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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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96.♡.♡.163)ㆍ2017-01-06 12: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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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뒤돌아보고 들어가면서.
어릴 적부터 성경을 배워가면서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성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회에서 설교와 수많은 사람들의 성경 풀이와 간증을 들으면서
자라 청년이 되면서 고민한 주제가 ‘성령’ 이다.
그 당시 은사를 받아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특히 방언을 못하면 버림받은 신자로 취급하는 어색한 분위기는
기복신앙을 향한 어그러진 길로 대형교회를 꿈꾸는
그 유행의 시작은 미국의 대형교회(메가 처치)의 영향을 받았고
그 밑바닥에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 부흥사들의 복음주의를 앞세운
보여 주기 식 사람모우기가 자신의 영향력 과시와 은사로
잘못된 은사 주의와 이렇든 저렇든 복음이 전해진다는
세 과시는 이미 순수한 복음을 떠나 어그러진 길을 향하였고
그 이전에 이미 잘못된 청교도 운동의 원인은 아직도 잘 아려져 있지 않다.
나의 청년시절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은사제일 주의에 무너지기 시작했으면서 미국의 것은 모두가 좋다는 맹목적인 숭미 주의와 와전(訛傳)된
청교도의 덫에 걸려 무분별한 온갖 잡동사니 프로그램과 신학, 책 등이 한국교회의 부흥이란 이름으로, 선교란 명목으로 부패를 부추겼음을
미국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부패해가는 교회의 변절을 바라보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시간 성경을 읽고 성경 학습 책을 구입하여 공부를 하고
수많은 유명한 목사의 설교 집과 간증과 성경강해와 주석서를 읽고
또 유명한 부흥사의 부흥집회에도 참석했고
더 성경을 읽기 위하여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첫 번째로 깔아놓은 프로그램이 성경이었고 그 후 인터넷이 연결되었을 때, 또 수많은 설교자의 설교와 강해서, 유명한 신학자와 신학 책, 교리 등 온갖 책을 다운 받아 읽었고
강연 등 동영상을 보고서도 ‘성령’을 알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성령’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다시 아침마다 성경읽기를 시작하여 속독을 하면 약6개월에 한번, 늦어지면 1년에 한번
더 정독하면 대략 1년 반,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읽었을 때
구약과 신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성령’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나름 지론(至論)이 생겼을 때
청년시절 거부하였던 거대한 부흥으로 둔갑한 은사주의의 물결을
보고 겪었던 부흥을 빙자한 잘못된 ‘성령 론’ 이라는 부패의 거대한 물결에서 반항하였던 시절은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함께 하셨던 성령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확신한 신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체감하여 가슴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도장을 새기듯
가슴에 각인(刻印, carving a seal)된 사랑 'charity' 으로
인치시고 (sealed)보호하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힘(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나를 인침(sealed me)이고
우리를 인침(sealed us)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의 끈으로 하나를 묶는,
그 끈이 순결한 사랑이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으로
소망의 끈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 모습의 손과 발과 온몸과 영혼이 되어
소망의 도구로 쓰임 받아
모두가 하나님의 경륜으로 하나가 되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크고 깊고 위대한 사랑, 그 사랑,
그 사랑으로 눈이 밝아지듯이
이는 엠마오로 가는 슬픈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으로
눈이 밝아진 두 제자처럼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누가복음 24:31]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19-21]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According to my earnest expectation and my hope,
진실한 믿음의 기대와 소망을 따라
이제 같이 인침(sealed us)을 받고 그 사랑 'charity' 의 눈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능력,
그 실마리가 권능(power of charity)이다.
이 ‘권능’ 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의미의 일반적이고 통속(通俗)적인
개념(槪念 fundamental concept)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하고 별난 주장이 아닌,
성경으로 성경을 풀어본 나름의 풀이를, 나누고 싶어 글을 쓰고 있고
아주 커다란 은사를 생각하고 은사주의에 치우쳐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성경풀이가 될지 모르겠다.
