틴에 정착한 스페인 가톨릭교도들은 원주민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눴다. 1619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의 영국인 정착민들 또한 플리머스보다 2년 앞서 공식적인 감사절을 지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1세기 미시시피 강 유역의 거대 도시 카호키아(Cahokia) 원주민들은 옥수수 수확에 감사하며 백조와 사슴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19세기의 미국은 이러한 가톨릭적, 원주민적 기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오직 ‘영국계 개신교도’인 필그림만이 미국의 순수한 기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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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그림 신화 뒤에 가려진 1920년 이민 제한법과 배제의 역사, 그리고 2025년 우리가 다시 차려야 할 포용의 식탁 (AI사진)

 

1621년의 진실: 잔치가 아닌 생존 동맹

 

그렇다면 1621년의 실제 현장은 어땠을까. 에드워드 윈슬로우가 남긴 유일한 목격담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왐파노아그족의 지도자 마사소이트는 90명의 전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식사 초대가 아니었다. 필그림은 첫 겨울에 인구의 절반을 잃었고, 왐파노아그족 역시 전염병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양측은 서로의 무력이 필요했다.

 

장 페리스(Jean Ferris)의 그림처럼 영국인이 음식을 베푼 것도 아니었다. 필그림은 야생 칠면조 정도를 준비했지만, 왐파노아그족은 사슴 다섯 마리를 가져왔다. 옥수수 농법을 알려준 스콴토의 도움이 없었다면 필그림은 전멸했을 것이다. 그들의 식탁은 ‘은혜로운 나눔’이라기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맺은 절박한 ‘생존 동맹’이었다.

 

2025년, 다시 차려야 할 식탁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Semiquincentennial)을 1년 앞둔 2025년의 추수감사절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지금 미국은 정치적 이념과 인종, 세대 갈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쪼개져 있다. 과거의 추수감사절 서사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그 빗장을 풀어야 한다.

 

진정한 복음주의적 시각은 역사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2025년의 식탁은 필그림의 후손들만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 주류와 비주류가 생존을 위해 서로의 사슴과 칠면조를 내어놓았던 1621년의 ‘절박한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 감사는 배타적 소유물이 아니라, 낯선 이를 환대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신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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