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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목사 ② 주일인가? 일요일인가? 안식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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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1-06-2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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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계의 한 단체 집회에서 주일과 안식일을 놓고 논란이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안식일을 믿는 목회자가 교회 광고에 ‘주일예배’ 대신에 ‘안식일예배’라고 적고, ‘주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고 호칭하자 많은 다른 회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주일성수는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온라인 영상예배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팬데믹을 마치는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멘넷은 개혁주의 신학자인 이윤석 목사(부르클린제일교회)에게 주일에 대한 관련 글을 부탁했고, 이 목사는 2주 만에 “다시 살펴보는 팬데믹의 예배, 일요일과 성수주일”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을 3번에 나누어 소개한다. 먼저 “①팬데믹의 회집 예배와 영상 예배”에서는 팬데믹 기간이 끝나도 여전히 영적 혼란 속에 있는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②주일인가? 일요일인가?”라는 제목으로 안식일에서 주일로 변화의 과정, 그리고 개혁주의자들과 청교도의 주일 개념에 대해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③주일성수를 위한 원리적 제안”과 함께 결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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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주일인가? 일요일인가?

 

주일성수에 대한 현대적 관점은 성경적인 주일성수 주장자들을 종교적 근본주의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짙다. 성경적인 주일성수를 강박적인 율법주의의 위치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반대로 잘못된 안식교의 안식일 개념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나 안식교처럼 이해하는 자들도 있다. 오늘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 오늘의 신자들이 주일을 지키는 방식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편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성경과 신학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편의와 자유를 따르며 현실적인 삶의 상황을 앞세우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또한 치우친 일원론주의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예배 하나로 보는 입장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예배라는 협의의 의미에서만 이해하는 것이다. 또는 치우친 이원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날카로운 대조를 강조함으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종교적인 예배와 세속적 삶을 철저히 구분하여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인에 대해 전투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다. 더하여 경험적인 축복강조로서 주일을 철저히 지키면 곧 보상이 따른다는 번영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강조하는 태도가 있다. 이런 모든 방식들은 성경적인 주일성수의 방식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방식과 다른 주일성수의 방식에 대해 서로 비난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과연 확실한 성경의 교훈과 신학적 분별력과 교회 역사를 통해 나타난 분명한 시금석을 가지고 이런 비판을 하고 있는가?  

 

주일은 ‘주의 날’이라는 의미가 있고, 일요일은 다른 평범한 날처럼 동일하게 취급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교인들의 마음과 태도에 있어 주일성수 대신에 일요일 예배라는 개념이 팬데믹 속에서 더욱 짙어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주일성수는 팬데믹 전에도 퇴화하고 있었지만, 이제 팬데믹을 거치면서 실종되어 가는 듯하다. 필자는 본고에서 이런 현상을 “주일의 일요일화 현상“이라고 칭한다. 이에 팬데믹 속에서 다시 한 번 주일과 일요일, 안식일과 주일의 개념에 대한 성경신학적인 내용과 교회사적인 간단한 자료들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주일성수에 대한 문제를 재고해보기 위해, 본고는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부분을 다룸에 있어, 존 프레임의 [기독교 윤리], 다우마의 [개혁주의 윤리학], 칼빈의 [기독교 강요], 조엘 비키와 마크 존스의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이상원의 [기독교 윤리학], 에드먼드 클라우니의 [예수님의 십계명 해석]을 직간접으로 인용하였다. 

 

1. 성경의 안식일

 

확실히 팬데믹은 주일 성수의 개념에 대한 변질을 가져왔다. 올바른 예배는 주일을 성수하는 환경으로부터 나타난다. 그러나 이렇게 실종되어가는 성수주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주일은 과연 일요일로 바뀌어져야 하는가? 주일인가? 일요일인가? 이런 논란은 유대교 이후로 율법 문제를 다루면서 오랜 역사 동안 고찰해 온 문제이며, 근대에 나타난 제 칠 안식교(1863년에 미국에서 제임스 화이트와 엘렌 지 화이트 등이 설립함)에서 주장하는 논쟁들로 주일이란 성경적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안식일의 성경적인 진술부터 살펴보자.

