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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8)2019-08-05 09:46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주님은 비유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 하셨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 만 기록되어있고,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는 장으로 바라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은 이 비유와 관련하여, 주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를 기록하여
19장 21절에 ‘하늘에서 보화를 간직’ 하는 방법으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은 주님의 비유의 말씀을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보화를 발견한 후 기뻐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사듯이
부자 청년이 주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질문을 기록하며 같은 ‘보화’ 로
이 세상에서 보화를 사는 방법과 천국에서 보화를 간직하는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며
하나님의 의(義)를 가지고 행하는 계명을
믿음과 함께한 행위를 말씀하셨다.

부자 청년이 주님께 와서 여쭈기를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nd, behold, one came and said unto him, Good Master, what good thing shall I do,
that I may have eternal life? :16]
청년은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잘못 알고 있었고
주님을 선생님이라 불렀음은
이는 청년이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선생으로서,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영생 얻는 방법을
급히 달려와 청하였고, 마가복음 10:17은 이를 더 절실히 표현하였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청년은, ‘behold !’ 보십시오! 잠깐 만요!
급히 달려와서 공손히 꿇어앉고 선생님이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지 절실히 물었음은
청년이 주님을 선생으로 불러 율법교사인 랍비로 보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청년은 자신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생으로 인정했다.
누가복음 18:18 절에 의하면 젊은 부자 청년은 관리였다.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젊은 나이에 관원이 되었기에 명예와 재물을 얻었으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이었고,
이 청년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을 제외한 공관복음서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아니하면,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드리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 다음에 기록되어 있어
마태복음의 청년이 물은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를
분명히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편집되었으리라.
청년 관리는 주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불렀지만
주님의 말씀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And he said unto him, Why callest thou me good?
there is none good but one, that is, God:
but if thou wilt enter into life, keep the commandments. :17]

주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하셨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마가복음 10:18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누가복음 18:19
마가와 누가의 표현이 같이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로
마태의 ‘선한 일’ 과 표현이 다르지만
마태는 ‘선한 일’을 ‘선한 이’ 같은 의미로 표현했음은,
보화의 비유처럼 모든 소유로 보화를 사고, 모든 소유로 보화를 하늘에 간직하는
이 세상에서 보화를 사는 방법과 천국에서 간직하는 방법을
‘선한 일’ 은 ‘선한 분’ 으로 말미암았다는 표현으로,
마태복음이 서술(敍述)적인 형식의 표현으로 전개함은
주님을 말씀인
‘보화’ 와 ‘관리 청년’ 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천국’ 으로 불렀고
천국을 선포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3:2]
회개함으로 천국을,
그리고 천국을 맞이하는 준비로 복음서를 맺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태복음 25:36]
‘하나님 나라’를 ‘천국’ 으로 표현하는
마태복음 만 갖고 있는 비유이면서
마태복음은 주님께서 비유로 천국을 말씀하시는 의도를 더 자세히 쓸려고
세심한 기록을 하였기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같이,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라는 주님의 말씀은 같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를 가기를, 영생을 얻기를
하나님 나라를 함께 하기를, 주님은 수없이 말씀하시고 강조하셨고,
마태복음의 특징은 주님의 강조하심을 세밀하게,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마음을
성령님께서 허락하셨으리라.
이 비유들의 모든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 라
복음의 핵심이라,

주님의 대답은, 왜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왜 선한 이 라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영생을 얻는 선한 일은,
생명을 얻는 길은
“생명에 들어가려면”
먼저 선하신 하나님의 알고,
선하신 하나님이 명하시는 의(義)를 구하고, 의(義) 대로 행하는
의(義)가 믿음이며, 행위가 된 계명을 지키라 하셨음은
선한 일은, 선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선한 일은,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근본적인 의(義) 로, 믿음의 시작이라,

