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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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보 (108.♡.♡.228)ㆍ2019-07-12 13:14관련링크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비유를 설명하시기 전 하신 말씀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복음 13:11]
‘천국의 비밀’은 문자 그대로 천국의 비밀이라
‘하나님 나라가 올 것’ 이라 는 말씀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 유대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 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오래 동안 전해진 전통 같이 되었기에 비밀이 아니었고
공공연히 믿는 상태였기에,
‘비밀’ 은 감추어진 상태라
하나님의 계시, 계획은 당시까지 닫힌 상태라
유대인들이 상상하지 못할 천국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의미하기에, 다음 절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 드린 ‘있는 자’ 는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어 넉넉하게 되지만,
‘없는 자’ 는 주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라
있는 것도 빼앗겨, 말씀을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하여
오히려 더욱 더 비참해 진다는 말씀으로,
이 비유의 ‘있는 자’ 나 ‘없는 자’ 의 공통점은
주님의 가르침을 모두 들었으며, 주님께서 행한 기적을 본 자들이라
차이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라
이미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깨달음의 차이라,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영생이 주어졌지만
거부한 자들에게는, 그들이 듣고 본 기적, 그들에게 베푼 천국의 복음마저 빼앗겨
멸망한다는 말씀이라,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구약의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이다.
씨 뿌리는 비유의 설명을 마치시고
다시 ‘가라지’ 비유를 하셨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4-27]
이 글에서는 먼저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었고
‘가라지’ 비유는 이제 예를 들음은, 이 비유는 수많은 신학적 논쟁을 일으켰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비유라,
마태복음은 주님의 비유의 전개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가라지 비유의 설명을 다른 비유의 끝에 기록하였고,
네 복음서 중 오직 마태복음 만 ‘가라지’ 비유를 기록되어 있다.
논쟁의 소지가 많으나 나름 글로 쓰면,
곡식은 참 신자를
가라지는 고백뿐인 자들 이라는 주장과
밭은 세상이며, 곡식은 성도며, 가라지는 세상 사람이라는 주장과
밭은 교회며, 곡식은 구원받은 성도며
가라지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 라는 주장 등 수많은 주장이 있으나
주님은 천국을 말씀하셨을 때 꼭 비유로 말씀하셨고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사람’ 과 같다 하셨다.
주님의 비유를 보면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7]
여기서 마태복음의 표현은,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주여“ 라는 호칭은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
예수님을 ‘주’ 라고 부르는 자들은
주로 제자들과 주님을 메시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 이었으며,
‘선생’ 으로 부르는 자들은 서기관, 바리새인 등으로 유대 지도자들 이었고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하여 적대적인 사람들 이었기에,
‘주’ 라 함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의 대상이지만
‘선생’ 이라 함은 주님을 예언자들 중 하나 또는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마태는 ‘주’ 로 표현하였고,
집 주인의 종들은 물음을 제시한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대조되는 구절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5]
사람들이 잘 때, 농부의 태만함이 아니라
농부 모르게 악행을 저지른 원수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라 하신 주님은
“밭은 세상이요” 라 하셨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라 하셨는데,
주님은 세상에 악한 자의 아들이, 어둠의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는 말씀인가.
아니면 밭 인 세상에 좋은 씨와 가라지가 같이 자라도록 허락하셨다는 말씀인가.
종의 물음은
신정론(theodicy) 적인 물음이다.
신정론은 ‘하나님의 의(justification of God)’ 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선하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악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세상에 악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논리는 하나님의 정당성의 논리라
이는 왜 욥의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라는 물음이라,
악을 허락하시고 고통과 죽음의 현실에서, 하나님은 방관의 하나님이시며
내, 괴로움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에
하나님은 임재 하시는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악이 이 세상 혹은 교회에 들어 왔는가?
이 답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답이다.
주님은 주님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의 악을 허락하셨으며 고난의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소망이 되셨다.
또 답변은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 9:19-21]
주님은 비유의 설명을 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37-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결실 할 때는 열매로서 그 나무를 알듯이
결실로 좋은 씨와 가라지는 구별된다.