 

1) 안식일의 시작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을 하신 후 일곱째 되는 날에 쉬시면서 이 날을 축복하시고 다른 날들로부터 구별하셨다(창 2:2-3). 이때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가 준수해야 할 안식일 법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셨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위해 안식일 법을 규범적 명령으로 시작하신 것은 출애굽기 16장에 있는 만나사건에서였다(출 16:22-30). 그 후 안식일 명령은 십계명을 통하여 다시 주어졌다. 안식일 명령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의) 표징”(출 31:16-17)이었다. 안식일 명령은 모세시대 이전 어느 순간에 인류에게 주어졌는데, 인류의 죄로 인해 불투명해졌다가 이스라엘에게 명시적으로 주어짐으로 온 인류를 위하여 보존된 것이라는 해석은 성경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2) 안식일의 특징

 

① 안식일 계명의 첫째 특징은 인간의 전인적 건강을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막 2:27),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쉬기 위해서 일을 중단하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출 23:12).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창조의 사역을 다 하신 후 일곱째 날에 쉬시는 모범을 친히 보이심으로 타락한 인간들로 일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셨다. 출애굽기에서 더 나아가 광야의 제 2세대들을 위한 신명기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병들게 하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킴으로 영적인 건강을 도모하고 전인적인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제 4계명은 창조로서의 안식이라면, 신명기의 제 4계명은 그것을 포함한 구속으로서의 안식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즐거운 날(사 58:13)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자 축복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락하시고(마 12:1 이하), 회당예배 중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해 주시고(막 3:2 이하),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고 꼬부라진 여자를 치유해 주시고(눅 13:11 이하), 수종병에 걸린 자를 치유해 주시고(눅 14:2 이하), 38년간 병든 자를 치유해 주신(요 5:9 이하) 것은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탄과 질병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로서 즐거운 해방의 날인 안식일의 성격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② 두 번째 특징은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다(출 20:10; 신 5:14; 출 31:13; 레 19:3,30; 사 56:4; 겔 20:12,13). 그래서 이 날에는 여호와를 찬양하며(시 92:1), 특별한 제사를 드리고(민 28:9이하), 성소를 귀히 여겼으며(레 19:30; 26:2),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에 예배를 위해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예수께서도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고(눅 4:16), 예수님은 이렇게 함께 모이는 기회를 사용하여 전도하시며 청중들을 교육시키시며 선포와 치유와 섬김의 사역을 계속하셨다(막 1:21; 6:2; 눅 6:6; 13:10).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바울도 안식일과 회당이라는 시공간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했다(행13:4).

 

3) 유대인의 포로기와 중간기의 안식일

 

하나님을 위하여 안식일에 일상에서 손을 떼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에도 장사하는 일을 계속했으며(암 8:5), 느헤미야 때에도 유다에서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안식일에 장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자면서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느 3:15이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나타난 이런 나태한 안식일 준수와는 대조적으로 바리새인들의 결의론(決疑論, Casuistry,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윤리적 행동규범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율법주의적인 윤리관)적 태도는 안식일을 준수하려고 하다가 안식일의 기쁨의 축제적인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중간기 시대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더럽히도록 강제명령을 내렸을 때(마카비 1:41-45); 마카비 2서 6:6), 에피파네스의 정책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들인 하시딤(Hasidim)은 마카비 혁명을 일으킨 마지막 주역인 요한 힐카누스 1세(John Hilcanus(BC 135-BC 37) 때 “바리새인 지침서”를 발전시켰고 이 문서가 바리새적 결의론의 근거가 되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지침들은 주후 2세기 전반에 집대성된 율법해설서인 미쉬나(Mishnah)에 반영되었으며 여기에 39가지의 금지항목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규정에는 결의론적인 부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배와 할례와 같은 종교적 행위들과 임산부의 출산보조나 생명이 위급한 환자구호와 같은 인도적인 활동은 허용되었다. 또한 금식이 금지되고,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점심과 저녁의 충실한 세 끼 식사와 더불어 축제적인 성격의 일까지도 허용되었다.

