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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호 목사 ① 사도행전 주해 저서 출판기념 감사예배 및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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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2025-01-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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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15년 여간 목회를 하다가 2년여 전에 은퇴를 했던 문석호 목사가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그 도(道)의 사람들>을 출판했다. 문 목사는 뉴욕에서 교육과 선교를 중심으로 이민목회를 하면서도, 뉴욕 교협과 목사회의 회장으로 섬긴 바 있다. 지금은 조지아에서 거주하며 집필 및 신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69dbdb0dfbfe3f99ecd569ca8657278d_1738159700_8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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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호 목사 저서 출판기념 감사예배 및 세미나가 뉴욕한인교역자연합회(회장 이규형 목사)가 주최한 가운데 1월 28일(화) 오전에 뉴욕베데스다교회에서 열렸다.

 

관련기사: 문석호 목사 세미나 “사도바울이 뉴욕 플러싱에서 교회개척을 한다면”

https://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13402

 

문석호 목사는 “제가 사도행전 주해를 이렇게 펴내게 된 것은 정말 주님의 큰 은혜이다. 평소 제가 늘 꿈을 꿨는데 학교에서 가르치고 그리고 목회하면서 끝을 못냈다. 제가 하고 싶었던 히브리서, 베드로서, 사도행전, 그리고 시편 등이다. 지금은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건강도 허락되고, 여건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첫 시작을 하며 친정같은 뉴욕에 기쁜 마음으로 찾아왔다”고 인사했다.

 

문석호 목사의 세미나 내용을 3회에 거쳐 소개한다. 

 

1.

 

왜 사도행전을 처음으로 시작하는가?

구약 너머, 신약 너머, 새로운 시각으로

사도행전, 오늘을 살리는 영적 지침서

 

왜 하필이면 사도행전을 처음으로 시작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그럴 때는 제가 이렇게 몇 가지로 답을 합니다.

 

첫째, 구약을 신약의 눈으로 보게 된 결정적인 인물이 바울과 그리고 베드로와 이것을 확증한 야고보의 결정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설교자 또는 목회자 또는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구약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구약의 눈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약을 깡그리 철저히 무시하지는 않고 핵심 또 본래 의미를 밝힌 분이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바울이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신약의 눈으로 구약을 본 것과 같이, 신약을 또 다른 눈으로 봐야 되는데 우리는 설교시간이나 성경공부할 때 구약에 있는 기록된 말씀과 신약에 있는 기록된 말씀만 언급할 뿐이다. 이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신약성경을 구약성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거기까지는 못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든 원하든 간에 이 시대의 상황이 마치 초대교회보다 더 황량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불신앙이 싹을 트고 있는데, 이런 때야말로 사도행전의 복음 전도자들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 가지 더 말하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기록했던 또 바울이 말했던 그 상황에서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봐야 되는데, 우리는 기껏 구약의 눈으로 지금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신약의 눈으로만 신앙을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다. 또 다른 어떤 영적인 눈으로 이 신구약 성경과 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런 눈이 또 필요한데 이걸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데 누가 그것을 할 것인가? 그것은 오늘날 하나님과 성경을 바라보고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과 목회자들의 임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도행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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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인적으로 왜 사도행전이냐고 할 때, 저는 사실 35세에 교수생활을 시작하고 20년이 지난후에 선교지로 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분의 요청으로 뉴욕에서 목회를 했다. 이민교회의 다음세대에 대한 교육과 그리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선교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전임자가 말씀으로 다 다져 놓은 교회 위에 말씀을 더 강하게 가르치면서 선교현장으로 가려고 했다. 교육문화관을 세운 다음 뉴욕평신도선교신학원을 열어서 일꾼들을 배출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목회를 끝낼 즈음에 이제는 선교현장에서 내 삶을 마무리 짓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조금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셔서 어떤 제한도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글을 쓰게 됐으니 이거야말로 제게 주신 아주 최고의 꿈꾸던 일이며, 2년 전에 제가 조지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까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2.

 

‘영과 자유’,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사도행전과 도(道), 신앙의 길을 찾다

고대 철학과 신학, 진리의 길에서 만나다

 

책 표지 맨 위에 조그맣게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이 있지만 부제가 <영과 자유로 살다간 그 도(道)의 사람들>이다. ‘영과 자유’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걸 큰 글자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큰 글자를 너무 많이 쓰면 또 제목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작은 글자를 했지만, 사실은 ‘영과 자유’라는 게 신앙의 핵심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랬는데, 목회자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한 어떤 율법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고, 그러니 성도들은 더욱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항상 회개로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이런저런 율법 - 헌금에 헌신을 강요하고 또 이런저런 제한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에게 정말 ‘영과 자유’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밀려오는데, 목회할 때는 또 교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교수로서는 그런 말을 자유롭게 못했다.

