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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6-23 14:00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마태복음 6:11-13]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을 설명하시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르는 이것이니라
Jesus saith unto them, My meat is to do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요한복음 4:34]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셨고
양식은 말씀으로 사는,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여
온전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복음의 일이 양식이며
이를 위한 육신의 음식도 양식이다.
이 예수님의 양식을 설명하고 강조한 야보고의
야보고서는 개인이나 개 교회의 특정인이나 집단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보다 넓은 영역의 성도들에게 보내 졌고(특히 유태인)
서로 돌려보며 읽은 회람(回覽) 서신으로 몇 개의 단락만으로 조화를 이룬 야보고서를
‘진주로 엮은 줄(a string of pearls)로 귀하게 불렀지만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마틴 루터(M. Luter)의 평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서신’ 으로 낮게 평가했지만
다수의 개혁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의 행위를 더하여 가르쳤고
선한 행위만을 강조한 야보고의 교훈으로 오해한 루터는 잘못을 범했고
한국교회가 이 전철(前轍)을 따라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행위가 포함되지 않는 구원
구원받은 자의 증거인 행위를 무시한
십자가 무늬만 교회인 교회가 늘어나면서 행위 없는 말잔치는
세상에 반기독교 정서를 낳았고 이제 황폐한 교회는 개혁이 아니라
혁명 같은 혁신(革新)이 필요한데 주위는 온갖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을
한다 요란하지만 그런 기념과 미지근한 회개로는 겉만 젖이고
땅 깊이 젖히지 못 하듯 옷만 젖히고 황폐한 마음의 밭은 젖이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의 어설픈 선생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뿌리 깊은 의식은
마틴 루터의 ‘이신 칭의’ 교리위에 구원론이 자리 잡고 있는 분리론자가
대부분이라 마찬가지로 ‘믿음’ 과 ‘행위’를 분리한 분리분자들이라
말잔치로 시작하여 말잔치로 끝나는
온갖 프로그램이나 부흥운동이나 설교가 ‘믿음’ 이라는 반쪽에 치우쳐
행함이 사라진 원인의 또 하나는 극단적인 은사 론에 치우친 예언, 방언,
신유, 기적 등 기도원식 자기 교회, 자기 자신 만의 축복 비는 이면에
오직 교인의 숫자 늘리기 양 적인 부흥은
온갖 ‘헌금’을 걷기 위한 부흥회의 유행으로 아직도 사지지지 않았고
이와 더불어 극단적인 천국과 지옥 간증은 불안한 마음의 행위를
합리화 시키거나 도취 화 하는 심리의 심리전이거나 믿음의 확신을
빙자한 또 하나의 어리석고
괴이한 샤머니즘 적인 예배 행위로 천국만을 사모하여
이 땅에서의 행위가 사라진
이 세상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더러운 세상으로 인식하여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고
이 땅의 하늘나라와 천국과 분리하였기에
한국교회의 타락은 이제 몰락(沒落)을 향하고 있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세상보다 못한 기준의 기형적인 종교가 된 개신교는
오래전부터 부끄러움을 잃어버리고 간구가 오직 ‘주시 옵소서’ 란 구걸의
신앙이 되면서
진리의 의(義) 의 결핍으로
궁핍(窮乏)한 감정에 치우친 감동이 성령님의 역사 인양 이를 추구하면서
오르지 교회의 순종과 열심의 충성을 강요하지만 분별력이 실종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서
그런 종교적인 열심에는 성령님의 역사하지 않으시기에 황폐해지고
메말라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복음의 어그러진 길에서
타락의 끝을 향해 가면서 요란하다.
그 타락의 끝이 어디란 말인가.

이 세상의 모든 성도는 완벽할 수 없어
서로 성령님의 이 끄시는 감화(感化)를 받게 낮아지는 마음의 자세가
행동의 양식이 되어 낮아진 만큼 하나님의 의가 보여서 행하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서로 교통하여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서
평등해지고 공평해지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결단이 신앙의 공동체라는 교회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교회와 교회는 서로 교통할 수 없어
교인들끼리도 교회끼리도 성령님의 공급하시는 권능을 받지 못해
세상에서 지근거리로 소란한 전도로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이제 윤리적으로 배척받고 배타(排他)의 대상이 되어
말 뿐인 하나님의 영광과 개인의 복을 비는 주문(呪文)이 읊는 기도와
설교 찬양 등 온갖 축복에 목메어 성도의 도리가 사라진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한 불순종한 세대가 되었다.