 

2. 안식일에서 주일로 변화와 적응

 

1) 그리스도 중심의 관점에서 보는 구약의 주일(안식일)

 

예수님과 사도들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날을 변경한 것은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만 말하고 있는 넷째 계명의 조항과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언약에서도 여전히 그 계명을 지킬 것을 요청하신다. 그러나 왜 첫째 날일까? 예수께서 그 날을 택하여 부활하셔서 부활 후에 안식일로서 기억할 날이 되게 하신 것은 아니다. 존 프레임은 신약에서 성취될 이 첫째 날에 대한 많은 상징이 이미 구약에도 담겨 있음을 밝힌다. 

①아담이 가진 첫 번째 종일(마지막 날)은 하나님의 안식일인 일곱째 날이었다(창2:2-3).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완성은 바로 아담의 시작이었다. 부활이 그분 안에서 우리의 새 삶의 기초이며 새 창조인 것처럼(고후 5:17), 아담의 시작은 지구상에서 사람의 삶의 기초이다.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안식일은 첫 날과 관계가 있다.

②오순절의 요제와 곡물제사는 “안식일 다음 날”, 즉 한 주의 첫 날에 드려졌다(레23:11, 16). 그날에 성회를 해야 했으며,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되었다(레 23:21). 따라서 이 첫 번째 소산의 축제에서 우리는 죽은 들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예상한다(고전 15:20,23). 주님의 날과 같이 오순절 역시 부활을 기념한다.

③초막절에도 첫 날과 여덟째 날 안식일이 있었다(레 23:35, 39).

④오순절과 초막절이 각각 두 첫날 안식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유월절의 두 안식일도 첫날일 가능성이 높다(레 23:6-8).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대하며 매년 드리는 이 세 축제 모두 첫 날 안식일의 특징을 가진다.

⑤희년은 첫 해라는 상징과 함께 안식의 바로 다음 해일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상징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속적 목적을 완성하실 때 첫 날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을 말씀해준다. 그 날은 새로운 시작, 새 창조,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을 나타낼 것이다. 구속이 완성될 때에는 앞을 보는 것 뿐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것에 대한 강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약에는 일곱째 날 안식과 첫 날 안식 모두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완료하신 사역의 큰 중요성을 나타내며 첫 날의 안식일만 존재한다. 부활을 돌아봄과 예수님의 다시 오심, 그리고 모든 것의 완성을 고대하는 것이라는 돌아봄과 고대의 두 요소도 여전히 존재한다. 

 

2) 신약의 주일

 

예수님은 구약의 안식일을 준수하셨으며(눅 4:16,31), 안식일 법을 반대하시지 않고 다만 바리새인들이 과도한 결의론적인 안식일 관습에 빠져서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안식일법의 근본정신에서 이탈한 행위들을 비판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안식일의 주인이자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일곱째 날을 지키는 습관은 안식의 구속사적인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첫째 날을 지키는 것으로 사도들에 의해 전환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 후 첫 날에 모였으며, 이 첫째 날 모인  자리에 예수께서 두 번이나 찾아오셨다(요 20:19,26). 바울은 안식일 날이 아니라, 안식 후 첫 날에 집회를 가졌다(행 20:7; 고전 16:2). 사도 요한은 안식일이 아니라, 그 안식 후 첫 날을 “주의 날”이라고 명명했는데(계 1:10). 이는 벌써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주일의 의미가 점진적으로 정착되어가는 60여년 정도가 지난 후의 일이다.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전략적인 생각에서 취한 최적의 행동이었다.

