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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6-14 09:51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마태복음 6:11-13]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다시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이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말하며 하늘나라에 참여한 성도는
하늘나라의 모형이 된 이 땅의 ‘신앙의 공동체’ 는
우리 주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인 예수님이신 것처럼
신앙의 공동체는 예수님께 속한 오직 한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성도와 성도가 교통하고 공동체와 공동체가 교통해야 하는데
그런가?
왜 그럴까?
복음의 본질인 순수와 순결이 변질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그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 ‘charity’를 온전히 알지 못하거나 잃었기에
그 사랑의 사건이
오늘날의 내 사건이 되지 못한 종교인이 되었기에
자타가 성도라 하면서 서로 교통하지 못하기에
교회라는 공동체가 서로 교통하지 못하기에 공동체라 부르기에
어림없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름만 교회인 집단이 널려있기에
이리 저리 수많은 교단으로 갈라졌고 같은 교단에서도 교통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순수함이 사라진 이 현상은 순결하고 고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하지 못하였기에 성령님께서 교통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 사랑, 사랑을 노래하나 사랑에 굶주린 이 초라한 현상은
늘 일용한 양식에 궁핍(窮乏)에 허기진 현상은
교회의 건물이 화려할수록 십자가 장식이 요란 할수록 메말라
서로가 서로에게 황폐한 교인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위안도 못되는
현대의 교회를 신앙의 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속지 말라.
종교화한 신앙은 아무런 능력이 없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빗대어 선지자를 죽이고자 하는
예루살렘의 종교화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3:35]

그 때와 무엇이 다른가?
메말라 황폐하여 진 이 시대도
성도들에게도 먹고 마실 양식과 말씀으로 순종하는 양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허기진 이 시대에.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우리의 일용할 양식(our daily bread) 에는 수많은 뜻이 담겨 있다.
‘우리의 양식’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우리를 향한 양식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삼은 의(義),
공의와 우리가 자녀 된 의(義)로 행하여야 할 도리가 내포된 의미를
나누어 보자면
성경의 양식은 말씀의 양식으로 듣고 읽고 행하는,
육신의 양식을 먹고 마셔서 움직이는 행함이 있는
행하는 행실까지를 양식이라 하지
말씀(성경)과 육체의 음식 그리고 복음의 어그러진 기로 간 자들 같이
단지 설교를 양식이라 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양식을 보면

구약의 양식(bread)은
사람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시며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 노동을 말씀하시며 양식을 언급하셨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창세기 3:19]

땀을 흘려야 양식(eat bread)을 먹는 양식은 육체만을 위한
흙(dust)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return unto the ground)
양식은 육체의 유지를 위한 그리고 육체의 죽음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령이 되게 사람을 지으셨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창세기 2:7]

육체의 죽음은
생령이 된 사람이, man became a living soul.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return unto the ground.
육체의 죽음은 생령(living soul)을 잃는 죽음이었고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하나님의 형상, in his own ‘ image ’를 잃는 죽음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1:27]

그래서 사람은 생령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육신에 불과한 죽음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return unto the ground.
육신의 살(flesh)에 불과했기에
하나님의 의(공의)를 도저히 행하지 아니하고 패역하기에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And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6:3]

그래서 양식(bread)은
하나님의 영과 형상이 사라진 육신의 유지를 위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
육체만을 위한 양식이 되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은 사탄을 저주하시고
그리스도 구원자 예수님을 예비하셨다.

신약의 양식(bread)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돌로 떡을 만들게 하라는
시험에 답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 만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마태복음 4:4]

“기록 되었으되”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을 언급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말씀하셨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제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And he humbled thee, and suffered thee to hunger,
and fed thee with manna, which thou knewest not,
neither did thy fathers know;
that he might make thee know that man doth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doth man live.]

이제는 빵만이 아니라,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낮추며 마음이 어떠한지
명령을 지키는지 시험을 받았듯이
이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다.
왜,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Jesus led up of the spirit)
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십년 시험을 받은
낮추며 마음이 어떠한지 명령을 지키는지 알려 하시려는 시험과,
만나를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심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었기에
사십 년 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보호하시고 가나안, 신앙의 공동체인 세상의 가나안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땅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길을 따라가며 경외하기 위하여,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4-5]

