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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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142.♡.♡.150)ㆍ2024-05-24 07:2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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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6:13-15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시편기자는 우리 모두에게 ‘여호와의 종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해 있습니다.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주인을 위하여 살고 주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종입니다. 주인의 말 한 마디, 주인의 뜻 하나에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는 것이 종입니다. 주인의 뜻 앞에서 조금의 자유도 없는 것이 종입니다. 종의 존재가치는 주인을 얼마나 섬기느냐에 있고, 주인을 얼마나 만족하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종의 가치는 주인이 그 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뻐하는 종은 귀하게 여김 받고, 기뻐하지 않는 종은 버림받을 것입니다. 종에 대한 주인의 권한은 절대적이며 종에게는 대항, 거부, 이탈할 능력이나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종에게 자유할 능력이 있다면 종이 될 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주만유는 그 지으신 자의 소유입니다. 모든 권리가 주(主)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한 존재, 곧 하나님의 종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싫든 좋든 이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무엇인가의 종이 되려는 속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나 자신의 찬송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자신을 위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산 것 같은데 결과를 보면 돈과 재산, 명예나 권력, 쾌락이나 집착 같은, 자신을 움켜잡은, 자신을 종으로 삼은 무엇인가의 종이 되어 그것을 섬기며 종으로 산 결과가 될 뿐입니다.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하는 허망한 인생을 산 것 뿐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육신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은 바로 그것입니다. 울타리와 줄처럼 가두고 묶어서 율법의 종이 되게 함으로써 죄악과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악한 자의 종이 된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그 날까지 율법의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3절을 보니 사도바울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사 우리를 죄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코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속박에서 우리를 풀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 속하고 종이 되려고 하는,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종으로 삼는 가장 강력한 그 무엇은 바로 자신의 욕심, 육체입니다. 그러니 그런 존재를 그냥 놔두면 어찌 되겠습니까? 모두가 자기 육체의 종이 되어 자기 육체를 섬기게 될 것이 뻔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하는’ 종의 속성을 가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함으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5장은 ’만일 동족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에게 팔려 종이 되어 육년을 섬겼다면 제칠년에는 놓아 자유케 하라, 그를 빈손으로 가게 말고 풍성히 주어 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만일 종이 너와 네 집을 사랑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권력이나 강제적인 힘이 아니라 사랑이 종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송곳이 무엇이며, 문은 무엇이며, 귀는 무엇이며, 뚫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목숨까지 주시려고,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귀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목숨을 주시기까지 섬기신 주님께 이제 우리가 종이 될 차례입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영영토록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고 문(십자가)에 우리의 귀를 대고 결단의 송곳(못)으로 구멍을 뚫어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할 차례란 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될 차례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명하십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십니다. 자신의 육체를 극진히 섬기려는 종의 속성을 바꾸어 서로 사랑하라, 섬기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주의 종이 되고 서로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 자신, 자기육체의 종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물고 먹다가 피차 멸망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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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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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기자는 우리 모두에게 ‘여호와의 종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해 있습니다.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주인을 위하여 살고 주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종입니다. 주인의 말 한 마디, 주인의 뜻 하나에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는 것이 종입니다. 주인의 뜻 앞에서 조금의 자유도 없는 것이 종입니다. 종의 존재가치는 주인을 얼마나 섬기느냐에 있고, 주인을 얼마나 만족하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종의 가치는 주인이 그 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뻐하는 종은 귀하게 여김 받고, 기뻐하지 않는 종은 버림받을 것입니다. 종에 대한 주인의 권한은 절대적이며 종에게는 대항, 거부, 이탈할 능력이나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종에게 자유할 능력이 있다면 종이 될 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주만유는 그 지으신 자의 소유입니다. 모든 권리가 주(主)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한 존재, 곧 하나님의 종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싫든 좋든 이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무엇인가의 종이 되려는 속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나 자신의 찬송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자신을 위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산 것 같은데 결과를 보면 돈과 재산, 명예나 권력, 쾌락이나 집착 같은, 자신을 움켜잡은, 자신을 종으로 삼은 무엇인가의 종이 되어 그것을 섬기며 종으로 산 결과가 될 뿐입니다.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하는 허망한 인생을 산 것 뿐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육신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은 바로 그것입니다. 울타리와 줄처럼 가두고 묶어서 율법의 종이 되게 함으로써 죄악과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악한 자의 종이 된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그 날까지 율법의 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3절을 보니 사도바울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사 우리를 죄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코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속박에서 우리를 풀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 속하고 종이 되려고 하는,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종으로 삼는 가장 강력한 그 무엇은 바로 자신의 욕심, 육체입니다. 그러니 그런 존재를 그냥 놔두면 어찌 되겠습니까? 모두가 자기 육체의 종이 되어 자기 육체를 섬기게 될 것이 뻔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하는’ 종의 속성을 가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함으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5장은 ’만일 동족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에게 팔려 종이 되어 육년을 섬겼다면 제칠년에는 놓아 자유케 하라, 그를 빈손으로 가게 말고 풍성히 주어 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만일 종이 너와 네 집을 사랑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권력이나 강제적인 힘이 아니라 사랑이 종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송곳이 무엇이며, 문은 무엇이며, 귀는 무엇이며, 뚫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목숨까지 주시려고,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귀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목숨을 주시기까지 섬기신 주님께 이제 우리가 종이 될 차례입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영영토록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고 문(십자가)에 우리의 귀를 대고 결단의 송곳(못)으로 구멍을 뚫어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할 차례란 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될 차례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명하십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십니다. 자신의 육체를 극진히 섬기려는 종의 속성을 바꾸어 서로 사랑하라, 섬기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주의 종이 되고 서로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 자신, 자기육체의 종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물고 먹다가 피차 멸망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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