 

유대인들의 적대적인 반응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했으며,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회당에서 쫓겨났거나 자발적으로 그곳을 떠남으로 기독교인들은 점점 유대인의 분파적 색채를 덜 띠게 되었으며 유대교에서 독립된 신앙이 되었다. 주님의 날은 점점 더 믿는 자들의 주된 예배시간이 되었다. 사도 시대에 교회는 바로 이 애매함을 가졌지만 기독교인들은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첫째 날을 주님의 날로 인식했다. 로마서 14장 5절, 갈라디아서 4장 9-10절, 골로새서 2장 16-17절은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사이에 벌어진 일곱째 날 안식일의 준수를 둘러싼 논쟁을 가리키는 것을 해석된다. 바울은 안식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주님의 날은 사실상 안식일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3) 사도 후 교부들의 확인

 

사도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속사도들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30-100),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AD 108년경), 서머나의 폴리갑(Polycarp of Smyrna AD. 80-165), 헤르마스(Hermas, 145년경) 등이다. 그 중에 마그네시안(Magenesians)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그나티우스(?-108)는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날을 중심으로 산다. 이 날에 우리의 삶은 주님과 주님의 죽으심에 의해 새롭게 된다”고 말한다. 171년 고리도의 주교였던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도르트 공회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날을 거룩하다고 말한다. 바나바(Barnabas, 바나바서신, 70-132년 사이에 작성), 디다케(Didache, 열 두 사도들의 가르침, 110년경),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10-165)도 안식일이 아닌, 부활의 날인 첫째 날을 주의 날로 언급하였다. 터툴리안(Tertullian, 155-225)은 이 날을 즐거운 날이라고 부르면서 직업 노동을 금지키셨다. 그는 주일을 지키는 것을 “기독교인의 구별되는 표지”라고 언급했으며, 그는 “일요일에 매일의 일을 제쳐놓는 것”에 관해 말한 첫 번째로 알려진 기독교 저자이다. 콘스탄틴 대제가 AD 321년 일요일을 안식일로 선포하고 노예를 풀어 주는 일을 제외한 모든 법정의 일, 국가의 일, 군사 훈련을 일요일에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을 발표했고, 라오디게아 회의(AD 364)는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의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일을 하고 일요일에는 가능한 한 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교회 결의를 통하여 주일성수가 제도화된 것은 538년 오를레앙 회의 때였다. 이 회의는 유대인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 칠 안식일 교회에서 오해하여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반포나 로마교의 태양신숭배사상이나, 역사적인 교회회의의 규범적인 규례들을 따라 주일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에서 밝히듯이 주님이 부활하신 그 첫째 날에 사도들의 모범과 니케야 회의 전까지 모진 핍박을 받았던 속사도들과 교부들의 모범을 따라 회집하는 것이다. 구약의 궁극적 안식이 유월절의 양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하여 성취되었으므로, 이제 우리가 지키는 날은 안식일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전환된 것이다.  

  

4) 종교개혁자들의 주일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가 교회법으로 인간의 양심을 속박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유대인의 안식일 규정은 새로운 경륜에 의하여 폐기되었음을 강조했다. 개혁자들은 특히 정부가 법규로 일요일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제하는 것을 비판했다. 칼빈은 안식일은 인간 자신의 의지를 죽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게 함으로써 내적으로 안식하는 날이라고 규정하고, 이와 같은 안식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중들의 연약성 때문에 날마다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따로 하루를 지정하여 모여서 하나님 자신의 일을 생각하게 하셨다고 보았다.

 

① 개혁주의 주일에 대한 신앙고백서

 

개혁주의의 안식일관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개신교의 대표적인 두 개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Heidelberg Catechism, 1563)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를 통해서였다. 두 고백서가 주의 날에 해야 할 일을 규정한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에 의해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는 주의 날에 예배, 설교직무, 교육,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례를 거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공적으로 부르고 긍휼을 실천하도록 규정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꼭 필요한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을 제외하고는 공적, 사적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영적인 안식 곧 악한 일을 멀리하고 성령을 통하여 주님이 성도 안에 역사하게 하며, 삶 속에서 영원한 안식이 실현되도록 할 것을 강조한다면, 신자들을 위한 최상의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일의 중단 곧 안식일에는 평일에 해서는 안 되는 악한 일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평일에 허용된 직업노동과 여가활동까지도 금지하도록 규정함으로 주일과 평일(혹은 일요일)에 대한 구분을 확실하게 하였다.

 

② 칼빈의 주일관

 

칼빈은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안식일에 대한 교회의 바른 이해와 신약 시대의 주일 개념의 원리를 두 가지 형태로 집약하여 설명한다.