“선한 이” 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역대상 16:34]
여호와께 감사하라 !
그는 선하시며, 의로우시며
그의 인자하시며,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세세토록 무궁하며 영원함이시라,
믿음이란,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영원히 함께 하려는
삶의 기준이며, 행위라
주님을 닮아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
복음의 길은 ‘겸손’ 의 태도와 행위로 가는 길이라,
주님도 하나님이시면서 ‘선 하심’을 하나님과 함께 동일하게 여기지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뜻 이외에는 다른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주님의 선한 결정은 오르지 하나님을 가르쳐 낮아지심을, 겸손을,
마태복음은 주님의 중요시한, 중점적인 ‘선’ 을
하나님과 동일시 않으시는 주님의 ‘인간되심’을 분명하게 접근하여 기록하였음은
주님께서 인간으로, 인간의 본을 보여주심이, 마태복음이 주님의 중심적인 접근이라
주님께 더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의 시도일 것이라,
하나님의 의(義) 의 본을 보이신 주님의 말씀이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시편은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Praise ye the Lord.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시편 106:1]
한글 성경에는 ‘할렐루야’ 로 기록되어 있지만, Praise ye the Lord 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며,
시편을 비롯한 성경 전체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행위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했음은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 for the LORD is good: sing praises unto his name; for it is pleasant.
시편 135:3]
하나님의 선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함이 기쁨이 됨은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선으로 대하시며, 공의로 대하시며, 차별이 없으신 공정, 공평하시며
인간과 함께 하시려 그리스도 주님을 보내주셨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끝없는 사랑으로 대하시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깊은 사랑에 대한 화답(和答)이
몸과 마음을 다한 말과 행동의 언행(言行)이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이 기쁨이라,
사랑을 시나 노래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함이라,
‘할렐루야’ 는 구약과 신약에서 많이 쓰여 있지 않고 신약에서는 계시록에 만 기록되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자들을 보면 경박한 사람으로 보임은
은사주의에 치우친 자들이나 사이비들이 자신의 말을 정당화 하거나 강조할 때 쓰거나
말 뿐인, 속은 하나님의 의에 떠난 자들이 잔치에 떠드는 외침이라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정신이 희미한 자들 같이
한 말을 자꾸 되풀이 하는 중언부언(重言復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행위가 경건한 예배라,
‘할렐루야’ 외친다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짐이 아니라서
성경은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며,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의 대상’이며
‘선하심’에 늘 ‘인자하심’을 동반하고 그리고 ‘영원하심’ 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부터 이미 시편을 듣고 외워서 찬송이 되었지만,
주님의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는 말씀을
마태복음은 주님의 선하심을 드러내 놓고 기록하지 않지만, 드러내는
마태복음의 시작 1: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는 창세기 5:1 의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와 같은 유사한 표현으로
창세기는 첫째 아담을 소개하고 마태복음은 마지막 아담을 소개하며
아담은 첫 인간이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로
‘예수’ 여호와의 구원자로, ‘그리스도’ 메시야로
‘다윗의 자손’ 메시야와 왕의 역할을 마태복음은 제시한다.

