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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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108.♡.♡.226)ㆍ2019-03-25 09:5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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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15-17]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첫째,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방관하지 말고 죄에 상관하여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고,
이는 죄 지은 형제를 보호하고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주어 고백을 이끌어 내여
죄에 대한 확신을 주어 죄를 뉘우치고 형제를 얻기 위한 화해의 행위이고
둘째,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듣지 않으며 한 두 사람과 동행하여, 같은 의견을 가진 자들과 동행함은
한 개인의 의견이 편협할 수 있음으로 이를 방지하고
올바른 분별을 위함이라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다수의 증인의 의견으로 죄에 대한 확증을 하여,
이 또한 형제를 뉘우치기 위함이라 형제를 보고하기 위함이다.
셋째,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공동체에 말하여 다시 죄 지은 형제가 듣기 위한 기회를 주었고, 그래도 듣지 않는 다면
넷째,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여기서 이방인과 세리는 유대 사회의 통상적인 개념으로 회당이나 다른 모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
공동체 밖의 사람을 가리키기에,
너의 공동체에서 이방인과 세리처럼 교회의 공동체에 밖의 사람으로 여기라는 말씀이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세리처럼 정죄하여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금하고 더 이상 상종하지 말라 시는 의미라
죄 지은 자를 공동체에서 소외시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않음은
나중에 다시 반성과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말씀하셨기에
죄지은 자가 회개하고 경건한 태도를 보인다면 다시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여
죄지은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라
주님의 자비하신 사랑의 말씀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교회의 구성원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만한 역량의 신앙인들이며
또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온전한 공동체인가 하는 의문이라,
베드로처럼 몇 번을 용서하여야 하는 질문과 제자들처럼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주님을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더구나 모두를 구원하고 자 하시는 주님의 복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였기에
교회사에서 참 다운 교회보다 세상의 시류(時流)따른 교회가 많았음은
교회라 부르기에 어림도 없는 교회, 그런 교회를 가리킴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실천한 교회는 형제자매를 사랑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이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행위임을 알았는데
오늘날 교회는 그러한가?
이 같은 주님의 사랑의 말씀은
신명기19:15절과 같으나 정죄하는 일은 같지 않음은 주님은 구원자로 오셨으며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라
복음은 율법의 완성이라 부르기에 이 절을 주님의 말씀으로 적용하면,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여기서 ‘악’ 은 ‘뒤집다’ ‘굽게 하다’ 는 파생된 단어라
율법에서 이탈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한다.
신약에서 말한다면 주님의 의를 뒤집은 행위,
반 복음적인 복음의 어그러진 행위라 말 할 수 있고
‘증인’ 은 자기가 보고 들은 사실의 진술만이 아니라
단지 증인(witness)으로 증언만이 아니라
처벌을 바라고 범죄 사실을 고발하는 고발자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자라
죄에 동조하여 감추거나 방관함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자를 가리킴은
하나님의 증인이 주님이듯이,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증인이라
증인의 의(생각)와 행위는 그리스도 주님을 닮은 ‘믿음’ 이라
(이 행위를 제외한 믿음을 주님은 외식이라 했다.)
만일 한 사람의 증인으로 판단하여 재판한다면 그 증인의 증언에 의한 재판이라
이러한 부조리를 막기 위하여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증인을 필요로 했다.