 

(가) 모세의 율법이 보여 주는 안식일 개념

칼빈은 율법이 보여 주는 안식일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구약 성도들의 안식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하여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일을 접어 두어야 한다는 안식의 개념이 들어 있음을 강조했다. 이렇게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자 첫걸음이었다. 칼빈은 이러한 의식적인 개념에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원리를 언급했다. 칼빈의 모세오경 주석에서는 안식일이 단순히 게으르고 나태하게 보내는 날이 아니라 안식일에 우리의 몸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는 자발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약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의식적인 단호한 행동이 요구된다.

 

(나) 경건 훈련을 위한 공동체의 의식일로서의 안식일과 주일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정하시고, 그날에 사람들이 모여 율법을 듣고 의식을 거행하거나 적어도 이날의 시간을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에 바침으로써 이를 기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건의 훈련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바울이 골로새서 2장 16-17절에서 언급하는 안식일의 상징적인 의미는 상실되었지만, 여전히 그 영적 원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역설했다.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공동체로서의 경건 훈련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해진 날에 모여야 한다. 이와 같이 안식일은 단순히 육체적인 활동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묵상하고 경배하는 일을 방해하는 온갖 일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날들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묵상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종사하기 위함이라고 칼빈은 가르쳤다. 칼빈은 우리가 몇 가지 훌륭한 교훈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우리의 모든 의식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이 제 칠일이 되어야 하지 않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모든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시고 율법 준수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모이는 것이다.

 

③ 주일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의 정리

 

17세기 네덜란드의 후속 종교개혁의 대표자이며, 도르트 대회(Dort Synod)의 가장 어린 대표자였으며, 칼빈주의 신학자인 기스베르투스 후치우스(Gisbergtus Voetius, Gijsbert Voet 1589-1676)는 안식일과 교회절기들을 예리하게 구분하면서 로마교 재세례파, 유대교 등에 비교되는 개혁신학의 입장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1)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확정된 안식일이 있어야 한다(재세례파와 소시누스파 비판). 

2) 7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유대의 안식일은 바뀌고 폐지되었다(유대교 비판), 

3) 일곱째 날에서 주 첫째 날로의 전환은 교회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일어났다(로마 가톨릭 비판). 

4) 주의 날은 순결한 전통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온 것이다(로마 가톨릭 비판). 

5) 안식일 경축은 긍휼을 베푸는 일을 배제하지 않는다(유대교 비판). 6) 힘든 노동뿐만 아니라, 공적이고 사적인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이 금지된다(로마 카돌릭 비판). 

7) 외형적인 경건을 통하여 일요일의 일부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로마 가톨릭 비판). 

8) 일요일 그 자체는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한 것이 아니다. 일요일도 옛 언약하의 안식일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이다.

 

개혁주의 신학자 후치우스는 안식일의 핵심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일주일 중 하루는 구별되어야 하며, 이는 도덕법이다. 따라서 이 구별은 교회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근거를 둔다(창 2:2). 

2) 안식일에서 주일로의 전환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은 사도적 권위가 아니라 관습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보았지만, 그러나 이 전환은 사도의 모범을 통하여 보여준 것이며, 사도의 모범은 하나님의 법이므로 이 법은 우리를 구속한다. 요한복음 20장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첫째 날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주일은 하나님의 법이다. 

3) 안식일은 만나 사건 때나 율법을 받을 때가 아니라 태초에 제정되었다. 

4) 안식일법이 도덕법이냐 의식법이냐를 둘러 싼 논쟁이 개혁파 안에 있었으나 안식일 법을 의식법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이 안식일 곧 주일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일곱 째 날을 주의 첫째 날로 전환하여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 

2) 주일을 토요일 저녁에 지키는 것은 반대한다. 

3) 안식일은 24시간으로 계산하기 보다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4) 안식일에 일을 중단하는 것은 심각하게 지켜져야 한다. 안식일은 아디아포라(adiaphora, 본질적인 것이 아닌 일에 대한 행동과 선택은 명령이나 금지된 것이 아니면 자유로운 것)가 아니다. 