청년은
어느 계명을 주님이 말씀하시는지를 물었고
물음은, 청년이 다 실천하고 있는 계명인지,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계명인지 알 수 없었음은,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덧붙인 수많은 조항들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다른 새로운 계명인지 알 수 없었기에 물었지만
주님의 말씀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18-19]
십계명에 이웃 사랑을 추가하신 것 같지만
제 5계명은 부모 공경, 이웃 사랑은 제 6-10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고,
바울도 이웃 사랑과 함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서 13:3]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했고,
주님의 말씀하신 계명은 제 5-10 계명으로, 인간관계와 이웃에 대한 태도를 규정하는 계명들이라
제1-4계명을 말씀하지 않으셨음은,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같은 의미로 늘 말씀하셨으며,
당시에도 랍비들은 이웃 사랑이 율법의 요약이라 가르쳤지만
제5-10 계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런 영향을 받은 청년이 생각하는, 외적인 선행에 대한 자만을 지적하셨고,
이는 마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강조하면서 계명의 근본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리고
행하지 않았기에 주님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pay tithe of mint and anise and cummin,
and have omitted the weightier matters of the law, judgment, mercy, and faith:
these ought ye to have done,
and not to leave the other undone. 마태복음 23:23]
그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이 외적인 십일조로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세분화한 규정과
율법 전통에는 민감하여 세심하게 분리하여 보이는
남에게 보여주는 외적인 율법에 매인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이라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
율법을 준수한다면서 사소한 식물의 양을 구분하는 십일조에는 철두철미 하였으면서
율법의 근본 의(義)를 버렸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0]
부자 청년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 했다.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마가복음 10:20]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누가복음 18:21]
마태복음에는 모든 것을 지켰고 더하여 무엇이 부족한지를 주님께 물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19:20]
물론 십일조도 당연히 지켰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다 지킨 청년의 물음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지를 주님께 물었고, 주님의 대답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said unto him, If thou wilt be perfect, go and sell that thou hast,
and give to the poor,
and thou shalt have treasure in heaven: and come and follow me. :21]

이 마태복음을,
마가복음 10:21과 누가복음 18:22 절은 같은 청년의 기록으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Then Jesus beholding him loved him, and said unto him, One thing thou lackest:
go thy way,
sell whatsoever thou hast, and give to the poor, and thou shalt have treasure in heaven:
and come, take up the cross, and follow me.마가복음]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주님이 길을 떠나실 때, 청년은 소리치고 달려와서 끊어 앉고 ‘선한 선생님이시여’ 외쳤다.
그의 열정적인 행동과 진리를 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주님은 사랑하셨다.
마태복음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네가 영생을 얻고자 하는 온전함을 원하면,
주님은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사 말씀하시기를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하셨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주님의 어떠한 말씀이 연상되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천국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고, 진주를 사 듯,
영생을 얻으려면, 청년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 주고,
모든 소유를 말씀하셨다.
여기서 다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를 비교하여 보면,
십일조로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십일조로 드리며
식물을 세밀하게 이리저리 구분한 규정으로, 자신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의(義)를 드러내는
10분의1의 십일조가, 그들의 의(義) 인가,
아니면 주님은 십일조를 내라 시는 말씀인가.
그래서 율법의 정의와 긍휼과 믿음 도 지키고 십일조도 내라는 말씀인가.
말씀하신 십일조를 다시 자세히 보면,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너희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들은 율법에 더덕더덕 붙인 조항을 만들어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세밀하게 10등분으로 나누어
십일조를 드린다 하지만 십일조의 근본 취지인 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으면서
십일조를 한다고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구나.
그러나 너희의 율법대로, 너희 의 대로 한다면
그렇다면, 율법의 의가 사라진 십일조가 무엇이냐?
외식하는 자들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겠느냐?
외식하는 자들아!

주님은 외식하는 자들을 ‘화가 있다’ 하시며
저주하시는 수준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외식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십일조를 내라는 말씀이라 주장하여
‘십일조도 하고 의, 인, 신 도 버리지 않고 함께 하여야 한다.’ 고 주장하였고
주장하고 있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이 자신의 의로 곡해하여
주님의 말씀을 비틀은 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주님의 복음의 의를
빙자(憑藉) 하여
예물 중심으로, 교회를 성전이라 부르며 성전 중심이 되어
구약으로 돌아가 교회를 제단으로 부르는 자들이
그리스도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외치는 복음이라,
이런 자들은 예수님 당시부터 오늘날 까지 존재하며, 종교의식으로 외식하는 자들이라
복음을 비틀은 자들 이었고,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가는 자들이면서
자신들은 언제나 ‘정통 신학’ ‘정통 교회’ 라 자부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
현대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
이런 자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성도를
교회의 건물에 예속(隷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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