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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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1-04-01 01:4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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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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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맞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고 마음으로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끝내 주님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40여년 뒤....., 서기 70년....
여호와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다신교 우상숭배를 하는 로마에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점점 커졌고 기원후 66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로마에 저항한 유대독립운동은 70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항전하던 960여명의 자결로 처절하게 막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전역이 로마의 무자비한 진압의 칼날에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의 함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참극이었습니다.
유대항쟁 초기에 로마군에 항복하여 목숨을 건진 요세푸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지형적으로, 또 인공적으로 난공불락에 가까운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로마군 티투스 장군은 주후 70년 4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 둘러막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예루살렘의 극렬 유대인들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식량을 불태우고 온건파 유대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나중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 1만 여개의 투항을 하려 했거나 탈출을 시도했던 유대인들을 처형한 십자가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된 다음 유대인들 중 일부가 금화와 보석을 입에 넣거나 삼키고 예루살렘을 탈출하였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을 잡아 산 채로 배를 갈라 금은보화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4개월이 넘는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로마군의 성벽 파쇄기 공략으로 성전 뒤편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고 전투는 다시 성전에서 계속되고 성전이 함락되고 다시 예루살렘 시내가 로마군에게 함락되면서 무려 110만여 명이 사망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으로 막을 내립니다. 포로로 잡힌 유대인은 9만 7천여명에 불과했고 로마군은 성전에서 약탈한 보물을 가지고 로마로 귀환하였으며 지금도 티투스 개선문에는 그 당시 모습을 그린 벽화 부조가 남아 있습니다. 제사장을 죽여 배를 가르자 금화가 나왔고 불에 탄 성전기둥에서 녹아내린 금이 벽돌과 바위틈으로 스며들자 성전은 로마군에 의하여 깡그리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훼손되고 맙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이슬람 황금사원이 버티고 서 있고 남아있는 통곡의 벽은 벽이 아니라 성전 뜰 한편의 축대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참혹한 앞날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아들을 그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참혹한 예루살렘의 비극이 그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내어 주었다. 그런데 네가 거부하고 내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내치고 짓밟아 죽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비극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한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으라는 협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놓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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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맞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고 마음으로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끝내 주님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40여년 뒤....., 서기 70년....
여호와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다신교 우상숭배를 하는 로마에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점점 커졌고 기원후 66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로마에 저항한 유대독립운동은 70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항전하던 960여명의 자결로 처절하게 막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전역이 로마의 무자비한 진압의 칼날에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의 함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참극이었습니다.
유대항쟁 초기에 로마군에 항복하여 목숨을 건진 요세푸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지형적으로, 또 인공적으로 난공불락에 가까운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로마군 티투스 장군은 주후 70년 4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 둘러막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예루살렘의 극렬 유대인들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식량을 불태우고 온건파 유대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나중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 1만 여개의 투항을 하려 했거나 탈출을 시도했던 유대인들을 처형한 십자가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된 다음 유대인들 중 일부가 금화와 보석을 입에 넣거나 삼키고 예루살렘을 탈출하였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을 잡아 산 채로 배를 갈라 금은보화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4개월이 넘는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로마군의 성벽 파쇄기 공략으로 성전 뒤편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고 전투는 다시 성전에서 계속되고 성전이 함락되고 다시 예루살렘 시내가 로마군에게 함락되면서 무려 110만여 명이 사망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으로 막을 내립니다. 포로로 잡힌 유대인은 9만 7천여명에 불과했고 로마군은 성전에서 약탈한 보물을 가지고 로마로 귀환하였으며 지금도 티투스 개선문에는 그 당시 모습을 그린 벽화 부조가 남아 있습니다. 제사장을 죽여 배를 가르자 금화가 나왔고 불에 탄 성전기둥에서 녹아내린 금이 벽돌과 바위틈으로 스며들자 성전은 로마군에 의하여 깡그리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훼손되고 맙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이슬람 황금사원이 버티고 서 있고 남아있는 통곡의 벽은 벽이 아니라 성전 뜰 한편의 축대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참혹한 앞날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아들을 그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참혹한 예루살렘의 비극이 그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내어 주었다. 그런데 네가 거부하고 내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내치고 짓밟아 죽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비극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한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으라는 협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놓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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