가라지는
밀이나 보리와 싹의 모습이 흡사하여 실제로 이삭이 되기까지 식별하기 힘들고
곡식과 가라지는 결실을 거둘 때 까지는 잘 분별할 수 없듯이
가라지는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성도와 같이 위장하는 악한 자의 아들 들이며
의(義)의 자리에 있는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불법과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라
이런 자들은 외형적으로 성도와 같은 모습을 보이나 성도들을 미혹하고
이용하고 해치는 자들이면서 은밀히 성도로 위장한 자들이라,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라
그런 자들은 불의의 삯을 사랑 한다.
이렇듯 가라지는 좋은 씨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에
레위기 19:19을 보면 밭에 두 종자의 씨를 뿌리지 말라 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두 씨앗은 어는 한 씨앗의 결실조차 올바로 수확 할 수 없어
하나님의 향한 신앙의 순수성과 비타협성을 상징하는 교훈적인 율법이라
신명기 22:9절도 같은 교훈이라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최후의 심판이라는 마지막 추수기 이전까지는
악의 세력과 어둠이 절정에 달한 시기라
이를 주님은 “결실할 때에...” 로 말씀하셨으며
빛의 자녀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는 때라
끝까지 견디며 인내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실현 되는 때라
미혹을 받지 않게 조심하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주님은 사탄을 멸하실 것이며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7-8]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으며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로마서16:20]
가라지를 뿌린 원수와 그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8]
주님의 비유의 말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씨’ 는 말씀이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는 같기에,
성령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님은 주님을 증언하시기에
[만일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25]
주님을 닮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
그리스도 주님의 믿음으로 비롯된 신앙의 결실은 열매라
열매는 하나님의 의(義)의 결실이며 복음의 의(義)의 결과라,
성령의 열매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성령님을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 세상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기에
자기 영광을 위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아니하기에
주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성령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며,
또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 꾼은 천사들이니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41-43]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도 똑같이 유효한 말씀이라
같은 말씀이라, 진리라, 계시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진리를 알기 위하여, 행하기 위하여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님께서 교회에게, 모든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심이라
주님의 기다리심이라
하나님의 자비라
이를 익히 아는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였고
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심’ 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로마서12:1]
비유를 설명하시기 전 하신 말씀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복음 13:11]
‘천국의 비밀’은 문자 그대로 천국의 비밀이라
‘하나님 나라가 올 것’ 이라 는 말씀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 유대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 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오래 동안 전해진 전통 같이 되었기에 비밀이 아니었고
공공연히 믿는 상태였기에,
‘비밀’ 은 감추어진 상태라
하나님의 계시, 계획은 당시까지 닫힌 상태라
유대인들이 상상하지 못할 천국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의미하기에, 다음 절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 드린 ‘있는 자’ 는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어 넉넉하게 되지만,
‘없는 자’ 는 주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라
있는 것도 빼앗겨, 말씀을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하여
오히려 더욱 더 비참해 진다는 말씀으로,
이 비유의 ‘있는 자’ 나 ‘없는 자’ 의 공통점은
주님의 가르침을 모두 들었으며, 주님께서 행한 기적을 본 자들이라
차이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라
이미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깨달음의 차이라,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영생이 주어졌지만
거부한 자들에게는, 그들이 듣고 본 기적, 그들에게 베푼 천국의 복음마저 빼앗겨
멸망한다는 말씀이라,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구약의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이다.
씨 뿌리는 비유의 설명을 마치시고
다시 ‘가라지’ 비유를 하셨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4-27]
이 글에서는 먼저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었고
‘가라지’ 비유는 이제 예를 들음은, 이 비유는 수많은 신학적 논쟁을 일으켰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비유라,
마태복음은 주님의 비유의 전개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가라지 비유의 설명을 다른 비유의 끝에 기록하였고,
네 복음서 중 오직 마태복음 만 ‘가라지’ 비유를 기록되어 있다.
논쟁의 소지가 많으나 나름 글로 쓰면,
곡식은 참 신자를
가라지는 고백뿐인 자들 이라는 주장과
밭은 세상이며, 곡식은 성도며, 가라지는 세상 사람이라는 주장과
밭은 교회며, 곡식은 구원받은 성도며
가라지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 라는 주장 등 수많은 주장이 있으나
주님은 천국을 말씀하셨을 때 꼭 비유로 말씀하셨고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사람’ 과 같다 하셨다.
