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이스라엘 6일 전쟁,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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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24.♡.♡.100)ㆍ2017-01-30 11: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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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114.♡.♡.146
마지막 날에 전쟁시에도 그런 일들이 있어나겠도록 하겠다고 하니
하나님을 찬양하며 소망하며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따르렵니다.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100.♡.♡.223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게하시에게 온 산 가득 불병거가 보이는 일들이 그 때에도 일어났군요. 1967년, 50년 전....
짐보님의 댓글
짐보 96.♡.♡.163
이 영상을 보면서
이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다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써야겠다 생각하여 글을 쓰고 올립니다만 제가 잘못된 역사적 사실이나 신앙의 개념이 있다면
지적해 주셔도 좋고,
단, 이 영상을 올리신 별똥별님의 의도인 ‘하나님의 개입’ 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글이 아니며 이 글은 저의 다른 시각, 예를 들면 저는 전사(전쟁의 역사)를 관심이 많았기에 군사세계를 어느 정도 안다고 스스로 가정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듯이 우리가 똑같은 신앙의 색깔일 수 없듯이
반대와 편견이 아닌 글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영상의 보다가 역사적 사실이 결여된 짜깁기한 영상 같아 출처를
보니 ‘한국 메시아닉 선교방송’에서 만든 영상이라 신뢰를 할 수 없습니다.
영상을 따라간 'You Tuve' 는 올린 사람의 comment을 보면
{Published on Mar 14, 2015
이 영상을 보시고, 토라(율법)나 샤밧(안식일), 절기등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010-4009-1611이나, 010-4425-4377으로 연락을 주시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한국 메시아닉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인 토라(율법), 안식일, 절기를 회복하고 반 유대주의와 대체신학을 거부하는 공동체입니다.}
메시아닉 교회의 신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실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은 토라(율법)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사랑인 복음이라서 율법의 완성이며 토라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안식일과 절기의 회복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주님은 하늘나라를 선포하셨고 절기의 회복인 희생제물을 바친 제사와 어느 때와 날을 기념하는 성회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세상을, 하나님의 의(공의)가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사명이지 그들이 말하는 ‘회복’ 즉 ‘이스라엘의 회복’ 이나 ‘제 3성전’을
만드는 성전의 회복이 아니며 ‘반 유태주의’ 든 유태인의 지지 이든 그런 유태인에 매인 복음이 아니라 복음은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라서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복음은 인류를 위한 ‘구원’ 이자 ‘평강’이기에, 역으로 그들 메시아닉이 대체신학과 세대주의 자들 이며
그들의 구성원에 포함된 신사도파나 치우친 은사주의 자들이 순수한 복음을 굴곡 시키며 복음의 능력을 반감시키는 자들이라서, 이 영상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Dvn_rJnKqA
‘사탄의 걸작품은 이집트에서 나온 신학교, 교단, 총회, 목사제도이다.’
의 제목처럼 그들은 근본의 뿌리는 유대교와 개신교의 제3지대를 형성하는
사이비들일 뿐이며 어떻게 개신교의 뿌리를 이집트에서 찾는지.
대부분의 사이비들은 신약의 복음을 언급하면서도
구약시대로 들어가서 구약의 관습과 제도 이를테면 제사장등 이미 없어진
제도를 현대의 관례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제도적인 권위의식을 드러내어
복음의 의와 선포를 절감시키며 어그러진 복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만의 정통성을 강조합니다.
이제 ‘67년 6일전쟁의 실화’의 허상이나 과장 대하여 쓰기 전에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겼다는 주장에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의(공의)를 넘어선 개입이나 임재 같은 현상은
조심해야 한다 봅니다.
먼저
‘전쟁’ 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까지 한 사랑
그 사랑의 방식일 까요?
그 외 영상들 ‘6일전쟁의 기적, 천사’ 등 이스라엘 전쟁의 관점은 철저히
이스라엘의 시각으로 쓰여 졌고 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기적과 천사가 없더라도 이스라엘이 일방적인 공격으로 이긴 전쟁입니다.
1967년 6월5일 부터 10일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연맹의 6일 전쟁을
서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이스라엘 측에서는 ‘6일 전쟁’
아랍 연맹에서는 ‘6월 전쟁’ 이라고 하고
그 회수로 ‘제 3차 중동전쟁, 이라 하며
‘제 1차 중동전쟁’ 은
1948년 5월14일~1949년 3월 영국의 식민지 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엔의 중재 하에 지역을 분리하여 이스라엘에게 할당하려 하자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등이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중동전쟁의 시작으로 이스라엘 측에서는 독립전쟁이라 부릅니다.