믿음을 행위까지 포함한 야보고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주기도문 등 복음의 의가 녹아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想起)하였기에 마태복음과 야보고서는
서로 보안 관계이면서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주제가
야보고서의 핵심이며
개인적으로 이를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바라보았지만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하여 보면
우리가 신앙이라는 믿음으로 비롯된 믿음이 얼마나 허공을 치는
울림이 없는 행함이 없는 공의가 실종된 신앙 이라 종교인이 되었는지
만약 야보고가 이 시간 한국, 한인 교회에 온다면
통탄을 하겠고 이단 취급을 받을지 모르겠다.

이어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마태복음 7:12]
율법과 선지자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대접하는 대로 대접 받는
행위까지 포함한 예수님의 양식을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If ye fulfil the royal law according to the scripture,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ye do well: 야보고서 2:8]
야보고는 최고의 법이라 했으며
이 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같은 의미로 썼으며 이여 9절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죄하리라
But if ye have respect to persons,
ye commit sin, and are convinced of the law as transgressors.]

그래서 차별을 2:1 절에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My brethren, have not the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Lord of glory, with respect of persons.]
우리 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는 차별하지 말라 했고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여 공평 공정히 대하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가톨릭과 같이 분리하지 말고
더불어 내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
긍휼이며 이 긍휼이 하나님의 의인 심판이며 사랑이기에,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여 공평하고 올바르기에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자는 이 긍휼로 심판을 면하고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For he shall have judgment without mercy,
that hath shewed no mercy; and mercy rejoiceth against judgment. :13]
긍휼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 심판에서 자랑, 큰 기쁨이 된다.

이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와 같은 의미로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긍휼을 받은 자는 긍휼이 대하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받는
누구나 차별이 없는,
공평하여 심판받을 자들처럼 말하고 행하는 자유의 법,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하고 행하기도 하라
So speak ye, and so do,
as they that shall be judged by the law of liberty. :12]
율법에 자유로운 자는 행하는 일에
진리로 자유를 얻는 법을 실천하는 자가 복을 받는 자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But whoso looketh into the perfect law of liberty,
and continueth therein,
he being not a forgetful hearer, but a doer of the work,
this man shall be blessed in his deed. 1:25]

말씀을 행하는 자라서
듣기만 하고 행함이 없어 자신을 속이는 자가 아니라서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

다시 믿음의 행위를 마태복음과 야보고서를 비교해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태복음 7:15-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What doth it profit, my brethren, though a man say he hath faith,
and have not works? can faith save him? 야보고서 2:14]

야보고서 특히 2장은 행함에 대하여 쓰여 있어 행함의 장이라고 하고
마태복음은 열매로 사람들을 알기에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을 삼가라
(Beware of false prophets)
가짜 선생을 조심하라 는 말씀으로
이를 베드로 후서 2:1-2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예전부터 거짓 선지자들 즉 선생들이 나타났으며
지독한 이단(damnable heresies)을 끄려드려
말로는 주의 영광을 노래하지만
행위로 주님을 부인하고
행위로 살아계신 주를 부인하여
스스로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타락한 그들을 따르는 많은 자들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며,
(진리의 그리스도의 도가 비방을 받은 오늘날의 주위의 현상을 보라)
진리가 사탄의 비방의 말로 변하여
(the way of truth shall be evil spoken of.)
세상에서 진리가 비난을 받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비난의 대상이 된 이 현상,
현재의 상태가 된 상황은
마태복음은 거짓 선생들 때문이며,
야보고서는 믿음이 있다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행함이 없기에
믿음으로 비롯된 행위가 없기에
거짓 선생과 이를 따르는 자들에게 침묵하는
그 믿음으로는
그 거짓 믿음으로는 자기도 구원을 하지 못한다는 무서운 경고이면서
그래서 야보고는 믿음에 대한 증거, 행함이 믿음의 증거라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은 행위까지 포함한
믿음=행위라는, 선한 행실로 열매를 맺는
선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며
행실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게 하는 일이 양식이라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지 않은
믿음과 행위가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
예수님의 양식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뜻을 이루는 자,
그런 자를 그리스도인 이라 하기에
믿음은 행함까지를 믿음이라 하고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Seest thou how faith wrought with his works,
and by works was faith made perfect? :22]
행하는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했다.

