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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9-04-05 10:09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15-17]

주님은 공동체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을 말씀하시며
당시에 아직 생기지도 않은 교회를 언급하시며, 끝 단계의 방법으로
“교회에 말하고” 교회를 말씀하셨지만
아직 태동하지도 않은 교회는 그 후 오순절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교회가 생겼으나,
주님은 언제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동일한 선상에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셨으며
이를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가 복음의 핵심이라,

핵심이 ‘화해’ 라고 할 수 있어 ‘화해’ 는 언약이며 소망이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은, 인간과 화해하기 위한 역사가 인간의 역사라
성경의 역사라
인간의 역사에 개입(介入)하셔서 친히 인간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한 성령님의 역사라,
그러기에 성경은 성령님의 개입하신 성령님의 감동감화로 된 책이라,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이해되는 책이 아니며
더구나 사사로운 해석이 불가함은,
성령님의 인도가
하나님의 사랑이라, 은혜라, 자비라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의 길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언약’ 과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주님은
형제가 죄를 범하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기회를 주셨으며
그러나 이 기회는 이 땅 삶과 연관된 행위까지 포함한 믿음이라
인간의 삶과 무관한 ‘화해’ 도 아니며 언약도 아니라서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과 그런 자들을 따르는 자들처럼
오직 천국만을 바라보는, 언약도 아니며 소망이 아니라서,
그런 자들의 주장은 구원만을 강조하는 구원론에 매여, 이를 넘어선
구원받은 자의 의(義),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의(義)
복음의 의를 제외한 거짓 복음을 알고 전하기에
복음을 받은 자로서의 의로움이 사라진 믿음을 말하나
믿음이 정의롭지 못하고 더구나 정직하지도 못하다면 무엇이 진리며 무엇이 소망인가.
그런 거짓 구원론에 매인 자들의 소란을 보라.
교회라면서 분란을 일으키고도 모자라 세상의 법정에 의지하는, 오늘날의 현상을 보라.
그런 믿음은 뿌리가 없는 믿음이라
잠시 기쁨으로 말씀을 받다가 세상의 염려와 욕망과 고난에 말라 죽을, 죽은 믿음이라,
복음의 길의 시작은 회개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인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화해로,
그 ‘화해’를 주님은 ‘평안’ 이라 하셨으며 ‘평안’을 위해여 오신 주님을 평강의 왕이라 함은
하나님과 화해 없는 평안이 있을 수 없기에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는 성령님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은
주님의 평안은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라,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실상(實相)을 향하기에
세상의 교회는 완벽하지 못하지만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기에
세상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라,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해석하나
온전히 알 때는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폐하듯이
성경이 이해되는 때에는, 그 때가 축복이라
이 축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축복이라,
아직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나 
아직 희미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아직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
주께서 나를 온전히 아신 것 같이.)

이 진리를 이해하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
이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함께 하는 자라,
주님은 계시록의 교회를 통하여 ‘행위’를
믿음과 함께 한 행위, 믿음의 결과인 행위를 강조, 강조하시며
성도가, 교회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말씀 듣기를 거듭, 거듭 말씀하셨고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을 말씀하시며 ‘행위’를
또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라, 시는 말씀이라,

다시 보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으로
주님은 “네 형제” 라 하셨고,
오늘날과 같이 교회 직분이 이름이 되어, 호칭이 되어, 어느 자들에게는 신분이 된,
믿음의 척도가 된 통상적으로 부르는 직분이 아니라,
교회 출석만 하더라도 받는 서리 집사라는 직분이 아니라,
아직 서리 집사도 아닌 새 교인을 ‘형제’ ‘자매’ 로 부르는 그런 의식적인 부름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믿고, 의지하고, 삶으로 인정한,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자매로, 형제로,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세워지지도 않은 교회라는 신앙의 공동체에 한 사람이 죄를 범하거든,
이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죄를 범한 자도 그리스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형제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범하거든,
그 누구라도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가서”  행동으로, 가서, 형제의 행위로 가서
그 사람과만, 그 형제에게만 상대하여 형제의 죄를 알려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죄를 자백하여 형제를 얻기 위하여 권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일절 교제, 교통하지 말고 교회 밖의 사람으로 여기라.
그러나 만약에 그 형제가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면 다시 형제로 받아드려야 한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사실은 
지역 교회는 세상의 일반 법정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듣고 해결할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교회안의 문제로 인해 법정에 나가는 것이 금해졌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왜 오늘날의 교회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으로 가는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자정(自淨)의 능력을 잃었음은
성령님과 함께 하지 않은 결과라
그리스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결과라
교회라는 허울의 무늬만 남은 집단이 무엇이라
허울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 무엇을 감당하겠는가.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까.
왜 다 아시면서 물으셨을까?
오늘날 교회에 대한 물으심이라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말씀이라.