‘제 2차 중동전쟁’ 은
이집트 나세르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소련과 무기협정을 맺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무기를 도입하려 했고 아스완 댐 건설을 미국과 프랑스 영국에서 지원을 받으려는 이중외교로
미국 영국이 아스완 뎀 건설의 지원을 거절하자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를 선언하고 수에즈 운하를 점령해 일어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선박의 운하 통과를 금지당하여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지원
하에 이스라엘은 자신들 국토의 3배가 넘은 시나이를 점령하였지만 관리할
능력도 없었기에 UN의 중재로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수에즈 전쟁’ 이란 이름을 남기고 전쟁은 종결되었고
‘제 3차 중동전쟁’ 이라 불리는 6일 전쟁의 원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거쳐 인도양을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티란 해협을 통하여 이란 산 석유를 수입하였고 만약 이곳과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가 봉쇄하면 아프리카 희망봉과 지중해를 거쳐야 물자를 운반할 수 있었는데
6일 전쟁 당시 이 티란 해협을 이집트가 봉쇄하였고
그 당시 시리아의 바아스당을 장악한 아민 하페즈는 강력한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이스라엘과 빈번한 무력 충돌을 하였고
이집트는 이런 시리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 일대에 이스라엘이 농작물을 경작한다는
일방적인 조치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무력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1964년 5월 야세르 아라피트를 의장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만들어지면서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을 승인하면서
기존에 있던 알파타(AL-Fatah)와 팔레스타인 해방군(PLA)에 이어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조직이 결성되어 이스라엘을 위협했으며
아랍 국가들은 67년 5월 국경에서 이스라엘의 전면 철수하는 성명을 냈고
이스라엘은 5월20일 전 국민 동원령을 발표해 전쟁을 준비했으며
29일 남쪽의 이집트, 북쪽의 시리아, 동쪽의 요르단을 동시에 상대하는
전쟁 체제에 돌입하고
이스라엘은 자국을 둘러싸고 있는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차례로 기습공격 하기로 계획하고 승리의 관건은 이집트 공군을 격파하는데 있다 보았기에 이스라엘 공군은 6월5일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에 이집트 비행장을 공습하여 이집트 군이 조기경보장치를 잠깐 끄고 조종사들이 긴장을 풀 시간에 50m 저공비행으로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로 멀리 우회하여 기습공습을 하여 286대의 전투기를 파괴하였기에 이집트군은 초반에 정의를 상실하였고 공습 개시 3시간 만에 아랍 측 공군기지를 공습하여 무려 400여대의 전투기를 파괴하여 이스라엘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이스라엘 지상군은 시나이 반도로 진격하고 수에즈 운하에 도착하였고
전쟁 4일 만에 이집트는 UN의 정전권고를 수락하였고
요르단과 시리아도 이스라엘 공군의 일제 기습공격을 한지 25분 만에
두 나라 공군은 완전히 궤멸했습니다.
6일 전쟁의 이스라엘의 영웅은 ‘엘리 코헨(Elie Cohen)’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로 유명하며 그는 이집트 출생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모사드의 첩보원이 되어 시리아계 아르헨티나 실업가(가구 무역회사 사장)으로 위장하여 시리아의 상류층에 침투하여 엄청난 재력가로 고급장교, 기업가, 정치가와 교류하면서 시리아의 국방부와 군사시설에
고위 장교들과 어울렸으면서 군사에 대하여 관심 없는 듯이 행동하며 정치인과 군 수뇌부 인사들의 부인에게 온갖 사치품을 수시로 선물하였고
군부 유력자들과 정치인들에게 인기와 신용을 얻어 시리아 정부 요직을
맡을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당시 시리아 알하페즈 대통령은 그를
국방상으로 임명할지 거론할 지경이었지만 코헨은 사소한 방심으로 숙소에서 이스라엘로 보내는 무전 때문에 인도 대사관은 뉴델리로 보내는 전파방해를 받고 있다는 신고로 시리아 당국은 소련의 군사고문단에 의뢰하여
소련의 탐지 반은 송수신기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고 시리아 방첩대원들은 코헨을 체포 하게 됩니다.
그 이전 시리아는 1950년 말부터 이스라엘과 전쟁을 계획하면서 골란고원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여 병력을 배치하였지만 노출된 평원지대에 병력과 장비의 위장이 곤란하여 이스라엘 정찰기에 노출되었기에 6일 전쟁 전
시리아군은 이 지역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 병력과 장비를 위장하였는데 이 나무를 심도록 조언한 사람이 이스라엘 스파이 엘리 코헨이었는데 코헨의 권유에 따라 골란고원 군사기지에 대규모 조림작업을 하였기에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골란고원의 조림지만 골라 집중공격을 했기에 오늘날 골란고원의 유칼립투스 조림지에 가면 전쟁 당시
파괴된 시리아 군의 잔해를 쉽게 볼 수 있다 하며 스파이 코헨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국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으며 코헨은 이스라엘 기념우표로 기념하였습니다.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은 적 부대나 위치 등 공중 정찰로 정보를 얻어
공군이 출격을 하면 이미 적 부대는 이동하거나 은폐하여 실시간 정보의 절실함을 미국의 무인기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 무인기 개발에 노력하여
무인기 강국이 되었지만
6일 전쟁의 기습작전으로 대승리를 얻은 이스라엘은 자만하여 4차 전쟁에 낭패를 봅니다.
제 4차 중동전쟁(1973)은
이스라엘의 욤 키푸르 기념일에
수차례 수에즈 도하훈련을 한 이집트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은 대학생까지 동원하였지만 이스라엘이 사라지기 일보직전 까지 간 전쟁으로 6일 전쟁으로 상대를 얕잡아 보다 당한 전쟁으로 핵 공격을
계획하게 됩니다.
아직도 미국과 소련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핵 공격 계획을 안 미국은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3개 항에 합의 하고 그 내용은
1.이스라엘이 핵을 쏘면 즉각 소련은 이집트에 핵무기를 공급하고
2.이집트가 이스라엘에 대한 핵 보복을 하게 된다.
3.그 후 양국은 이 전쟁에 어떠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
결론은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미국은 전투기와 신형 전차 등을 지원하여
간신히 이스라엘을 지킨 전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