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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59.♡.♡.63)2019-07-02 09:55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그러면 주님의 비유의 말씀처럼
길가에 뿌려진 씨와
돌밭에 뿌려진 씨, 가시 떨기위에 떨어진 씨
그리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숙명(宿命)처럼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이란 말인가.
이미 예정 된, 정해진 결실이 없는 씨란 말인가.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였다는 거짓 선생들의 예정론을 주장하면
심각한 신앙의 갈등이 되어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인도하고, 따르는 자들은
길가에 떨어진 씨처럼 새들이 와서 먹고
돌밭에 떨어진 씨처럼 싹이 나오나 뿌리가 없어 말랐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처럼 가시가 기운을 막았기에 결실을 맺지 못한다.

다시 보면 ‘씨’ 는 ‘말씀’ 이라
말씀을 받고 ‘성장’ 하여 ‘결실’ 을 맺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

성경은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로
‘태초’ 는 ‘시작으로’
역사의 시작이지 하나님의 활동의 시작이 아니라,
성경은 인간의 역사의 시작이고 끝을 가리키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라 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인간과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로 성경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게 하시기에
그래서 성경의 창세기 2:4 절은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 으로 부르고
두 이름이 합쳐진 “야훼 엘로힘” 이라,

“엘로힘” 의 뜻은 창조자, 공급자, 유지자로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미하며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는
계명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 거룩한 이름의 발음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큰소리로 읽을 때 마다 ‘아돈(주, 소유자, 주인)’ 이라 대신 사용하였고
이것이 영어로 ‘야웨’를 ‘여호와(LORD)' 로 번역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구와 하늘(하나님 나라)을 만드셨다.

“야훼” 의 뜻 은
구원자, 구속자, 언약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사시고 영원히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미하며,

말씀으로 창조하신 빛 같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3]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를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복음 1:1]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말씀은 진리라
말씀의 하나님, 말씀으로 오신 주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으며,
말씀이 인격이 되어 인간을 사랑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그 말씀이 진리로 지혜의 말씀이 되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더라.

신약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하고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되지만
요한복음은 천지창조 이전에서 시작되어
복음서 전체에 걸쳐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공관복음은 이 진리를 나중에 드러내며,
요한복음은 성경 기록의 목적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But these are written, that ye might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e might have life through his name. 20:31]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믿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 성경의 기록의 목적이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들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었고, 얻는 다면,
과거와 현제, 미래를 표현하는 시제(時制)는 연속적이라
씨 뿌리는 비유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고정적으로 정해진 결실이 아니라,
이는 완벽하신 주님을 닮아 가는 성장을 결실로 표현한 비유라
성경의 시제(時制)와 비유는 문학적이라 할 수 있어
성경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일을 하나님, 주님, 성령님이 가르치신 다는
계시(啓示)적이라 계시 문학적 이라
인간의 한계선을 넘는 성경의 의미와 뜻과 진실성을
인간의 역사적인 시대와 세대에 전해오는 의, 식, 주, 등 생활에 대한 일상적인 표현으로는
구사하기가 또 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시제는 과거가 현재이며 현재가 미래인,
‘내’ 일생에 일어나는, ‘내’ 일생의 시간의 범위에 적응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의(義)가 내 사건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사건이 되고
이렇게 이끄시는 성령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성경의 모든 일들이 내 사건이 되어 신앙의 고백이 되면
눈이 떠져 옹색한 자신의 믿음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넓고 깊은 그리스도의 세계를 뚜렷이 보여
그 세계를 향해 인도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항해(航海)하며
거친 세상의 파도와 어려움과 고통의 풍랑(風浪)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로
자신을 사용하신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씀’ 은 헬라어의 logos 로 단순히 한 단어를 기리 킴이 아니라
메시지를 말하며 문맥에서 호칭으로 인격체의 ‘이성’ 을 나타내고
히브리인들의 히브리어는 ‘지혜’ 의 의미로 표현했기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이 ‘인격’ 이시면서 동시에 ‘지혜의 메시지’ 라는
헬라와 히브리를 같이 엮어 복음의 대상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實體)와 의(義)로 표현하였으리라.
그러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와 은혜의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기에
하나님께서 행하는 일은 다 신실(信實)하시기에 진실하시며 정직하시기에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으로 공평하시기에,

길가에 뿌려진 씨와
돌밭에 뿌려진 씨, 가시 떨기위에 떨어진 씨
그리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같은 씨’ 이며,
씨가 뿌려진 상태, 말씀을 받은 상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동행 하는 상태라 할 수 있어
이미 예정 된, 정해진 결실이 없는 씨란 ‘예정론’이 아니라
운명이나 숙명이 아니며 사이비들의 ‘이중 예정론’ 처럼 영생을 얻을 자와 심판을 받을 자를
창세전에 예정해 놓으셨다는 사이비들의 예정론이 아니라
주님은 모두에게 공평하신 분이라
주님께서 즐겨 사용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7]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9]
주님의 “누구든지...” 는 복음서와 신약 전체에 녹아 있는 차별이 없으신 말씀이라
가난한 자나 부자나 교회의 직분 자나, 모든 사람들, 인류에 공평하게 하신 말씀이라,

예수님은 ‘믿음과 동반한 행위의 성장과 진행과 결과’를 결실에 비유하여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요한복음 3:16]
모든 사람이 멸망치 않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가득하게
하나님의 자녀는 ‘진리의 말씀’ 이 삶에서 의를 이루는 무기이면서 결실이라
결실은 이 땅의 결실에서 하나님 나라의 결실로 나타나기에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씨 뿌리 비유’ 의 설명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But that on the good ground are they, which in an honest and good heart,
having heard the word, keep it, and bring forth fruit with patience. 누가복음 8:15]
‘씨’는 말씀이며, ‘밭’ 은 받은 자의 마음의 상태라
‘결실’ 은 ‘성장’을 동반한 상태라
(이는 믿음이 행위와 함께 함과 같이)
성장은 결실을 의미하기에
겨자씨 비유처럼
천국은 ... 겨자씨 한 알 같고,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천국은 ... 누룩과 같은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A = B' 라는 비유로 아람어의 관용적인 표현이라,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생긴 말이라 할지라도 반 복음적이라,
그러나 신앙의 고백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찬양하는 응답이라
바울은 이를 불가항력적인 사랑이라 고백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완벽하셨듯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은 완전한데
복음 자체는 순전(純全)한데
복음이 전파되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혼잡하게(corrupt)하여
변경시켰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For we are not as many, which corrupt the word of God:
but as of sincerity, but as of God, in the sight of God speak
we in Christ. 고린도 후서 2:17]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임으로 자기의 주장을 나타내려고 변경시키거나 욕심으로 변질시키지 아니하고
그가 전한 복음은 불순물이 없는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된 이 후 수많은 거짓 선생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성경을 빗대어 엉터리 교리를 만들었고
그 교리를 올무로 하여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도 모자라 자신의 포장할수록 분별력을 잃고
자신이 혼잡 된 거짓 선생이 됨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믿음으로 
세상의 세대와 시대를 휩싸인 결과 복음의 순전함을 훼손시켜
신앙과 종교를 혼합시켜
신앙의 양심을 잃은,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의를 망각한 종교화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무질서한 현상을 보라.
무엇이 이렇게 혼잡하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믿음인가.
순전함이 사라진 믿음
그런 믿음을 주님은 외식이라 하였고
이런 외식이 오늘날의 변절이며
자신의 슬픔이라 글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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