 

그러나 클래스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많은 얘기를 했다. 이제는 뭐 은퇴했으니 제가 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 속에서 마태복음이 신구약의 중간이 아니라 사실은 사도행전이 신구약에게 중간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제일 먼저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사도행전에서 <그 도의 사람들>이라는 그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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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70년 중반쯤에 고대 중국 철학사상을 강의하고 배울 때 많은 생각을 했다. 유학을 하고 목회하면서 다 잊었는데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물론 사도행전하고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과 기독교인들도 되새기는 것이 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중국 사회의 지적세계나 철학세계는 지금 많은 식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이 된다. 제자백가시대와 또 노장사상 BC700~800년대, 공자 BC500~600년 시대에 있었던 시대 속에서 나타났던 글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운 것이 많이 있다. 도(道)라는 단어가 얼마나 미묘하고 얼마나 예민하고 중요한 것인지, 오죽하면 많은 신학자들이 중국 철학을 깊이 공부하고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지혜자들을 통해서 길을 깔아놓지 않았느냐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희랍철학을 보면 BC400~600년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시대에 나오는 말들을 연결시켜 보면서 이거는 우리가 이교도로 취급할 게 아니라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길을 닦아 놓은 희미하지만 뭔가 깊이 연구할 내용들인데, 이제 그게 슬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목회할 때는 하나도 안 보이더니, 교회를 떠나서 가만히 묵상하면서 글을 쓰니 다시 생각이 나고, 심지어 칼 발트와 많은 신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가리켜서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얘기하다 보니까 1,800페이지가 되었다. 그래서 여러권 책을 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서로 참고하며 왔다갔다 하려면 한권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려면 내용을 줄이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형이상학적 철학적인 얘기들을 다 정리해서 빼버렸다. 그래도 1,400페이지로 너무 두꺼워 다시 정리하여 약1,200페이지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는 영어로는 “In the beginning”이다. 그 ‘태초’라는 ‘아르케’라는 말은 사실 고대 희랍 철학자들 가장 중심을 잡고 관심을 가진 단어이다. 이 ‘아르케’ 보다 200~300년 전인 BC700~800년에 중국 철학자들이 세상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서 만들어낸 단어가 도(道)이다. 중국 사람들은 길을 말씀 도(道)로 번역을 했는데, 내가 볼 때는 기가 막히다. 이걸 도(道)로 붙인 건 대단한 혁명적인 얘기고, 또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읽게 되었다.

 

3.

 

글과 신앙, 목회자의 본질을 찾아서

논쟁을 넘어 영원한 가치를 향하다

책과 묵상 속에서 새롭게 시작된 사명

 

그리고 주해를 하게 되었다. 사도행전 얘기는 아니지만 은퇴한 다음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되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딱 두달이 좀 지나니까 “너는 할 일 있잖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집을 도서관처럼 꾸미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는 하는 일이 조그만 농사짓고, 글 쓰고, 산책하고, 또 강의요청하니까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제 생애에 없던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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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나오라고 한다. 그런데 몇 번 가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조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익한 논쟁도 싫고, 다 지나가는 일들이다. 중국이나 유럽 역사를 보면 굉장한 난투극과 전쟁들이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 없어졌다. 남는 것은 학문과 사상과 인류의 빛을 밝히는 글들이다. 뉴욕에서 목사님들이 관심을 두는 어떤 전쟁 치르듯이 논쟁하고 세력을 다툼하는 것은 다 지나가는 얘기이다. 

 

남는 건 무엇인가? 목회자의 본질을 향하는 것이다. 저는 신학생들에게 늘 그랬다. 글 읽기 싫으면 목사하지 마라, 글 읽는 것을 게을리하면 절대로 신학공부하지 마라고 했다. 말 많이 하고, 떼거리 노릇하고, 한국 보니 교단 정치하고 여기 저기 기웃기웃거리는 것은 목사의 본질이 아니다. 

 

4.

 

사도행전 속 문화와 역사, 그 깊은 의미

텍스트와 배경 속에서 새롭게 본 사도행전

바울의 여정과 숨겨진 역사적 맥락들

 

제가 주해를 하면서 강조한 것 몇 가지가 있다. 사상적인 배경을 쓰고 싶은데 책이 너무 두꺼워 진다고 해서 뺐는데 이제 다음부터는 그걸 조금씩 조금씩 넣으려고 한다. 

