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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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96.♡.♡.163)ㆍ2017-01-06 11:4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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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복음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1:4-5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택하심을 받았기에 이를 은혜라 하면서
은혜, 은혜, 구호처럼 외치고 노래하면서
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지
말로만 복음의 능력이라 하지만 무엇이 능력인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바라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가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고, 어떻게 그들의 믿음이 되어 믿음의 일꾼으로
믿음의 행위로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인내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이 은혜의 소식 복음은,
소식인 말로 전하였지만 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과 함께 간절히, 간절히
간절하여서 목숨까지 내놓은 간절함으로 전 한 바울이 하나가 되어
듣고 전하는 능력이 된 것은, 능력의 말씀이 된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기에
바울과 동역 자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이 같은 형제가 되었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포함은
이 사건을 통하여 설교를 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이를 배워서 능력이
되어 본이 되었으면 한다.
이 구절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주된 고백이 아닐까 한다.
이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로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대략 A. D50-51 년으로 추정되며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머문 약 3주간에 설립된 교회이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17:1-2]
세 안식일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들이 세운 교회라
아직 영적으로 어린 데살로니가교회는 외적으로 유대인의 박해와
내적으로 옛 생활의 유혹이 있었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면서
디모데를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로 파송하였고
나중에 디모데로 들은 기쁜 소식으로 바울은 감사하였지만
아직 재림의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 등으로 또 박해와 시험에 대하여
도와주기 위하여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도들이 어려운 환난 중에서 말씀을 받아 삶이 변하여
그들의 믿음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고
마침내 각 지방에 믿음의 소문이 퍼져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6-8]
바울과 동역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머문 짧은 시간에
구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증거하며 증인이 되었고
또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2:8]
바울과 동역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음뿐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했음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교회이고
이를 본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는 자의 본을 보여줌으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어떻게 짧은 3주 만에 복음을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교회도 묘하지만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가게 된 하나님의 섭리도 묘하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소동이 일어나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갔고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2:2]
고난과 능욕을 당하며 데살로니가로 갔으나
거기에서도 유대인의 박해를 피할 수 없었는데도 복음을 전했다.
그것도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바울이라 핍박이 많았는데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더 놀라운 일은 유대인 회당이
신약시대 초대교회의 복음의 발판이 되었고
세계복음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핍박이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도 없고
핍박이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중 이방인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인 바울의 시각에서 보면 이방교회이고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이 바라본 바로도 이방교회이지만
이방교회가 설립된 것도
유대교와 다른 이방 종교의 박해를 받으며
교회로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유지 되었고 본이 되었음은 놀라운 일이라
이는 하나님의 계획인 경륜으로 되었음이 틀림없다면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방교회 보셨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공평 공정하신 분이시라 이스라엘과 분리하여 이방교회라
하지 않으셨음은,
복음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소식이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bond nor free,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e are all one in Christ Jesus.
갈라디아서 3:27-28]
그리스도의 복음의 옷을 입으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지금의 이스라엘인이나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이고
하나의 믿음의 공동체이며
더욱이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유대와 이방의 벽이 헐렸고,
왜 예수님은 성전을 헐 우신다 하셨고 성전을 헐 으셨나?
아직도 성전이 건물인가?
하기야 교회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자들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지가 아닐뿐더러
더 이상 그들만이 선택된 민족이 아니고 그들도 복음을 전할 족속인 뿐인데
무엇으로 그들과 이방인을 나누는가?
어느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였기에
이방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는 대체신학을 주장하고
우리의 교회를 ‘이방인 교회’ 라 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예루살렘 제삼 성전의 완성이라 주장하고
일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를 박해한 지난 과거의 역사의 일을 사죄하여야 한다 주장하고
그런 세대주의 무리에 속한 목사가 동성결혼을 반대로
교단을 탈퇴한다 하여 영웅 취급을 받는 일을,
그가 교계갱신과 발전을 위한 토론에서 의견을 내놓고 무엇인가 변화를 바라는 이곳의 기사를 보면서
또 성경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Thus saith the LORD unto this people,
Thus have they loved to wander, they have not refrained their feet, therefore the LORD doth not accept them;
he will now remember their iniquity, and visit their sins.