5) 주일 그 자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나게 하는 표징은 아니다. 부활과 이에 따르는 모든 유익한 일들은 항상 기념해야 한다. 

 

개혁주의자들은 주일 성수의 세 가지 단면을 이렇게 정리했다. 

1) 인간은 하나님을 본받아 행동하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이 점은 주일성수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하시고 하루 쉬신 것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2) 악한 행동을 중단하고(갈 5:19-21), 주께서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 일하시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갈 5:22,23),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으며(엡 4:30), 이 세상 안에서 이미 시작된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것이다(히 4:9; 사 66:23). 

3) 6일 노동 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이다. 따라서 이 질서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인류 타락 이전에 주어진 이 질서는 문자 그대로 준수해야 할 모범으로서, 단순한 의식법적인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가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4계명을 통하여 명령하셨고, 부활과 관련하여 성령의 인도함에 의해 주의 첫 날이 안식하는 날이 되었기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

 

4. 청교도의 주일 개념

 

청교도는 다양한 신앙의 색채를 담고 있지만, 다수의 신앙이 개신교 개혁신앙에 가장 가까운 신학과 신앙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성경에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주일에 대한 인식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1) 칼빈의 주장을 이어받은 청교도의 주일관

 

청교도들은 단순히 영국 기독교의 주일 성수 개념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이후 개신교의 주일 개념에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주일에 구약의 안식일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했고, ‘안식일 엄수주의’를 유출시켰다. 그들이 이토록 엄격한 주일 성수 사상을 고집한 데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시련과 난관을 뚫고서 이들의 노력은 결국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1677년에 청교도들의 가르침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의회조차도 주일 성수 법령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대다수의 청교도 학자들은 성경을 따라 한 주의 첫날을 특별한 날로 정하여 안식과 예배를 위한 날로 제시하였다. 엄격한 주일 성수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전체 기간에 잉글랜드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어난 청교도 운동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였다. 청교도가 안식일 개혁안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가혹한 조롱을 받았다. 1617년 제임스 1세(KJV 헌정)가 공표하고(1633년 챨스 1세가 다시 공표함) 모든 교구에서 법으로 선포된 스포츠령(1618, Declaration of Sports)에 따라 잉글랜드 교회는 주일 오락으로 사냥과 댄싱과 같은 활동을 공식적으로 허용함으로서 청교도의 주일성수 계획을 거부했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소수의 분리파 청교도들은 잉글랜드를 떠나 개혁신앙에 따른 새로운 잉글랜드(New England)를 설립하기 위해 신대륙을 향하여 1620년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타고 뉴잉글랜드의 플리머스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바로 필그림 파더들(Pilgrim Fathers)이다.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의 주일성수의 내용을 보면, 대체로 오전 예배 3시간, 오후 예배 3시간, 공적 예배에 도합 6시간을 충분히 할애했다. 성도들은 진지하게 특별한 백성으로서 안식일에 자기들을 구별시킴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역을 시작했으며 이런 엄격함 때문에 이 운동 초기에 ‘청교도’라는 멸시어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붙여졌다. 당시의 청교도의 핵심적인 특징은 주일성수라고 할 수 있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이 주장한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구약의 안식일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은혜와 신앙의 교통 가운데 누리는 안식’을 예표한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의식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한 날을 정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대한 강력한 구속력을 언급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이러한 그들의 태도가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표명되어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적당한 분량의 시간을 구별해 바치는 것은 자연법칙에 합당한 일이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서 적극적이고도 도덕적인 영구한 명령으로 요구하신 것이 있으니, 곧 모든 시대의 인류로 하여금 이레 중 한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히 지키도록 한 것이다. 창세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이 안식일이 이레 중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는 이레 중 첫날로 바뀌었다. 이날을 주일이라고 하며, 그리스도 교회의 안식일로서 이날을 세상 끝날 까지 계속 지켜야 한다”(21장 7항).