‘위증하는 자’
실제로 없었던 일을 있었던 양 꾸며 내어 무고한 사람을 모함 하는 자로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거짓된 증언을 하는 자로
십계명의 제 구 계명 ‘이웃에 불리한 거짓 증언은 하지 말라’ 는
제 일 계명 ‘하나님 외의 신을 섬기기 말라’ 와 같은 의(義)의 연관이라
(이는 신약의 ‘거짓 선생’ 이라 할 수 있어 주님의 복음을 억지 해석한 자들이
그런 자들이 주님을 거짓 증언하여 복음을 위증하는 행위,
믿음, 믿음을 말하나 믿음에 의(義)가 사라진 구원론이라는 허울 된 믿음,
구복 사상과 미신 적인 성령 론, 분별없는 천국 지옥 간증, 사제 화된 제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현상과 선생이란 자들이 복음의 의(義)에 멀어지고
종당에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의 주장과
또 그런 자들 따르는 자들이 주님을 위증하는 자들이라)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위증인은 거룩한 공동체는 십계명 제 9계명에 근거하여 엄히 다스렸기에
상대를 해하고자 하는 대로 자신이 당해야 하는 동해보복률 (同害報復律)로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라,
유대사회는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였고
‘2’ 라는 숫자는 확실한 증거, 또는 충분한 증언이라는 의미로 2인 이상의 증인 채택 제도는
확실하고도 충분한 사실로 심리하기 위한 제도로
이를 주님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말씀하셨고 그리고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9]
이 말씀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이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의를 의미하기에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또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주신다는 의미로
복채주고 복을 받는 기복신앙을 가르쳤고
무엇이든지 합심하여 기도하면 용서하여 주신다는 엉터리 해석을 하지만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중에 함께 하신다 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
이 말씀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
주님을 닮은 두 세 사람의 진실 된 사람이 모인 곳,
두 세 사람의 주님의 증인 중에,
교회를 말씀하시기에 그들 중에 주님이 계신다 하셨지
‘모인 곳’ 이라 교회의 건물이나 장소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악을 히브리어 ‘바아르’ 로 ‘태우다’ ‘먹어치우다’ 란 뜻으로
불로 깨끗이 소각하거나 먹어 치움으로 흔적조차 없는 것을 뜻함으로 구약의 제사의 의미로
거룩한 공동체에는 어떠한 악의 모양이라도 잔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위증죄를 지은 자를 ‘동해 보복률’ 로 범죄자에게 엄격히 법을 적용하는 궁극적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처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을 하는데 있다.
따라서 재판관은 범죄자에게 누구나 동일하게 엄격히 법을 적용해야 했고
율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관용과 용서를 베풀라 하였지만
공동체의 차원,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공의의 실현과 질서의 유지 및 범죄의 예방을 위해
엄격히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개인적인 차원의 긍휼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일이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상대에게 한 만큼 내게 돌아오는 동해 보복 법이라
노예에서의 탈출, 죄에서 해방을 기록한 출애굽기 21:23-25를 보면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레위기 24:17-22를 보면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이 보복법의 근본 원리는 죄 값과 같은 갚음을 함으로 계속 파생될
더 큰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질서로서 보호하고 자 하는 원리나,
누구든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공평함이 공의라
공평한 재판관 이신 하나님의 공정이라
재판관은 공정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의로워 의로운 자들이 되기를 원하심이라,
이사야 65를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의롭게 살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업을 주시며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 :9]
패역한 백성을 벌하신다.
[사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10-12]
그러나 주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단순한 인간의 논리와 율법을 초월하여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의 법으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의 법이 주님의 복음의 의 라
교회의 법이라
주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행위를 가르치셨다.
그 행위가 믿음으로 비롯되었고
진리는 사랑과 함께 하듯이
믿음은 행위와 함께 하며 분리할 수 없는 복음의 의며 법이라
주님은 이 행위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판단하셨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믿음에서 행위를 분리하면 외식이 되기에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되 마음은 주님과 멀 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하셨고 벌에 처하는,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4:51]
구원을 위하여 오신 주님이시지만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은 심판이 될 것이라
주님은 언제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으시기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날이 오늘 이 시간이라
오늘은 기회라,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라, 하나님을 만날 때라
성령님이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이라,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하신 말씀,
교회를 말씀하시고 교회는 세상의 하나님 나라 라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못하면 가지 못하는 나라 라
소자를 차별하면 가지 못하는 나라 라
공정하여 공평하며 모두가 같은 차별이 없는 나라 라,
주님은 피 흘리시며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가?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5]
오늘 날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가?
오늘 날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가?
오늘 날 교회는 세상의 하나님 나라 인 가?
