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 내가 시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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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ㆍ2024-12-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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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4) 내가 시행하리라.
[에스더 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심판은 속히 이루어지며 신속하게 임할 것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며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재앙이 이를 것입니다. 하만에게 임하는 심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왕이 자신의 목숨을 구한 모르드개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를 생각할 때 하필이면 하만이 높은 장대에 모르드개를 매다는 것을 허락 받으려고 왕의 뜰에 나와 섰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묻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좋겠느냐?”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자가 자기 말고 누구겠느냐,’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왕복과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 가장 높은 신하가 고삐를 쥐고 성중에 다니며 ‘이 사람이 가장 존귀한 분이다,’라고 외치게 하소서” 하고 건의합니다. 그랬더니 왕은 당장 그대로 시행하여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서 하만이 고삐를 잡고 성중을 한 바퀴 돌라고 명령합니다. 졸지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모시고 “이 분이 가장 존귀한 분입니다.” 외치며 성중을 돌았습니다.
하만이 머리를 싸매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 세레스에게 이 기막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아내 세레스가 하만에게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당신이 진멸하려는 유대인이라면 큰일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거꾸로 그 앞에 엎드러질 것입니다.” 그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왕의 내시들이 들이닥쳐 하만을 잡아서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자리에 갑니다. 하만이 내시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악인에게 심판이 느닷없이 임하여 미끄러운 웅덩이에 신속하게 빠져드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 심판의 웅덩이는 실상 하만 자신이 스스로 판 무덤이요 함정이요 올무입니다. 그 잔해가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이 자기 정수리에 내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며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리고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자신이 스스로 얽히는 것입니다(시5:10, 시7:15, 잠26:27).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그 손을 벗어날 자는 없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10:31)” 하나님은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하며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시9:18).
왕은 사랑스러운 에스더 왕후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왕은 다시 묻습니다. 세 번째 묻는 것입니다.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왕의 마음이 에스더의 소원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고 애탔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행”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갑니다. 이 ‘시행’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에스더서에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네 번).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 두 번 연이어 나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시금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가 아니라 자신에게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넘겨주신 것입니다.
에스더가 드디어 그 소원을 왕에게 아룁니다. “왕이시어, 내 목숨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오히려 잠잠하였으리이다.” 에스더는 '내 목숨, 내 민족이 하나요, 나와 내 민족이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돌아보소서.' 하고 왕에게 아룁니다. 자신과 유대민족을 같은 목숨, 공동운명체로 묶은 것입니다. 그 에스더의 얼굴과 음성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고운 얼굴에 슬픔과 애절함이 가득하고, 그 아름다운 눈에 애통의 눈물이 넘치고, 그 음성은 간장이 끊어지듯 간절하였을 것입니다. 에스더의 간청을 듣는 왕은 마음이 녹아내려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도 우리와 주님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 우리와 한 생명이 되셨고 우리와 공동운명체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께 주님과 우리 죄인들이 영원히 죽게 되었으니 죄인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영생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의 간청에 하나님의 마음은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님의 속죄제사와 이 간청을 거부하셨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발칙한 청을 감히 내게?” 하고 노하셨더라면, 우리 죄인들이 죽는 것은 물론 주님도 부활하지 못 하셨을 것입니다. 왕이 대경실색하여 묻습니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왕이 어떤 표정이며 어떤 음성이었을까요? ‘감히 어느 놈이 나의 사랑하는 왕후 에스더를 이렇게 한단 말이냐?’ 왕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대답합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너무나도 놀라고 기가 막히고 분노한 왕은 자리를 박차고 잔치자리를 떠납니다. 그의 마음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걷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잔치자리를 박차고 왕궁 후원으로 나갔던 왕이 다시 돌아왔을 때 왕의 눈앞에는 하만이 왕후의 앉은 의자에 엎드려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만은 목숨을 살려달라고 에스더를 붙잡고 의자에 엎드린 것이었지만 눈이 뒤집힌 왕에게는 그것이 왕후를 강간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놈이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하려는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쌉니다. 얼굴을 싸는 것은 ‘보기도 싫다, 듣기도 싫다’는 뜻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왕후를 죽이려고 한 원수, 내 왕후의 민족까지 진멸하려고 획책한 악한 놈, 저놈이 내 왕후까지 겁탈까지 하려고 해? 내가 여태 저놈에게 속았구나. 저놈을 어떻게 갈아 마셔야 속이 시원할까?’ 왕의 심중은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왕에게 내시가 말합니다. “저가 모르드개를 달려고 집에다 오십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세웠나이다.” 왕의 눈은 다시 뒤집힙니다. “뭐라고? 저놈이 내 목숨을 구해준 충신 모르드개를 달려고 나무를 세웠다고? 저놈을 거기에다 매달아라!” 그리고 그 날에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붙이고 모르드개에게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줍니다. 실로 통쾌하고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이 통쾌한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승리하신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같이 시행하사 우리가 우리의 대적을 무찌르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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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7: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심판은 속히 이루어지며 신속하게 임할 것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며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재앙이 이를 것입니다. 하만에게 임하는 심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왕이 자신의 목숨을 구한 모르드개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를 생각할 때 하필이면 하만이 높은 장대에 모르드개를 매다는 것을 허락 받으려고 왕의 뜰에 나와 섰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묻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좋겠느냐?”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자가 자기 말고 누구겠느냐,’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왕복과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 가장 높은 신하가 고삐를 쥐고 성중에 다니며 ‘이 사람이 가장 존귀한 분이다,’라고 외치게 하소서” 하고 건의합니다. 그랬더니 왕은 당장 그대로 시행하여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서 하만이 고삐를 잡고 성중을 한 바퀴 돌라고 명령합니다. 졸지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모시고 “이 분이 가장 존귀한 분입니다.” 외치며 성중을 돌았습니다.