 

2) 청교도의 주일 성수에 대한 실제적인 원리

 

하늘의 소명을 위하여 이 땅의 소명을 잠시 내려놓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가르친 청교도들은 이것을 부담이 아니라 즐거운 특권으로 여겼고, 금식일이 아니라 축제일로 간주했다. 그들은 주님의 날을 영적 박람회요 한 주간에 필요한 모든 영적 양식을 충분히 비축하는 즐거운 날로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청교도들은 이 날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선포되는 말씀을 듣기 위해 준비해야 했다. 즉,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청교도들은 주로 토요일 저녁 시간에 모여 기도로 준비했다. 청교도 설교가 스윈녹(George Swinnock, 1627-1673)은 “만일 당신이 토요일 밤에 당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주일 아침에 당신의 심령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주일에 졸지 않기 위해 그 전날 제시간에 자라고 권면했다. 청교도들은 주일이 모든 공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특별한 것은 주일에 모두가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주일에는 예배하러 가기 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늘의 예배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간구했고, 예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함께 들은 말씀을 확인했다. 오후에는 요리문답서로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했고, 저녁 예배에 가기 전에도 오전에 한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예배를 준비했다. 청교도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는 일찍이 영국 교회에서 경건의 능력이 쇠퇴한 원인으로 주일을 엄숙히 지키지 않는 것임을 지적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한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의인 된 죄인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주일성수의 신자들은 주 중에도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며 방종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3) 청교도의 대표적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의 주일이해

 

칼빈은 안식일에 대해, 죄에 대한 해독제로 주어진 것이고, 신자들은 죄로 얼룩진 자기들의 일을 쉬는 것으로 넷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청교도의 대표적인 성경적인 신학자 존 오웬은 안식일에 대하여 칼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확실한 창조 규례의 근본 국면의 하나로 보았다. 오웬은 안식일을 내용상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덕법으로 이해했으며 그 특별한 날이 거룩하게 된 것은 실정법이라고 이해했다. 이것은 안식일이 어떻게 일곱째 날에서 한 주의 첫째 날로 바뀔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오웬은 7일 가운데 하루를 쉬는 원리는 안식일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기초가 발견되는 도덕법이므로 영속적 명령이라는 것을 계속 증명한다. 의식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고 폐지되지만, 도덕법은 영속으로 인간을 구속하는 법이다. 오웬은 그의 방대한 히브리서 주석을 통해서 안식의 의미와 주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힌다. 그는 “온 세상이 지키도록 되어 있는 안식이 세상과 세상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세우고 만드신 분의 일과 안식에 기반이 두어진 것처럼, 복음의 교회의 안식도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안식에 기반이 두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과 안식에 따라 그분은 또한 한 안식일을 폐지시키고 다른 안식일을 세우시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바울을 히브리서의 저자로 보는 오웬은 ”바울이 히브리서 3장 11, 18절과 4장 1, 3, 4, 10절에서 발견되는 헬라어 ‘안식‘에 ’카타파우시스(하늘의 영원한 안식을 말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4장 9절에 안식에 ‘삽바티스모스’를 사용하는 것은, 이 구절이 기독교적 안식일 곧 첫 날인 주일을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의 때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 날은 단순히 6일간의 노동을 멈추고 쉬는 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적, 사적 예배를 위해 정해진 시간임을 밝혔다. 기독교적 안식일(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청교도의 비전은 교회의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하루 전체를 공적으로 교회에서, 가족과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별하고, 사적(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과 본보기를 따라 허용되는 필수적인 의무와 자비의 실천을 필연적인 조건으로 신앙생활 하는 데 있었다.

 

5. 개혁주의 성수주일의 구체적 원칙

 

1) 개혁주의자들이 심사숙고하고 내놓은 주일을 지키는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① 우리는 주일에 공적, 사적인 예배를 드리며, 복음 사역과 이단에 대한 대처를 위한 교리 교육을 시행한다. 

② 주일에는 평일에 계속하여 일할 힘을 재충전하는 날로 지킨다. 이 날에는 힘든 노동을 금지한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농사, 수작업, 공장일, 선박, 기차, 전차 일 등과 같이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일들을 중단함으로서 노동자가 사회의 노예와 짐 나르는 동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한다. 공적 재판, 시장 거래, 무역 등과 같은 상거래나 공공활동을 중단한다. 긴장을 요구하는 연구와 강의 등과 같은 학문 활동을 중단한다. 직업노동을 중단한다. 