주님의 비유를 보면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7]
여기서 마태복음의 표현은,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주여“ 라는 호칭은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
예수님을 ‘주’ 라고 부르는 자들은
주로 제자들과 주님을 메시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 이었으며,
‘선생’ 으로 부르는 자들은 서기관, 바리새인 등으로 유대 지도자들 이었고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하여 적대적인 사람들 이었기에,
‘주’ 라 함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의 대상이지만
‘선생’ 이라 함은 주님을 예언자들 중 하나 또는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마태는 ‘주’ 로 표현하였고,
집 주인의 종들은 물음을 제시한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대조되는 구절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5]
사람들이 잘 때, 농부의 태만함이 아니라
농부 모르게 악행을 저지른 원수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라 하신 주님은
“밭은 세상이요” 라 하셨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라 하셨는데,
주님은 세상에 악한 자의 아들이, 어둠의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는 말씀인가.
아니면 밭 인 세상에 좋은 씨와 가라지가 같이 자라도록 허락하셨다는 말씀인가.
종의 물음은
신정론(theodicy) 적인 물음이다.
신정론은 ‘하나님의 의(justification of God)’ 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선하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악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세상에 악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논리는 하나님의 정당성의 논리라
이는 왜 욥의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라는 물음이라,
악을 허락하시고 고통과 죽음의 현실에서, 하나님은 방관의 하나님이시며
내, 괴로움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에
하나님은 임재 하시는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악이 이 세상 혹은 교회에 들어 왔는가?
이 답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답이다.
주님은 주님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의 악을 허락하셨으며 고난의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소망이 되셨다.
또 답변은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 9:19-21]
주님은 비유의 설명을 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37-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결실 할 때는 열매로서 그 나무를 알듯이
결실로 좋은 씨와 가라지는 구별된다.
가라지는
밀이나 보리와 싹의 모습이 흡사하여 실제로 이삭이 되기까지 식별하기 힘들고
곡식과 가라지는 결실을 거둘 때 까지는 잘 분별할 수 없듯이
가라지는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성도와 같이 위장하는 악한 자의 아들 들이며
의(義)의 자리에 있는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불법과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라
이런 자들은 외형적으로 성도와 같은 모습을 보이나 성도들을 미혹하고
이용하고 해치는 자들이면서 은밀히 성도로 위장한 자들이라,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라
그런 자들은 불의의 삯을 사랑 한다.
이렇듯 가라지는 좋은 씨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에
레위기 19:19을 보면 밭에 두 종자의 씨를 뿌리지 말라 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두 씨앗은 어는 한 씨앗의 결실조차 올바로 수확 할 수 없어
하나님의 향한 신앙의 순수성과 비타협성을 상징하는 교훈적인 율법이라
신명기 22:9절도 같은 교훈이라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최후의 심판이라는 마지막 추수기 이전까지는
악의 세력과 어둠이 절정에 달한 시기라
이를 주님은 “결실할 때에...” 로 말씀하셨으며
빛의 자녀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는 때라
끝까지 견디며 인내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실현 되는 때라
미혹을 받지 않게 조심하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주님은 사탄을 멸하실 것이며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7-8]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으며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로마서16:20]
가라지를 뿌린 원수와 그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8]
주님의 비유의 말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씨’ 는 말씀이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는 같기에,
성령님의 말씀인 것은 성령님은 주님을 증언하시기에
[만일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라디아서 5:25]
주님을 닮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
그리스도 주님의 믿음으로 비롯된 신앙의 결실은 열매라
열매는 하나님의 의(義)의 결실이며 복음의 의(義)의 결과라,
성령의 열매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성령님을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 세상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기에
자기 영광을 위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아니하기에
주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성령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며,
또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 꾼은 천사들이니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41-43]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도 똑같이 유효한 말씀이라
같은 말씀이라, 진리라, 계시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진리를 알기 위하여, 행하기 위하여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님께서 교회에게, 모든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심이라
주님의 기다리심이라
하나님의 자비라
이를 익히 아는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였고
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심’ 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로마서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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