데살로니가 교회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15-17]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첫째,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방관하지 말고 죄에 상관하여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고,
이는 죄 지은 형제를 보호하고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주어 고백을 이끌어 내여
죄에 대한 확신을 주어 죄를 뉘우치고 형제를 얻기 위한 화해의 행위이고
둘째,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듣지 않으며 한 두 사람과 동행하여, 같은 의견을 가진 자들과 동행함은
한 개인의 의견이 편협할 수 있음으로 이를 방지하고
올바른 분별을 위함이라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다수의 증인의 의견으로 죄에 대한 확증을 하여,
이 또한 형제를 뉘우치기 위함이라 형제를 보고하기 위함이다.
셋째,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공동체에 말하여 다시 죄 지은 형제가 듣기 위한 기회를 주었고, 그래도 듣지 않는 다면
넷째,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여기서 이방인과 세리는 유대 사회의 통상적인 개념으로 회당이나 다른 모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
공동체 밖의 사람을 가리키기에,
너의 공동체에서 이방인과 세리처럼 교회의 공동체에 밖의 사람으로 여기라는 말씀이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세리처럼 정죄하여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금하고 더 이상 상종하지 말라 시는 의미라
죄 지은 자를 공동체에서 소외시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않음은
나중에 다시 반성과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말씀하셨기에
죄지은 자가 회개하고 경건한 태도를 보인다면 다시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여
죄지은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라
주님의 자비하신 사랑의 말씀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교회의 구성원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만한 역량의 신앙인들이며
또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온전한 공동체인가 하는 의문이라,
베드로처럼 몇 번을 용서하여야 하는 질문과 제자들처럼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주님을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더구나 모두를 구원하고 자 하시는 주님의 복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였기에
교회사에서 참 다운 교회보다 세상의 시류(時流)따른 교회가 많았음은
교회라 부르기에 어림도 없는 교회, 그런 교회를 가리킴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을 실천한 교회는 형제자매를 사랑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이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행위임을 알았는데
오늘날 교회는 그러한가?
이 같은 주님의 사랑의 말씀은
신명기19:15절과 같으나 정죄하는 일은 같지 않음은 주님은 구원자로 오셨으며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라
복음은 율법의 완성이라 부르기에 이 절을 주님의 말씀으로 적용하면,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여기서 ‘악’ 은 ‘뒤집다’ ‘굽게 하다’ 는 파생된 단어라
율법에서 이탈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한다.
신약에서 말한다면 주님의 의를 뒤집은 행위,
반 복음적인 복음의 어그러진 행위라 말 할 수 있고
‘증인’ 은 자기가 보고 들은 사실의 진술만이 아니라
단지 증인(witness)으로 증언만이 아니라
처벌을 바라고 범죄 사실을 고발하는 고발자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자라
죄에 동조하여 감추거나 방관함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자를 가리킴은
하나님의 증인이 주님이듯이,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증인이라
증인의 의(생각)와 행위는 그리스도 주님을 닮은 ‘믿음’ 이라
(이 행위를 제외한 믿음을 주님은 외식이라 했다.)
만일 한 사람의 증인으로 판단하여 재판한다면 그 증인의 증언에 의한 재판이라
이러한 부조리를 막기 위하여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증인을 필요로 했다.