본인부터 이런 성경의 풀이를 들어보지 못했고 이런 글을 처음 쓰니까
그냥 한 신앙인의 격고 배운 고백으로 참고 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권능’을 이해하면 사도들의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쉽고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어 그리스도를 본받는 능력이 되어 간다는
본인의 고백이고,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랑이나 혼자 진리를 독점했다는 우월의식은 조금도 없음을 밝히며, 이로 인해 성경을 읽으면서 참 많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진리, 특히 ‘권능’을 간증하며 설명하려고
지금까지 쓰고 있고 쓴 세 가지의 글은 다시 소개하면
* ‘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주제는 ‘하나님’
부제는 ‘공의’ 로 하나님의 의(義)
*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주제는 ‘주 예수’
부제는 ‘그리스도’ 로 그리스도의 사랑(charity)
*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주제는 ‘성령’
부제는 ‘권능, 으로 진리의 권능
이 세 가지 주제의 글로 하나님 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성품과 진리를
쓸려 했는데 ‘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는 처한 환경 상 더 깊게 쓰질 못했고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은 20편 정도를 쓸려고 했는데 일상의 사정으로 6편으로 줄려 쓰다 보니 아쉬움도 많다.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은 두 편에서 못다 쓴 글을 보안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려 하며
우리의 능력,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와 능력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공급받는 힘
성령의 전으로서 권능으로
자신의 비굴한 신앙이 더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을 닮아 가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힘이 되여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가 일상의 속박에서 자유로, 은혜로,
더하여 평강을, 능력을, 권능을 받기를,
진리의 영, 성령님이 늘 함께 하길, 간절함으로 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5-8]
세상을 이기는 믿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즉 성령이 임한 힘,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는다는 의미로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인 복음의 증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 된 삶,
하나님의 높고 깊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 인 하나님의 의 인 공의로
살며 행하길, 인도하시고 증명하시는 능력의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은,
하나님의 진리의 인치 심이라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 이를 알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도 없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진리를 배우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읽고
성경을 읽을 때에도 주석과 신학 책, 강해서는 참고서 일 뿐,
성경의 같은 장, 구절이라도 우리의 이해와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각자의 처지와 환경이 다르듯 다른 의미의 뜻으로 진리를 인도하시만
성경의 범위에 벗어나지 않으신다.
그리고 왜 우리에게는 권능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변화 당하여 세속적인 유행과 사상을 쫓고
복음을 얘기하면서도 복음의 능력을 잃어서
어그러진 길로 향하고 있는지,
시간상 이곳의 지면상 길게 쓰지 못하여 짧은 글들이 되겠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하며 쓴다.
* ‘권능’ 은
권력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권능 자’ 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우리가 권능을 받는다면 하나님과 같은 권력이 생기는가?
아니면 예수님 같은 능력이 생기는 건가?
아니다.
그렇게 권능(power)이라고 착각한 숫한 유명한 목사, 부흥사들이
어둠의 길로 갔고 하나님의 권한을 부여 받았다는(authorized)는
기도원 원장, 목사, 부흥사 들이 이단이 되었고
더 하여 하나님의 대리인, 대언 자, 선지자, 예언자등과
예수님의 직통 제자, 계시자, 대리 자 등이 된 자 들이 진정한 능력자임을 과시하다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는데
사실 권능을 정확히 표현한 단어가 없다.
어느 신학자는 권(power) 능(authorized)이라 하고
많은 성경은 권능=power 로 사용하지만
권능(authorized)을 부여 받은 대행의 능력과 힘이라 하면 옳지 않다.
또 그것은(authorized) 어떤 권력기관이나 당국자, 국가의 권력으로 표현하였지 하나님을 어떻게 그런 권력과 비교 할 수 있는가.
권능은 성령님과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능력이기에
권능 =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이라 할 수 있고
본인은 본인의 좀 더 세밀하고 자세한 의미로,
권능=power of charity 라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power of charit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성경에 없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구약에도 ‘Holy Spirit’ 는 표현이 있고
권능은 확실히 성령님으로 받는 힘과 능력이고(the power of the Holy Spirit) 누구나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간직한 사람만 받기에
(power of charity),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는 본인의 주장이다.
왜냐 하면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선지자와 예언자를 통하여 예수님과 성령님을 증언하였고,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과 오실 성령님을 증언하신 분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언하셨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심이 중심이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charity’ 의 순결한 사랑의 증인이 되었고
증인이 됨이 고귀한 사랑의 증명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권능=power of charity 이다.
이는 권능 자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받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시기에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의 생활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듯이 공의의 생활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고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기에 권능을 받는 과정(過程)이 있다.
순서(順序)가 있기에
‘권능’ 의 더 자세한 뜻의
우리의 믿음의 시인은, 고백이
'acknowledge' 로
인정받고 허락받은 감사의 능력, 힘(power)이다.
그래서 지난 글에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이 권능을 받았다했고
권능은 믿음으로 얻어 지기에
믿음의 분별력처럼 권능도 분별력 있는 힘(power)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나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데살로니가 교회
뒤돌아보고 들어가면서.
