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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삼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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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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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2: 16-19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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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앞머리에서부터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사도됨과 그 전하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며 진리임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11절에서도 사도바울은 다시금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철저한 유대주의자요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자신이 사도가 된 경위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정하심과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선배사도들을 찾아가지도(가르침을 받으러),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으며, 삼년 뒤에 게바(베드로)를 심방하러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만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의 전한 복음이 사람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직접제자에게만 가능한 칭호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배척하거나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으며 예수님이 직접 택하시고 세우신 사도라는 것을 서신서마다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2장에 들어가면 사도바울은 14년 후에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일은 사도행전 15장에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유대에서 내려온 거짓형제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교회가 어지럽게 됨에 따라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게바(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그들의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조상들도 제대로 행하지 못 했던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는 것은 옳지 못 하다는 것과 또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쓸데없이 율법으로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가르치라는 지침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로, 야고보, 베드로, 요한은 할례자들(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일할 것을 합의합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기간이 이방인(헬라인)인 디도에게는 할례를 받을 절호의 기회였지만 바울은 디도가 할례를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할례가 복음에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자들은 거짓형제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케 된 우리들을 할례의 코뚜레와 율법의 멍에로 옭아매어서 도로 종이 되도록 만들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로, 애굽으로 거꾸로 끌고 가려는 자들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게바(베드로)가 행한 적절치 못 한 행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게바(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이 도착하자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했고 이를 본 다른 유대인과 바나바 등도 덩달아 자리를 피했던 일이었습니다. 유대 율법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또 이제는 다 같은 형제이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어떻게 보면 후배사도인 바울이 선배사도인 베드로를 감히 책망한 일종의 하극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는 복음의 진리를 훼손하는 어떠한 일도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도바울의 단호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눈치와 타협이 세상풍조와 어울려 복음을 변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 할” 복음이 사람으로 인하여 왜곡, 변형, 훼손되어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일은 그 때도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바른 믿음과 신앙자세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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