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독사의 독 > 나눔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페이스 상패 제이미 제이미혜택


 

현재 이 게시판은 스팸때문에 본 글을 쓰기 위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자유게시판에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시는 분은 반드시 글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래 게시물 관리방침을 확인하여 주세요. 댓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팸방지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유게시판 논객님들은 회원등록을 통해 자유로운 수정과 글쓰기를 이용하세요. 사이트 맨 위 오른쪽에 회원등록 링크가 있으며, 바른 이메일만 요구하며 익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나눔게시판

캄보디아 독사의 독

페이지 정보

대장쟁이 (142.♡.♡.150)2024-05-24 07:22

본문

갈 4:22-24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킬링필드로 알려진,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캄보디아에는 그 때 매설된 수백 만 개의 지뢰가 곳곳에 남아있어 지뢰로 인한 부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는 지뢰 말고 다른 이유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도 많습니다. 독사 때문입니다. 한 번 물리면 치명적인 극소량의 독이 모든 것을 녹이고 소화시켜버린다고 합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데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피가 끝없이 흘러나오고 살이 썩기 때문에 물린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소량의 독이 그렇게 강한 소화력을 발휘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이 뱀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서도 수많은 화학물질이 분비됩니다. 바로 호르몬입니다. 인슐린, 성장호르몬, 아드레날린, 멜라토닌, 도파민, 세로토닌, 에피네프린, 옥시토신, 페로몬 등 인체에서 생성되는 많은 종류의 호르몬도 엄청나게 강력한 화학물질들입니다. 아주 적은 양으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독과 호르몬의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복음의 능력은 더욱 강력합니다. 독사의 독이나 호르몬 따위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복음은 죽었던 생명을 살리고 슬픔과 절망을 기쁨과 희락으로 바꿉니다. 사람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세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베드로와 또 제자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사람들에게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주께로 돌아옵니다. 사람들마다 기쁨으로 주를 찬미하고 모든 소유를 팔아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복음이 불길처럼 퍼져나갔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도바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을 바쳐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사도바울에게서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의 육신에는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바울의 추한 외모, 간질로 인한 발작증세 같은 것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시험거리를 갖고 있는 사도바울을 기쁨으로 영접하였습니다. 할 수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줄 만큼 사도바울을 사랑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지 않습니까? 죽어있던 내 영혼에 복음이 빛이, 주님의 생명이 비취었을 때 우리는 세상이 뒤바뀐 것 같은 환희와 사랑을 느끼지 아니하였던가요? 아, 지금은 세상근심 가시덤불 밑에서 식어버린 가슴으로 헐떡이고 있지만 그 감격, 기 기쁨이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냉각과 차분함에 대하여 우리는 이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냉각은 당연한 일입니다. 감격과 기쁨으로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뜨겁게 방방 뛴다면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겠습니까? 차분하게 가라앉고 정돈되어 큰 강물 같고 큰 바위 같이 자리잡은 믿음은 우리에게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처음의 그 뜨거움과 사랑이 식자 그것을 믿음이 사그라진 것으로 생각하여 불안해하였고, 그래서 열심을 추구하였고, 이것을 노리고 거짓형제들이 다른 복음, 곧 율법으로 그들에게 접근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안해하는 성도들을 율법의 올가미로 엮어서 끊임없이 열심을 내도록 만드는 것, 그리하여 그 열심을 믿음의 진보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율법이 우리를 종으로 삼는 또 한 가지 속임수가 아닐까 합니다.

계속하여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종의 자녀가 아니다. 너희는 자유자의 자녀다.” 사도바울은 육신적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계집종 하갈을 율법으로, 약속으로 이삭을 낳은 자유인 사라를 복음으로 비유하면서 어리석게 율법의 멍에를 멘 종이 되지 말고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이 주었던 처음 그 감격과 기쁨이 식어지면 불안해하고 그 감격과 기쁨을 다시 찾아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그러다가 다른 엉뚱한 독사의 독을 받는 것과 같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신앙이 식었다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자유가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을 가슴속에 큰 바위처럼 담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평안을 누리십시오.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자신의 영혼을 자유케 하십시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갈 자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으로 자유하십시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나눔게시판 목록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연락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