어릴 적부터 성경을 배워가면서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성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회에서 설교와 수많은 사람들의 성경 풀이와 간증을 들으면서
자라 청년이 되면서 고민한 주제가 ‘성령’ 이다.
그 당시 은사를 받아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특히 방언을 못하면 버림받은 신자로 취급하는 어색한 분위기는
기복신앙을 향한 어그러진 길로 대형교회를 꿈꾸는
그 유행의 시작은 미국의 대형교회(메가 처치)의 영향을 받았고
그 밑바닥에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 부흥사들의 복음주의를 앞세운
보여 주기 식 사람모우기가 자신의 영향력 과시와 은사로
잘못된 은사 주의와 이렇든 저렇든 복음이 전해진다는
세 과시는 이미 순수한 복음을 떠나 어그러진 길을 향하였고
그 이전에 이미 잘못된 청교도 운동의 원인은 아직도 잘 아려져 있지 않다.
나의 청년시절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은사제일 주의에 무너지기 시작했으면서 미국의 것은 모두가 좋다는 맹목적인 숭미 주의와 와전(訛傳)된
청교도의 덫에 걸려 무분별한 온갖 잡동사니 프로그램과 신학, 책 등이 한국교회의 부흥이란 이름으로, 선교란 명목으로 부패를 부추겼음을
미국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부패해가는 교회의 변절을 바라보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시간 성경을 읽고 성경 학습 책을 구입하여 공부를 하고
수많은 유명한 목사의 설교 집과 간증과 성경강해와 주석서를 읽고
또 유명한 부흥사의 부흥집회에도 참석했고
더 성경을 읽기 위하여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첫 번째로 깔아놓은 프로그램이 성경이었고 그 후 인터넷이 연결되었을 때, 또 수많은 설교자의 설교와 강해서, 유명한 신학자와 신학 책, 교리 등 온갖 책을 다운 받아 읽었고
강연 등 동영상을 보고서도 ‘성령’을 알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성령’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다시 아침마다 성경읽기를 시작하여 속독을 하면 약6개월에 한번, 늦어지면 1년에 한번
더 정독하면 대략 1년 반,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읽었을 때
구약과 신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성령’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나름 지론(至論)이 생겼을 때
청년시절 거부하였던 거대한 부흥으로 둔갑한 은사주의의 물결을
보고 겪었던 부흥을 빙자한 잘못된 ‘성령 론’ 이라는 부패의 거대한 물결에서 반항하였던 시절은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함께 하셨던 성령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확신한 신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체감하여 가슴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도장을 새기듯
가슴에 각인(刻印, carving a seal)된 사랑 'charity' 으로
인치시고 (sealed)보호하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힘(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나를 인침(sealed me)이고
우리를 인침(sealed us)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의 끈으로 하나를 묶는,
그 끈이 순결한 사랑이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으로
소망의 끈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 모습의 손과 발과 온몸과 영혼이 되어
소망의 도구로 쓰임 받아
모두가 하나님의 경륜으로 하나가 되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크고 깊고 위대한 사랑, 그 사랑,
그 사랑으로 눈이 밝아지듯이
이는 엠마오로 가는 슬픈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으로
눈이 밝아진 두 제자처럼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누가복음 24:31]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19-21]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According to my earnest expectation and my hope,
진실한 믿음의 기대와 소망을 따라
이제 같이 인침(sealed us)을 받고 그 사랑 'charity' 의 눈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능력,
그 실마리가 권능(power of charity)이다.
이 ‘권능’ 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의미의 일반적이고 통속(通俗)적인
개념(槪念 fundamental concept)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하고 별난 주장이 아닌,
성경으로 성경을 풀어본 나름의 풀이를, 나누고 싶어 글을 쓰고 있고
아주 커다란 은사를 생각하고 은사주의에 치우쳐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성경풀이가 될지 모르겠다.