하나님께서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게 하며 경외하는 것
‘경외’ 는 생명의 길이며 지식의 근본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실려고, 마치 사람이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허락하셨기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I am that bread of life. 요한복음 6:48] 하시며
이스라엘 조상들은 광야에서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들이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살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인 복음의 ‘말씀’ 이며
단지 전하는 기쁜 소식인 복음으로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이 주장하는 전도와 선교만을 의미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공의로 행하여 온전히 이루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이루는 일 까지 라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의 소망인 ‘생명’ 인 복음이라
피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행실이 일용할 양식이 되며
성도의 행실(your good works)이 생명이라
행실이 일용할 양식이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을 설명하시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르는 이것이니라
Jesus saith unto them, My meat is to do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요한복음 4:34]
그래서 예수님의 양식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to do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시며 긍휼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
그 일이 양식이며
그 일을 온전히 이르는 일
(to finish his work) 이라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 땅에서 이루는 복음,
그래서 마가복음은 그 시작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썼고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 했고
하나님의 일, 선하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긍휼로 사랑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양식과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거룩히 세상에서 여김을 받는 일,
그래서 하나님의 의(공의)의 빛으로 비추는 일,
그래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
그 일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라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복음의 길이며 양식인데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종교 지도자가 된 선생들과 종교인이 된 자들은
일용할 양식을
오직 설교를 양식으로, 스스로 높이어 ‘말씀 선포’ 라 하고
육체를 위한 음식을 양식으로 만 여겨 세상과 짝을 한 세속화 하였기에
‘말씀’ 과 ‘육체의 양식’을 양식으로, 단지 양식으로 여겨
양식을 먹는 자의 도리, 행위가 안중에 없는 도외시(度外視)하여
진정한 양식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오도(誤導)를 하여
성령님을 부정하기에 성령님과 함께 하지 아니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진정한 양식은
하늘나라를 이 땅에 온전히 이르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 자녀로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그리스도를 닮아
이루는 일이 우리의 양식임을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친 마음의 중심에서 역사하시기에,
역사함이 없다면 당신이 누구든 교수든 목사든 장로든
신앙인이 아니라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서
신학이든 어떠한 학문을 배워 수학(受學)하였더라도
그것은 단지 지식에 지나지 않는 학문이라 종교의 길이라
종교의 지침(指針)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
‘양식’ 이라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5]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에서 추수할 일꾼으로 일 할 때,
우리의 때가 이 시간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의(義)로 그리스도의 세상이 오게 하는 때,
그 때를 위하여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성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의 교회에게 또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성도 모두의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공급하신다 했다.
(my God shall supply all your need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by Christ Jesus.)
그리고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썼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6-19]

댓글목록

공유님의 댓글

공유 69.♡.♡.180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예표적인 방식 곧 상징적인 방식으로 증거하였고 신약성경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히 증거하였다. - 옛신앙

"가나안 땅은 예수님의 예표이다" 또는 "가나안 땅은 천국의 예표이다"는 해석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 정복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매일 성을 한바퀴씩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6일 동안 매일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성을 일곱 바퀴 돈 후,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들을 길게 울려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성은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으로 들어가 그 모든 사람들을 쳐서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기이한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다음 성인 아이성에서는 패배했습니다. 여리고성에서 승리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왜 작은 아이성에서 패배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열번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여서 처음에는 만나도 주고, 샘물도 주고, 메추라기도 보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주로 받아드렸고, 하나님의 명령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꾀로 한번 싸워 보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유는 세상 만사를 작정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믿고 순종하지 않았고, 자신을 믿고 스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다가 패배하였습니다.

오늘날 목회 현장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죄와 다를바가 없다고 봅니다. 주님의 교회를 내가 해 보겠다는 목사 믿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저는 가나안을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인 세상의 가나안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땅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길을 따라가며 경외하기 위하여, "
마태복음의 예수님께서 신명기를 인용하신 말씀을 따라서.

옛신앙, 이 분을 글이 마음에 닿는가 봅니다.
저는 오래전 이분을 글을 조금 읽다 그만두었습니다.
건방진 얘기를 하자면
이 분과 노우호 목사의 성경 강해는 읽은 만 한데
다른 유명한 목사와 같이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현대의 교회에서 머문 성경의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하나님 나라에 연결시키지 못해, 아시는 지식에 비하여 깊이가 없고
목사라는 직분에 대단한 자부심은 대단 하시더라구요.
물론 제가 두분 다 비판 만을 할려는 의도는 없고
읽을 만은 하다, 참고 할 만 하다, 생각합니다.
더 첨언하자면 이 분들을 포함한 한국 목사들의 결함이
가톨릭과 똑같이 분리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몇번 쓸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종교개혁의 '이신 칭의' 의 영향을 받고
다른면으로 자신들의 직분을 높혀서
'믿음' 과 '행실' 을 분리시켰기에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따로 국밥이 한국교회를 타락시킨 원인이 된다 봅니다.

성경의 신앙 공동체는 누가 리더가 아니라
리더가 리더를 만들고 리더는 모두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하나된 신앙이 아니라
끼리 끼리 만의 모임이 가톨릭과 똑같은데 가톨릭을 욕하고
더하여 가톨릭을 빙자한 음모론은 얼마나 자신이 허접한지
스스로를 들어내는 일인지 모르고 직분끼리, 신학교 끼리, 동향이라
서로 끼리 끼리의 모임이 자기들 만의 모임이 되어
모두가 함께 하나되는 복음의 의를 역행하는 일인지 모르니
예수님 당시와 같이 종교 세력이 되었고 될 려 노력합니다.
또 그런 자들에게 침묵하는 자들도 똑같구요.
어디 멀리 볼 것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이 게시판의 현상이니까요.

교제가 무엇인가.
세상의 정직의 개념보다 못한
정직의 개념을 성경을 통해서 바라보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라 주문을 하니.
확실한 건, 불의에 침묵하면 성령님도 침묵하신다는 겁니다.
침묵하지 않는, 용사가 되시길
저도 원합니다.

바나바님의 댓글

바나바 50.♡.♡.87

"구약은 상징적으로..신약은 그리스도안에서 성취.."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하므로..."
"자기들의 꾀로 한번 싸워 보려다가.."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너무나 옳고 요긴하고 힘이되는 글들이 어우려져서 공유님의 글에 매료를 느낌니다  그런데 이런글이 뎃글 보다는 별도로 타픽이 되어서 쓰여지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남의 장단(글)에 춤을 추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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