그래서 야보고의 양식은 주님과 같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주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6]
형제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을 위한 기도가 무슨 유익이며 쓸 것을 주는 행함의 양식이 당연하기에

이는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 죄가 사함을 받았듯이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처럼
형제자매에게 일용할 말씀의 양식을 행위로 증거하며
이를 위한 육체의 양식도 나누는,
그러나 이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Even so faith, if it hath not works, is dead, being alone. :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
믿음이 아니며 이 말은 그 사람에게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행함과 함께 하기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Ye see then how that by works a man is justified, and not by faith only.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Likewise also was not Rahab the harlot justified by works,
when she had received the messengers, and had sent them out another way?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For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lso. :24-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에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기에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큰 의미로 본다면
대접하는 대로 대접받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열매로 그 사람을 알고,
이 모두가 믿음의 행위라
행함이 없으면 유익이 없고
유익이 없다면 믿음으로 된 행위가 없기에 거짓 믿음이며
이는 말 뿐인 거짓 교제이기에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서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자들이 아니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서
성령님이 거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이를 행하는 양식을
서로 나누는, 행함이 성도의 교제이기에
성도의 교제는 늘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이 땅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

댓글목록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100.♡.♡.223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도 어느덧 50 고개를 넘어가는군요.
언제나 그 길이 곧게 펴질려는지...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오늘도 메마른 광야를 울리는데...
진정 이 시대는 이렇게 어그러진 길로만 달려가는 것일까요?
이 땅을 울리던 그 회개의 물결, 대부흥의 물결이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일까요?
날로 어두워져가고 날로 소란해져가는 세상을 오늘도 탄식으로 바라볼 뿐.....
그래도 외치는 자여, 힘을 낼지어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을 딛고 서시리라. 화이팅!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어제 오후 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아침까지 비를 뿌리고 이제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위에
눈부신 태양이 햇빛을 내립니다.
여기 저기 둘러봐도 회개의 운동이 흔한 프로그램처럼
일어나야 할텐데 보이질 않습니다.
제 눈에는 먹구름이 몰려온 하늘처럼 온통 깜깜해 보여
글이 길어집니다.
찬란한 햇빛처럼 하나님이 긍휼 하심으로
먹구름이 걷어지고 맑은 신앙인의 웃음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유님의 댓글

공유 69.♡.♡.180

민수기 20장에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대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어 말하였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모세와 아론은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너희는 그들 앞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의 지팡이는 그가 처음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던 능력의 지팡이이었습니다(출 4:17).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그 지팡이를 취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말하며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대항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그 백성에게 마실 물을 공급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세와 아론에게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바로 그 일 때문에, 그는 그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그 광야에서 죽어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 물을 므리바 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내리치는 혈기를 부렸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에게 온유와 순종의 덕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너무 과하신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인간은 심히 믿음이 없고 죄악된 존재입니다. 성경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천국에 못 들어갔다는 말이 아닙니다)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지도자인 모세가 그 책임 때문에 가나안에 못들어갔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모세, 베드로 다 인간들입니다.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힘과 승리가 되시는 구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그 백성에게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을 주셨다. 지하수가 터져 약 2백만명의 회중과 가축들이 마실 만한 물이 반석에서 솟아난 놀라운 기적이었다. 고린도전서 10:4는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적으로 갈하여 죽게 된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요 4:14) 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다(요 7:37-38).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그리고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 들어오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사람이 믿음이 없고 죄가 많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정신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신다. 인생의 마음의 참된 안정과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옛신앙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가나안을 여러 가지 의미로 또 계시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창세기를 시작으로 창조와 탄생의 시작을
개인의 적용으로 광야의 신앙의 여정으로
신앙의 공동체가 가나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복음의 선포로 이루어지는 하늘나라,
시간의 개념을 넘어 사건의 개념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제 삶의 사건이 되고
부활이 그렇듯,
자신의 믿음을 삶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 자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라는 모두로
이루어진 신앙의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게
인도하시고 교통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듯이
근본적인 믿음도 성령님의 역사로 시작되었고 마침도 그렇고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복음의 의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듯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는 신앙의 여정...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신앙의 색깔일 수는 없지만
모두 은사가 다르듯이
부족한 자들이 모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저는 이렇게 바라보고 있기에
더 확증을 성경을 통하여 검증하고 구체적인 삶의 적용으로
말씀을 증거 하는 믿음의 증인이 되려고 노력하기에
복음의 길을 미약하나마 글로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성령님께서 그리스도 우리 주의 복음의 길을 더 밝혀주셔서
같이 증인의 삶으로 복된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disposable님의 댓글