본인부터 이런 성경의 풀이를 들어보지 못했고 이런 글을 처음 쓰니까
그냥 한 신앙인의 격고 배운 고백으로 참고 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권능’을 이해하면 사도들의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쉽고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어 그리스도를 본받는 능력이 되어 간다는
본인의 고백이고,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랑이나 혼자 진리를 독점했다는 우월의식은 조금도 없음을 밝히며, 이로 인해 성경을 읽으면서 참 많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진리, 특히 ‘권능’을 간증하며 설명하려고
지금까지 쓰고 있고 쓴 세 가지의 글은 다시 소개하면
* ‘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주제는 ‘하나님’
부제는 ‘공의’ 로 하나님의 의(義)
*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주제는 ‘주 예수’
부제는 ‘그리스도’ 로 그리스도의 사랑(charity)
*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주제는 ‘성령’
부제는 ‘권능, 으로 진리의 권능
이 세 가지 주제의 글로 하나님 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성품과 진리를
쓸려 했는데 ‘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는 처한 환경 상 더 깊게 쓰질 못했고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은 20편 정도를 쓸려고 했는데 일상의 사정으로 6편으로 줄려 쓰다 보니 아쉬움도 많다.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은 두 편에서 못다 쓴 글을 보안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려 하며
우리의 능력,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와 능력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공급받는 힘
성령의 전으로서 권능으로
자신의 비굴한 신앙이 더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을 닮아 가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힘이 되여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가 일상의 속박에서 자유로, 은혜로,
더하여 평강을, 능력을, 권능을 받기를,
진리의 영, 성령님이 늘 함께 하길, 간절함으로 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5-8]
세상을 이기는 믿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즉 성령이 임한 힘,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는다는 의미로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인 복음의 증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 된 삶,
하나님의 높고 깊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 인 하나님의 의 인 공의로
살며 행하길, 인도하시고 증명하시는 능력의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은,
하나님의 진리의 인치 심이라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라, 이를 알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도 없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진리를 배우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읽고
성경을 읽을 때에도 주석과 신학 책, 강해서는 참고서 일 뿐,
성경의 같은 장, 구절이라도 우리의 이해와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각자의 처지와 환경이 다르듯 다른 의미의 뜻으로 진리를 인도하시만
성경의 범위에 벗어나지 않으신다.
그리고 왜 우리에게는 권능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변화 당하여 세속적인 유행과 사상을 쫓고
복음을 얘기하면서도 복음의 능력을 잃어서
어그러진 길로 향하고 있는지,
시간상 이곳의 지면상 길게 쓰지 못하여 짧은 글들이 되겠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하며 쓴다.
* ‘권능’ 은
권력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권능 자’ 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우리가 권능을 받는다면 하나님과 같은 권력이 생기는가?
아니면 예수님 같은 능력이 생기는 건가?
아니다.
그렇게 권능(power)이라고 착각한 숫한 유명한 목사, 부흥사들이
어둠의 길로 갔고 하나님의 권한을 부여 받았다는(authorized)는
기도원 원장, 목사, 부흥사 들이 이단이 되었고
더 하여 하나님의 대리인, 대언 자, 선지자, 예언자등과
예수님의 직통 제자, 계시자, 대리 자 등이 된 자 들이 진정한 능력자임을 과시하다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는데
사실 권능을 정확히 표현한 단어가 없다.
어느 신학자는 권(power) 능(authorized)이라 하고
많은 성경은 권능=power 로 사용하지만
권능(authorized)을 부여 받은 대행의 능력과 힘이라 하면 옳지 않다.
또 그것은(authorized) 어떤 권력기관이나 당국자, 국가의 권력으로 표현하였지 하나님을 어떻게 그런 권력과 비교 할 수 있는가.
권능은 성령님과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능력이기에
권능 =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이라 할 수 있고
본인은 본인의 좀 더 세밀하고 자세한 의미로,
권능=power of charity 라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power of charit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성경에 없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구약에도 ‘Holy Spirit’ 는 표현이 있고
권능은 확실히 성령님으로 받는 힘과 능력이고(the power of the Holy Spirit) 누구나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간직한 사람만 받기에
(power of charity),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는 본인의 주장이다.
왜냐 하면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선지자와 예언자를 통하여 예수님과 성령님을 증언하였고,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과 오실 성령님을 증언하신 분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언하셨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심이 중심이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charity’ 의 순결한 사랑의 증인이 되었고
증인이 됨이 고귀한 사랑의 증명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권능=power of charity 이다.
이는 권능 자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받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시기에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의 생활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듯이 공의의 생활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고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기에 권능을 받는 과정(過程)이 있다.
순서(順序)가 있기에
‘권능’ 의 더 자세한 뜻의
우리의 믿음의 시인은, 고백이
'acknowledge' 로
인정받고 허락받은 감사의 능력, 힘(power)이다.
그래서 지난 글에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이 권능을 받았다했고
권능은 믿음으로 얻어 지기에
믿음의 분별력처럼 권능도 분별력 있는 힘(power)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나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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