‘위증하는 자’
실제로 없었던 일을 있었던 양 꾸며 내어 무고한 사람을 모함 하는 자로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거짓된 증언을 하는 자로
십계명의 제 구 계명 ‘이웃에 불리한 거짓 증언은 하지 말라’ 는
제 일 계명 ‘하나님 외의 신을 섬기기 말라’ 와 같은 의(義)의 연관이라
(이는 신약의 ‘거짓 선생’ 이라 할 수 있어 주님의 복음을 억지 해석한 자들이
그런 자들이 주님을 거짓 증언하여 복음을 위증하는 행위,
믿음, 믿음을 말하나 믿음에 의(義)가 사라진 구원론이라는 허울 된 믿음,
구복 사상과 미신 적인 성령 론, 분별없는 천국 지옥 간증, 사제 화된 제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현상과 선생이란 자들이 복음의 의(義)에 멀어지고
종당에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의 주장과
또 그런 자들 따르는 자들이 주님을 위증하는 자들이라)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위증인은 거룩한 공동체는 십계명 제 9계명에 근거하여 엄히 다스렸기에
상대를 해하고자 하는 대로 자신이 당해야 하는 동해보복률 (同害報復律)로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라,
유대사회는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였고
‘2’ 라는 숫자는 확실한 증거, 또는 충분한 증언이라는 의미로 2인 이상의 증인 채택 제도는
확실하고도 충분한 사실로 심리하기 위한 제도로
이를 주님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말씀하셨고 그리고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9]
이 말씀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이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의를 의미하기에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또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주신다는 의미로
복채주고 복을 받는 기복신앙을 가르쳤고
무엇이든지 합심하여 기도하면 용서하여 주신다는 엉터리 해석을 하지만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중에 함께 하신다 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
이 말씀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
주님을 닮은 두 세 사람의 진실 된 사람이 모인 곳,
두 세 사람의 주님의 증인 중에,
교회를 말씀하시기에 그들 중에 주님이 계신다 하셨지
‘모인 곳’ 이라 교회의 건물이나 장소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악을 히브리어 ‘바아르’ 로 ‘태우다’ ‘먹어치우다’ 란 뜻으로
불로 깨끗이 소각하거나 먹어 치움으로 흔적조차 없는 것을 뜻함으로 구약의 제사의 의미로
거룩한 공동체에는 어떠한 악의 모양이라도 잔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위증죄를 지은 자를 ‘동해 보복률’ 로 범죄자에게 엄격히 법을 적용하는 궁극적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처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을 하는데 있다.
따라서 재판관은 범죄자에게 누구나 동일하게 엄격히 법을 적용해야 했고
율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관용과 용서를 베풀라 하였지만
공동체의 차원,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공의의 실현과 질서의 유지 및 범죄의 예방을 위해
엄격히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개인적인 차원의 긍휼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일이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상대에게 한 만큼 내게 돌아오는 동해 보복 법이라
노예에서의 탈출, 죄에서 해방을 기록한 출애굽기 21:23-25를 보면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레위기 24:17-22를 보면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이 보복법의 근본 원리는 죄 값과 같은 갚음을 함으로 계속 파생될
더 큰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질서로서 보호하고 자 하는 원리나,
누구든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공평함이 공의라
공평한 재판관 이신 하나님의 공정이라
재판관은 공정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의로워 의로운 자들이 되기를 원하심이라,
이사야 65를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자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의롭게 살려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업을 주시며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 :9]
패역한 백성을 벌하신다.
[사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10-12]
그러나 주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단순한 인간의 논리와 율법을 초월하여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의 법으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의 법이 주님의 복음의 의 라
교회의 법이라
주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행위를 가르치셨다.
그 행위가 믿음으로 비롯되었고
진리는 사랑과 함께 하듯이
믿음은 행위와 함께 하며 분리할 수 없는 복음의 의며 법이라
주님은 이 행위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판단하셨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믿음에서 행위를 분리하면 외식이 되기에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되 마음은 주님과 멀 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하셨고 벌에 처하는,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4:51]
구원을 위하여 오신 주님이시지만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은 심판이 될 것이라
주님은 언제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으시기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날이 오늘 이 시간이라
오늘은 기회라,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라, 하나님을 만날 때라
성령님이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이라,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하신 말씀,
교회를 말씀하시고 교회는 세상의 하나님 나라 라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못하면 가지 못하는 나라 라
소자를 차별하면 가지 못하는 나라 라
공정하여 공평하며 모두가 같은 차별이 없는 나라 라,
주님은 피 흘리시며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가?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5]
오늘 날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가?
오늘 날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가?
오늘 날 교회는 세상의 하나님 나라 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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