disposable 84.♡.♡.18

یکبارمصرف الومینیومی
https://www.armani724.com/blog/71-best-disposable-aluminum-container
ظرف یکبار مصرف آلومینیومی از جمله انواع ظروف پرمصرف و پرطرفدار می باشند که در سال های اخیر مصرف آنها به دلیل ویژگی های متمایزی که دارند جهت توزیع غذا بسیار زیاد شده است. این ظروف دارای ویژگی های ساختاری متفاوتی بوده از این رو

استفاده از آنها به دلیل فواید خاص مطرح شده، گستردگی بالایی پیدا کرده است.
یکی از مزایای استفاده ظرف یکبار مصرف آلومینیومی این است به عنوان یکی از سالم ترین انواع ظروف یکبار مصرف شناخته می شوند از این جهت می توان با وجود تحمل حرارت بالا به شکل مطلوب و سالم توسط این ظروف با خیالی آسوده آنها را مورد استفاده

قرار داد.

سرمایه گذاری در تولید انواع دستکش , با سرمایه کم و بازدهی بال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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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ین محصول می تواند در هتل ها، مراکز بیمارستان ها در انجام مراقبت های بهداشتی، مصارف خانگی، درسالن های زیبایی برای کار با مواد آرایشی و رنگ مو، کار در باغ، در آشپزخانه، قنادی ها، رستوران ها، فست فودها و بسیاری مکان های دیگر که در آن ها

رعایت بهداشت یک گزینه بسیار مهم محسوب می شود، بکار می رود.

عوارض سفره یکبارمصرف
آیا می دانید سفره های یکبار مصرف چه عوارضی دارند؟ این سفره ها دارای مقدار زیادی کربنات است که عوارض زیادی برای بدن دارد. از جمله این عوارض می توان به کوتاهی قد کودکان و ریزش مو اشاره کرد. همچنین مشکلاتی در معده و روده ی شما به وجود

می آور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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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5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8) 2017-07-18
도봉옥 ㆍ 대반전(大反轉) 댓글(6) 2017-07-15
해처럼달처럼 ㆍ 하나님은 눈높이 선생 2017-07-14
대장쟁이 ㆍ 예레미야 애가 3장 댓글(9) 2017-07-13
예종규목사 ㆍ 표적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댓글(2) 2017-07-11
짐보 ㆍ 5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3) 2017-07-11
해처럼달처럼 ㆍ 철학이 있는 이야기 - 가슴을 뜨겁게 해줘 2017-07-09
해처럼달처럼 ㆍ 십자가 그 사랑 댓글(2) 2017-07-09
도봉옥 ㆍ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가짜들 댓글(17) 2017-07-07
해처럼달처럼 ㆍ 십자가가 해답이라네 댓글(4) 2017-07-03
짐보 ㆍ 5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7-07-03
대장쟁이 ㆍ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댓글(8) 2017-06-30
해처럼달처럼 ㆍ 행복 메이커-화평의 아들 댓글(2) 2017-06-28
해처럼달처럼 ㆍ 살면서 가장 먼저 준비해 놓아야 할 일 댓글(5) 2017-06-27
짐보 ㆍ 5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5) 2017-06-23
해처럼달처럼 ㆍ 하나님만 바라라 댓글(5) 2017-06-21
대장쟁이 ㆍ 포도주와 떡의 약조 댓글(6) 2017-06-17
짐보 ㆍ 4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3) 2017-06-14
필그림 ㆍ 이중국적자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댓글(1) 2017-06-10
필그림 ㆍ 신학생들이 십자가 精兵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동성애자들의 간병인(Hospice)가 될 것인가? 댓글(3) 2017-06-07
대장쟁이 ㆍ 아무리 작은 아이성일지라도 댓글(3) 2017-06-06
짐보 ㆍ 4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3) 2017-06-05
짐보 ㆍ 4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4) 2017-05-30
대장장이 ㆍ 단 한 점의 오물도 허용할 수 없다! 댓글(21) 2017-05-27
필그림 ㆍ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에 집중하며 살자 댓글(17) 201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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