고린도 전서 6장의 시작은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 이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1]
바울의 이 말은 주님의 말씀을 상기 시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 몇 몇이 다툼이 있었는데
성도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에 고발하였다는 충격적인 말로 시작한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처럼 그 당사자 만 상대하여 권고하지 않았고
세상의 법정, 주님과 주님의 의를 알지도 못하는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한 일은,
성도가 된 자들이 어찌 참된 의를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의를 구하며
판단 받고 정죄 받는 세상의 판결에 의지하는 자들이 성도라니, 
바울은 충격을 넘어 화도 났을 것이고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복음의 의(義)를 지키지 않은 행동으로
이미 그들은 주님보다 세상 법정을 의지한 일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그 일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행위라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은,
그들은 주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면서도
세상 법정을 선택하여 세상에서 의(義)를 구하였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오히려 세상에 판단을 받는,
지극히 작은 일에 판단하기를 감당하지도 못하는 것을 격하게 꾸짖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2]
그리스도 주님께서 능력과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함께 할 성도들이, 현실은 비록 억울하고 분 한 사건이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장차 주님의 영광에 동참할 자들이라
교회라는 성도들이라, 의로운 자라 일컬음을 받은 자들이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에 비하여 아주 사소한 일이라
그런데 지금 성도들 사이의 지극히 사소한 불화조차 해결할 수 없다면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교회란 도대체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도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3]
바울은 성도는 주님과 함께 연합된 존재라
주님의 영광과 능력에 참여할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
천사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 자들이 세상에서 일상의 하찮은 문제냐 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을 하시려 오시기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복음 5:22]
세상 심판에 주님과 함께 할 자들이
형제의 일을 세상에 맡기다니,
그러기에 주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를 향해
‘행위’를 그토록 말씀하시고 강조 하셨음은
종당에 심판을 하시기에,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으로 말씀하셨고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을 말씀하시며 사랑을 베푸셨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4]
바울의 이 책망은
‘너희가 세상 사건에 판단할 일이 있을 때
교회 안에서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자를 내세 우냐’ 는
교회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교회의 대리자로 세워서 세상의 사건에 판단하지 않듯
하물며 주님의 의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재판관이 지역 교회에서 존경 받을 수 도 없고
교회의 문제에 관하여 세상의 재판관에게 의지하는 일은
교회의 분별력을 세상의 재판에 의지하여 판단을 받는 검증의 재판이
어찌 주님의 의를 따르는 자들의 행위냐는 책망이다.

그래서 바울은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이 질문을 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5]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는 자들이, 은사를 자랑하는
성령의 은사 자가 많다는 고린도 교회가
어찌 형제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혜가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느냐?
은사를 자랑하면서 어찌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느냐?
어떻게 오늘날 은사를 자랑하고 받으라는 교회들과 똑 같을까?
은사를 사모한다면 복음을 뒤로 하고
구약으로 돌아간 수많은 거짓선생과 그들은 따르는 자들이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곡해하여 일천 일의 기도와 일천 번의 제물이라는 헌금을 드리고
일천 번의 예배를 드려도
그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의를 떠난 외식인 것을,
그것도 모자라 다윗을 빗댄 성령의 춤이 성령 충만의 증거라는 자들
그런 자들이 교회를 빗대어, 강대상과 프로그램을 빗대어 제단이라 하고
제단을 쌓는 다는 자들은
구약으로 돌아가서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이라,
다시 십자가에 그리스도 주님을 매다는 자들이라,
그리고도 은사라니,
은사가 서로 그리스도의 덕을 세워 서로가 서로를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은사라,
무엇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라는 말인가?
은사는 교통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교통함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교통하기에
하나님의 의(義)로 교통하기에,
공평하고 올바른 공정(公正), 공의를 떠난 교통은 거짓이라,
교통은 교제라,
그리스도 주님을 닮아감이 없는 교제는 거짓이라,
그리스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성령님께서 교통함이라
교통함이 없는 은사는 거짓이라,
오늘날 바울의 부끄럽게 하려는 말이 울림이 되어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가슴을 치고 자백하지 않는 다면
다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자 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복음을 말하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를, 공의를 무시하는 자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라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자들이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주님은 이런 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강퍅한 자들이라
화가 있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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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ㆍ 시시한 오병이어 말고.... 댓글(3)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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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6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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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6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3)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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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6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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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6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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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ㆍ 5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7-08-31
짐보 ㆍ 5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7)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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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규목사 ㆍ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댓글(5)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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