예레미야 14:10]
(데살로니가 교회)
복음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1:4-5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택하심을 받았기에 이를 은혜라 하면서
은혜, 은혜, 구호처럼 외치고 노래하면서
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지
말로만 복음의 능력이라 하지만 무엇이 능력인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바라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가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고, 어떻게 그들의 믿음이 되어 믿음의 일꾼으로
믿음의 행위로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인내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이 은혜의 소식 복음은,
소식인 말로 전하였지만 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과 함께 간절히, 간절히
간절하여서 목숨까지 내놓은 간절함으로 전 한 바울이 하나가 되어
듣고 전하는 능력이 된 것은, 능력의 말씀이 된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기에
바울과 동역 자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이 같은 형제가 되었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포함은
이 사건을 통하여 설교를 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이를 배워서 능력이
되어 본이 되었으면 한다.
이 구절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주된 고백이 아닐까 한다.
이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로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대략 A. D50-51 년으로 추정되며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머문 약 3주간에 설립된 교회이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17:1-2]
세 안식일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들이 세운 교회라
아직 영적으로 어린 데살로니가교회는 외적으로 유대인의 박해와
내적으로 옛 생활의 유혹이 있었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면서
디모데를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로 파송하였고
나중에 디모데로 들은 기쁜 소식으로 바울은 감사하였지만
아직 재림의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 등으로 또 박해와 시험에 대하여
도와주기 위하여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도들이 어려운 환난 중에서 말씀을 받아 삶이 변하여
그들의 믿음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고
마침내 각 지방에 믿음의 소문이 퍼져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6-8]
바울과 동역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머문 짧은 시간에
구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증거하며 증인이 되었고
또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2:8]
바울과 동역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음뿐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했음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교회이고
이를 본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는 자의 본을 보여줌으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어떻게 짧은 3주 만에 복음을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교회도 묘하지만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가게 된 하나님의 섭리도 묘하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소동이 일어나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갔고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2:2]
고난과 능욕을 당하며 데살로니가로 갔으나
거기에서도 유대인의 박해를 피할 수 없었는데도 복음을 전했다.
그것도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바울이라 핍박이 많았는데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더 놀라운 일은 유대인 회당이
신약시대 초대교회의 복음의 발판이 되었고
세계복음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핍박이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도 없고
핍박이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중 이방인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인 바울의 시각에서 보면 이방교회이고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이 바라본 바로도 이방교회이지만
이방교회가 설립된 것도
유대교와 다른 이방 종교의 박해를 받으며
교회로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유지 되었고 본이 되었음은 놀라운 일이라
이는 하나님의 계획인 경륜으로 되었음이 틀림없다면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방교회 보셨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공평 공정하신 분이시라 이스라엘과 분리하여 이방교회라
하지 않으셨음은,
복음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소식이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bond nor free,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e are all one in Christ Jesus.
갈라디아서 3:27-28]
그리스도의 복음의 옷을 입으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지금의 이스라엘인이나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이고
하나의 믿음의 공동체이며
더욱이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유대와 이방의 벽이 헐렸고,
왜 예수님은 성전을 헐 우신다 하셨고 성전을 헐 으셨나?
아직도 성전이 건물인가?
하기야 교회건물을 성전이라 하는 자들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지가 아닐뿐더러
더 이상 그들만이 선택된 민족이 아니고 그들도 복음을 전할 족속인 뿐인데
무엇으로 그들과 이방인을 나누는가?
어느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였기에
이방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는 대체신학을 주장하고
우리의 교회를 ‘이방인 교회’ 라 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예루살렘 제삼 성전의 완성이라 주장하고
일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를 박해한 지난 과거의 역사의 일을 사죄하여야 한다 주장하고
그런 세대주의 무리에 속한 목사가 동성결혼을 반대로
교단을 탈퇴한다 하여 영웅 취급을 받는 일을,
그가 교계갱신과 발전을 위한 토론에서 의견을 내놓고 무엇인가 변화를 바라는 이곳의 기사를 보면서
또 성경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Thus saith the LORD unto this people,
Thus have they loved to wander, they have not refrained their feet, therefore the LORD doth not accept them;
he will now remember their iniquity, and visit their sins.
예레미야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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