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주기 문준경 전도사 추모예배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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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 2025-10-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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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주기 문준경 전도사 추모예배 드려
문준경 보따리(농수특산물 판매점) 개소식도 진행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제75주기 추모예배가 지난 10월 2일 오전 11시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3층 예배실에서 열렸다.
기념관장 김주헌 목사(북교동성결교회, 기성 증경 총회장)의 인도로 진행된 예배는 기성 부총회장 안보옥 장로의 기도와 기성 총회서기 김요한 목사의 성경봉독, 문준경 전도사가 순교할 때까지 사역했던 증동리교회 찬양대의 특별찬양, 문준경 홍보대사 김수영 권사(아동문학가)의 시낭송으로 이어졌다.
이어 기성 총회장 안성우 목사가 디나엘서 1장 8~21절을 본문으로 “다니엘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안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는 교단의 설립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교단장이 추모예배에 내려와서 함께하는 것은 문준경 전도사가 타협하지 않은 신앙으로 성결의 복음의 표상이 되었기 때문”이라며 “하나님 나라의 의와 올바름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이 후손에게 순교영성을 전하는 영성의 산실이 되고, 성결교단의 브랜드 파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 전남동지방회장 나충식 목사의 봉헌기도. 기성 총무 문창국 목사의 ‘고 문준경 전도사 약력소개’, 기성 역사편찬위원장 성찬용 목사,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운영위원 전종열 목사가 추모사를 전했다. 김문수 전남도의회 의원과 신안군의회 김기만 부의장은 격려사를 전했다.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운영위원회 서기 조만천 장로의 광고, 기성 증경 총회장 이재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김장성 장로의 인도로 신안군 농수특산물을 판매하는 판매점 ‘ 문준경 보따리’ 개소식을 진행했다.
고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2일(음)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 문재경 씨의 3남 4녀 중 3녀로 출생했으며, 1908년 3월 신안군 증도면 등산리 정운삼 씨 3남 정근태 씨와 결혼했다. 1927년 3월 5일 36세 때 북교동교회(장석초 담임 전도사)에 입교해 신앙 생활을 시작했으며, 1928년 4월 전성운 목사 주례로 세례를 받았다.
1931년 5월 경성성서학원(교장 이명직 목사, 사감 백신영)에 입학해 교역자의 길로 들어섰다. 1932년 7월 임자진리교회 설립 및 교역자로 시무했으며, 1934년 6월 12일 이성봉 목사를 주례자로 모시고 임자진리교회 헌당식을 했다.
1935년 2월 증동리교회를 설립하고 교역자로 시무했다. 1936년 3월 6일에는 대초리교회를 설립하고 교역자로 시무했다. 1936년 6월 26일 서울신학교를 제25회로 졸업했다. 또한 재원리, 방축리, 우진리에 기도처를 세웠다. 1943년 12월 일제로부터 교회가 강제해산됐으며, 1945년 경방단으로부터 증동리교회를 되찾았다.
문 전도사는 6.25 전쟁으로 1950년 10월 1일 이봉성 전도사, 이판일 장로와 함께 목포로 압송됐다가 국군의 수복으로 10월 2일 풀려났다. 그러나 10월 5일 새벽 증동리 백사장에서 지역 유지 20여 명과 함께 순교를 당했다.
1951년 2월 2일 기성 호남지방회 주관으로 장례식이 거행됐으며, 1951년 8월 6.25 때 죽은 자가 많은 병풍도에 순교기념교회가 설립됐다. 1966년 10월 5일 순교 장소에 표지석을 세웠으며, 2005년 2월 19일 선산에서 순교지로 묘지를 이장했다. 2013년 5월 21일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을 개관했다.
김현성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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