 

우선 제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관심 뒀던 거는 첫 번째는 텍스트이다. 뭐니뭐니 해도 주해는 텍스트이다. 텍스트는 반드시 그 언어가 문화와 사상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신약은 그냥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다. 희랍 철학과 사상가들이 마구 사용하던 언어들을 그대로 누가나 제자들이 쓴 것이기 때문에 뚝 떨어지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배경을 문화적인 배경과 사상사적인 배경을 공부하다 보면 재미있다. 자연히 철학 공부가 되는 것이고 사상 연구를 하게 된다. 그래서 텍스트를 중요하게 여겼고, 그래서 어느 한 절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주해를 했다. 물론 설교자들이 설교할 때는 꼭 그렇게 할 필요 없지만, 이책은 설교용이 아니고 그냥 배움용이라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이와 관련되지만 주변성의 얘기입니다. 바울이 갔던 모든 곳들 뒤따라 다녔다. 사도행전을 기록했던 누가의 모든 언어는 다 배경이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가다 막히다 마게도니아로 가게된다.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가서 루디아라는 이방여인을 만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복음이 들어가게 만드셨다. 루디아의 집이 오픈되고 감옥을 나온 바울과 일행들이 루디아 집에 들어가서 쉬고 그리고 권면하면서 거기서 교회가 세워지고 바울은 빌립보를 떠난다.

 

물론 빌립보라는 말은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정복한 다음 아버지 필립의 이름을 따서 그 아름다운 도시를 빌립보라고 이름지었다. 로마는 세상을 정복해 나가면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는 다 로마식 이름을 줬다. 그리고 그 도시를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난리가 났다. 풍요롭고 아름답지만 야만인들의 도시가 로마의 법과 제도 속에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 예를 들면 미국이 캘리포니아 밑에 있는 멕시코의 가난한 지역을 어느 날 갑자기 소유하면서 여기에 살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국시민권을 준 것을 상상하면 된다.

 

당시 미국 시민권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로마의 시민권을 빌립보 사람들이 소유하게 됐다는 것은 빌립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로마라는 강력한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특권 때문에 빌립보 사람들이 날고 뛰며 좋아했지만 바울이 “아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단어나 문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문화적인 정치적인 컨텍스트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가는 곳곳마다 사실은 그런 문화와 역사가 있다. 그런데 누가는 바울을 모시고 다니면서 그런 것에 대한 언급할 여유와 시간도 없었고, 바울 뒤를 따라다니면서 바울이 하는 행적을 기록하기에도 힘겨웠기 때문에 그런 건 없지만, 사실 사도행전은 우리가 보면 역사와 문화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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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 번역의 한계, 원문 분석의 중요성

사도행전 원어, 번역의 차이를 파헤치다

언어 분석을 통해 본 성경 해석의 깊이

 

언어의 분석 속에서 우리말과 영어가 다르다. 우리말과 영어에 시제나 내용에 차이가 있듯이, 헬라어는 단어 하나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또는 단수인지 복수인지 다 나온다. 이런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읽기는 편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언어 분석이 따라가야 되는데, 성경버전들이 원어에 얼마나 충실한지 일일이 비교하다 보니까 좀 시간이 걸렸다. 

 

사도행전 27장에 배가 난파를 당할 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는데 바울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여러분, 내 말대로 떠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죽기 직전이지만 그러나 안심하시오. 지난 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배는 잃었지만 우리 생명은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맨 앞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라고 했는데 먹지 못한 대상의 헬라어 단어는 단수이다. 오랫동안 다 먹지 못했지만, 그 문장에서 말하는 것은 바울이다. 그런데 NIV에서도 복수로 나오며 우리말 번역이 다 그렇게 돼 있다. 원문은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것은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번역하자면 “바울이 오랫동안 먹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된다. 근데 킹제임스는 “오랫동안 먹지 못했음에도 그 다음 바울이 일어나”라고 주어를 안 넣었다. 그런데 다른 영어 성경에는 다 주어를 많은 사람들로 해놨다. 

 

이런 것들이 구원과도 관계없는 것이지만, 문장 자체에 충실하려면 우리가 텍스트를 정확히 봐야 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해야 된다. 이런 것까지도 세심하게 살피면서 주해를 썼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장에 기가 막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청중들은 “마음에 찔려”라고 나오는데 “양심에 찔려”라는 의미이다. 근데 사도행전 6~8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도 “가슴이 찔려”라고 반응하지만 “우리가 저놈을 죽일까?”라는 의미이다. “가슴이 찔려” 또는 “마음에 찔려”라는 단어는 본문에 따라 다르다. 우리말 번역에도 좀 다르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의 부분은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의 양심에 찔려” 라고 번역하고, 뒤의 것은 “스데반의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 차서”라고 번역을 해야 된다. 근데 우리말로 다 그냥 “가슴에 찔려”라고 했다. 그런 번역에 있어서 조금 더 세심하게 했으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들이 여러 군데 있어서 그걸 제가 짚어냈다. 그리고 신학전공한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세미나 내용 2,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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