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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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ㆍ2025-08-1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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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무시무시한 폭정과 우상숭배, 그리고 삼년의 혹독한 기근 가운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야로 인하여 사르밧 과부의 통과 병에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이 계속되었고 엘리야와 과부와 그 아들은 함께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때 사르밧 과부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였습니다. “당신이 왜 내게 오셨단 말입니까? 당신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저 세상풍조 가운데, 죄 가운데 섞여 맘 편하게 흘러가고 있었을 텐데 당신이 오셔서 나의 죄를 깨우쳐 나를 괴롭게 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에게 생각난 죄는 무슨 죄였을까요? 과부가 무슨 살인강도나 도둑질, 혹은 간음죄 같은 죄를 저지른 것일까요?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과부의 죄는 하나님께 대한 죄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 하에서, 제사장들마저 850명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이 될 정도로 살벌한 박해 속에서 과부도 목숨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목숨을 구걸한 죄, 하나님을 배반한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와 함께 삼년동안 지내면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삼년동안 가루가 다 하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만일 삼년동안의 가뭄이 끝난 다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엘리야가 과부의 집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부는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부의 아들의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과부는 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며 진노하고 계신지를,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과부가 울부짖자 엘리야가 그 죽은 아들을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안고 올라가 자기 침상에 눕히고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아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과부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인 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과부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다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목숨의 문제 때문에 불의와 타협합니다. 만일 세계가 공산주의나 이슬람 치하가 된다면 과연 신앙을 지켜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재난이 닥치고 팬데믹이 덮치고 환난이 밀려오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과 또 과부와 같은 택하신 자들을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으로 지켜내실 것입니다. 고백합니다만 저와 저의 가족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굶어죽었어야 할 여러 차례의 위기들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이한 도우심으로 넘고 살아남았습니다. 돌아볼수록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저와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더욱 험해지고 어두워가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을 통하여, 엘리야와 과부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온 세상에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며 하나님은 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주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마지막 날이 가까워오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목숨을 보존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일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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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폭정과 우상숭배, 그리고 삼년의 혹독한 기근 가운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야로 인하여 사르밧 과부의 통과 병에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이 계속되었고 엘리야와 과부와 그 아들은 함께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때 사르밧 과부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였습니다. “당신이 왜 내게 오셨단 말입니까? 당신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저 세상풍조 가운데, 죄 가운데 섞여 맘 편하게 흘러가고 있었을 텐데 당신이 오셔서 나의 죄를 깨우쳐 나를 괴롭게 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에게 생각난 죄는 무슨 죄였을까요? 과부가 무슨 살인강도나 도둑질, 혹은 간음죄 같은 죄를 저지른 것일까요?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과부의 죄는 하나님께 대한 죄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 하에서, 제사장들마저 850명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이 될 정도로 살벌한 박해 속에서 과부도 목숨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목숨을 구걸한 죄, 하나님을 배반한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와 함께 삼년동안 지내면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삼년동안 가루가 다 하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만일 삼년동안의 가뭄이 끝난 다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엘리야가 과부의 집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부는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과부의 아들의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과부는 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며 진노하고 계신지를,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과부가 울부짖자 엘리야가 그 죽은 아들을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안고 올라가 자기 침상에 눕히고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아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과부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인 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과부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다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목숨의 문제 때문에 불의와 타협합니다. 만일 세계가 공산주의나 이슬람 치하가 된다면 과연 신앙을 지켜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재난이 닥치고 팬데믹이 덮치고 환난이 밀려오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과 또 과부와 같은 택하신 자들을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으로 지켜내실 것입니다. 고백합니다만 저와 저의 가족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굶어죽었어야 할 여러 차례의 위기들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이한 도우심으로 넘고 살아남았습니다. 돌아볼수록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저와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더욱 험해지고 어두워가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을 통하여, 엘리야와 과부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온 세상에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며 하나님은 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주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마지막 날이 가까워오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목숨을 보존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일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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