③ 환자 진료와 간호와 같은 긍휼을 베푸는 일들이나 생계유지를 위하여 집에서 식사 준비하는 일, 동물 돌보기, 농사일, 기차, 우편, 전보, 전차운전과 등과 같은 필요한 일들은 주일에도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는 각 개인의 양심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며 주일에는 반드시 일할 것을 요구하는 직업의 경우는 전직을 고려해야 한다. 

④ 주일의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이후에도 다른 종류의 일을 하시는 것처럼(요 5:17) 주중의 일과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⑤ 여가 활동 중에서 그 자체가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은 안식일에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 혈연 및 친구관계에 주신 선물은 노동능력의 재충전을 위하여 필요하다. 긴장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여흥은 넓은 의미에서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여흥을 방해하는 여흥은 금지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의 사랑에 방해되는 여흥도 금지되어야 한다. 

⑥ 주일 지키기의 대원칙은 일요일 노동은 가능한 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성수주일의 성경적 정신

 

칼빈은 루터와 비슷한 신학적인 입장에 있었지만, 주일성수에 대해서는 언약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그는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 다른 개혁자들의 신학에 전적으로 합의했지만, 예배의 구체적인  채택과 주일성수에 대해 루터보다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그렇지만 칼빈은 그의 신학을 계승한 청교도들보다는 훨씬 더 포용적이었다. 칼빈은 주일성수와 관련된 문제의 많은 부분을 ‘아디아포라(비본질적 것들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칼빈에 따르면 안식일 준수에서 안식의 실천은 신약시대에 있어서 주일이라는 한 날에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안식이 우리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직속되는 비결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구약의 안식일이 폐지되기는 하였지만, 거기서 유출되는 원리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았다. 그렇게 발견된 신약시대에까지 이어져야 할 안식의 전통은 첫째 정해진 날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들어야 하며, 성찬의 떡을 떼며 공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며, 둘째 노동에서 자유로워져서 하루를 쉬어야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수하의 종들과 일군들까지 포함된다고 하였다.

 

칼빈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노동을 금하는 것은 안식일에 주신 노동금지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명령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지된 제사에 관한 율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의 주일에도 신자는 노동을 중시하고 휴식을 취하여야 하는데, 이는 율법에 정한 안식일의 노동금지 명령 때문이 아니라, 그 날을 육체의 안식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충분히 역사하실 수 있는 날로 삼기 위함이었다. 노동에서 해방된 가운데 말씀과 은혜, 성도의 교제와 같은 영혼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성도의 마음과 뜻이 더욱 집중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구약의 교회가 옛 창조를 기념해야 했던 것처럼 신약의 교회도 똑같이 새 창조를 기념해야 한다는 언급을 통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엿새 동안의 창조 후에 있었던 하나님의 안식과 동일하다고 해석했다. 또한 그와 동일하게 안식일 제도의 영속성을 주장한 대표적 개혁신학자인 챨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는 신약의 주일제도는 궁극적으로 온 인류에게 적용되어야 할 안식일의 기독교적인 적용으로 보았으며, 주일성수가 종교적 지식을 증진시키는 것으로서, 그것을 못하면 이교의 사상이 팽창할 것임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조직신학에서 구약시대 안식일 제도의 본질적 의미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신약시대 기독교에서는 주일제도가 되었음을 확실하게 밝혔다. 청교도들과 더불어 조나단 에드워즈, 챨스 핫지와 같은 신학자들은 안식일 제도의 영속론을 주장하였다. 물론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구속 경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결코 약화시킨 것은 아니다.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는 청교도들이 탁월한 신앙과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제정한 구체적인 규칙들은 우리 시대에 그대로 답습해야 할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주일성수의 규칙을 율법주의적으로 따르거나 바리새주의적인 태도로 정죄하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청교도들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세칙이 아니라, 그들의 주일성수를 위한 원리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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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Amos님의 댓글

Amos ()

예수님 안식일 주인 이십니다. .지금은 주위의 어려운분들을 돌보는 giving church가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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