하만이 머리를 싸매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 세레스에게 이 기막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아내 세레스가 하만에게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당신이 진멸하려는 유대인이라면 큰일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거꾸로 그 앞에 엎드러질 것입니다.” 그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왕의 내시들이 들이닥쳐 하만을 잡아서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자리에 갑니다. 하만이 내시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악인에게 심판이 느닷없이 임하여 미끄러운 웅덩이에 신속하게 빠져드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 심판의 웅덩이는 실상 하만 자신이 스스로 판 무덤이요 함정이요 올무입니다. 그 잔해가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이 자기 정수리에 내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며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리고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자신이 스스로 얽히는 것입니다(시5:10, 시7:15, 잠26:27).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그 손을 벗어날 자는 없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10:31)” 하나님은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하며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시9:18).
왕은 사랑스러운 에스더 왕후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왕은 다시 묻습니다. 세 번째 묻는 것입니다.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왕의 마음이 에스더의 소원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고 애탔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행”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갑니다. 이 ‘시행’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에스더서에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네 번).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 두 번 연이어 나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3-14).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시금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가 아니라 자신에게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넘겨주신 것입니다.
에스더가 드디어 그 소원을 왕에게 아룁니다. “왕이시어, 내 목숨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오히려 잠잠하였으리이다.” 에스더는 '내 목숨, 내 민족이 하나요, 나와 내 민족이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돌아보소서.' 하고 왕에게 아룁니다. 자신과 유대민족을 같은 목숨, 공동운명체로 묶은 것입니다. 그 에스더의 얼굴과 음성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고운 얼굴에 슬픔과 애절함이 가득하고, 그 아름다운 눈에 애통의 눈물이 넘치고, 그 음성은 간장이 끊어지듯 간절하였을 것입니다. 에스더의 간청을 듣는 왕은 마음이 녹아내려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도 우리와 주님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우리의 형제가 되셨고 우리와 한 생명이 되셨고 우리와 공동운명체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께 주님과 우리 죄인들이 영원히 죽게 되었으니 죄인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영생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의 간청에 하나님의 마음은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님의 속죄제사와 이 간청을 거부하셨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발칙한 청을 감히 내게?” 하고 노하셨더라면, 우리 죄인들이 죽는 것은 물론 주님도 부활하지 못 하셨을 것입니다. 왕이 대경실색하여 묻습니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왕이 어떤 표정이며 어떤 음성이었을까요? ‘감히 어느 놈이 나의 사랑하는 왕후 에스더를 이렇게 한단 말이냐?’ 왕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대답합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너무나도 놀라고 기가 막히고 분노한 왕은 자리를 박차고 잔치자리를 떠납니다. 그의 마음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과 수치심으로 걷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잔치자리를 박차고 왕궁 후원으로 나갔던 왕이 다시 돌아왔을 때 왕의 눈앞에는 하만이 왕후의 앉은 의자에 엎드려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만은 목숨을 살려달라고 에스더를 붙잡고 의자에 엎드린 것이었지만 눈이 뒤집힌 왕에게는 그것이 왕후를 강간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놈이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하려는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쌉니다. 얼굴을 싸는 것은 ‘보기도 싫다, 듣기도 싫다’는 뜻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왕후를 죽이려고 한 원수, 내 왕후의 민족까지 진멸하려고 획책한 악한 놈, 저놈이 내 왕후까지 겁탈까지 하려고 해? 내가 여태 저놈에게 속았구나. 저놈을 어떻게 갈아 마셔야 속이 시원할까?’ 왕의 심중은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왕에게 내시가 말합니다. “저가 모르드개를 달려고 집에다 오십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세웠나이다.” 왕의 눈은 다시 뒤집힙니다. “뭐라고? 저놈이 내 목숨을 구해준 충신 모르드개를 달려고 나무를 세웠다고? 저놈을 거기에다 매달아라!” 그리고 그 날에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붙이고 모르드개에게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줍니다. 실로 통쾌하고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이 통쾌한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승리하신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같이 시행하사 우리가 우리의 대적을 무찌르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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