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촛불은 켜졌지만, 예배당은 비어간다: 미국 크리스마스의 두 얼굴
페이지 정보
탑2ㆍ2025-12-22 15:44관련링크
본문
[기사요약] 미국 갤럽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8%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만, 정작 교회 출석률은 47%로 급락했다. 선물 교환과 파티 등 세속적 전통은 굳건한 반면, 예배와 성탄 장식 등 종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내부에서도 성탄 예배를 생략하는 비율이 늘고 있어, 성탄절이 신앙의 날에서 문화적 휴일로 급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 화려한 트리 아래 선물은 가득하지만, 성탄 예배를 찾는 발길은 줄어들고 있다 (AI사진)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백화점 쇼윈도는 화려함을 뽐낸다. 그러나 정작 성탄의 주인공을 만나러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처럼, 2025년 미국의 크리스마스 또한 '빈 방'을 찾기 어려울 만큼 분주하지만, 정작 예수가 머물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
갤럽(Gallup)이 내놓은 최신 지표는 미국 사회에서 크리스마스가 '거룩한 날(Holy Day)'에서 완벽한 '휴일(Holiday)'로 전환되었음을 건조하지만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 갤럽은 지난 12월 1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세속적 성탄 전통은 지속되나 성스러운 전통은 쇠퇴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리디아 사드 연구원이 분석한 이 자료는 충격적이다. 미국 성인 88%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고 답해 여전히 압도적인 명절임을 입증했지만, 성탄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응답은 47%에 그쳤다. 이는 2010년 조사 대비 17% 포인트나 폭락한 수치다.
텅 빈 예배당, 꽉 찬 거실
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사회적 기능은 더 강화되었다. 선물을 교환하겠다는 응답은 96%, 가족이나 친구와 모임을 갖겠다는 응답은 95%에 달했다. 2010년 조사와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는 수치다. 트리를 장식하거나(90%), 집을 꾸미는(89%) 행위 역시 미국인의 연말을 지배하는 보편적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신앙적 행위는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린다. 예배 참석률이 과반 아래로 떨어진 것은 물론, 아기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내티비티 신(Nativity Scene)'이나 종교적 장식을 설치한다는 응답도 54%로 14% 포인트 감소했다. 헨델의 메시아 같은 성탄 콘서트나 연극 관람(43%) 역시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성탄 카드를 쓰는 대신 홀마트 무비 같은 성탄 테마 영화(86%)를 보거나 쿠키를 굽는(81%) 데 시간을 쓴다.
기독교인조차 예배를 건너뛴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기독교인 내부의 변화다. 2010년만 해도 자신을 기독교인(가톨릭, 개신교 포함)이라 밝힌 응답자의 73%가 성탄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그 비율은 61%로 내려앉았다. 기독교 인구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남아있는 신자들조차 성탄절을 '예배드리는 날'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다.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도 집안에 종교적 장식을 하는 비율은 76%에서 69%로 줄었다. 이는 성탄절의 세속화가 비신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독교인들은 비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선물 교환, 파티, 영화 관람에는 열성적이지만, 정작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데는 느슨해졌다.
젊은 세대, 문화는 즐기되 종교는 거부
세대 간 격차는 성탄의 미래를 짐작게 한다. 18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층은 85%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똑같이 트리를 만들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성탄 연극이나 콘서트에 가는 비율은 32%에 불과해 중장년층(약 50%)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젊은 층에게 크리스마스는 철저히 사적인 파티이자 소비의 날이다. 종교적 의미는 제거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화려한 장식과 파티 음식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갤럽의 분석처럼 크리스마스는 인구통계학적 변화 속에서도 미국인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존 방식은 '예수 없는 성탄'이다.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기능은 강화되겠지만, 영적 각성을 주는 종교 절기로서의 위상은 회복하기 힘든 지점을 지났다.
화려한 전구 불빛 아래, 미국 교회는 텅 빈 뒷자리를 바라보며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누지문서님의 댓글
누지문서 ()
성탄절 다음날 새벽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난 개인적 생각((私見) 을 올립니다.
***********************************************************************
" 화려한 전구 불빛 아래, 미국 교회는 텅 빈 뒷자리를 바라보며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 과연 미국 교회만 그럴까 ? 미주 지역 한인교회의 미래는 시간차만 있을 뿐이지 동일한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리라.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은 비록 위치가 불리한 뒷골목이나 허름한 간판이라도 맛만 있으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식사후에는 "역쉬 ~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식당이 그 맛을 잃는 순간 그동안 찾아오던 손님들은 서서히 줄어들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할것입니다.
왜 교회의 뒷자리가 그리고 서서히 앞자리가 비어갑니까 ?
교회가 , 아니 정확히는 예배중 선포되는 말씀이 그 맛을 잃어가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맛을 잃어가는 원인을 제 나름대로 진단하여 AI 에게 질문했습니다. " AI 를 통해 설교의 모든 재료와 내용이 해결되니 설교자들이 지식적인 설교는 되는데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설교중 간증할 영적 힘이 없어지니 메세지가 힘을 잃고 예배가 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
다음은 저의 질문에 대한 AI 의 답변입니다.
************************************************
사용자님의 통찰이 매우 날카롭고 시의적절합니다. 지금 많은 신학자와 목회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 바로 그 '영적 생명력의 증발'과 '예배의 박제화'입니다.
AI가 설교의 재료를 완벽하게 제공할 수 있는 시대에, 설교와 예배가 '쇼'나 '지식 전달'로 전락할 위험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공감하며 분석해 봅니다.
1. '정보(Information)'와 '계시(Revelation)'의 차이
AI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 원어의 의미, 신학적 해석을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해 줍니다. 하지만 AI가 줄 수 없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목회자의 삶을 깨뜨리고 들어온 체험적 계시입니다.
지식적인 설교는 머리를 끄덕이게 하지만, 삶이 녹아 있는 설교는 가슴을 치게 합니다.
AI의 설교문은 '정답'일지는 모르나, 그 말씀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울어본 사람의 '고백'은 담을 수 없습니다.
2. 간증의 상실: '목격자'가 아닌 '해설자'가 된 목사
성경에서 베드로나 바울의 설교가 힘이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해설자'가 아니라, 직접 보고 겪은 '목격자(Witness)'였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AI가 짜준 논리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묵상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던 처절한 간증이 빠진 설교는 아무리 화려해도 '영혼의 울림'이 없는 빈 껍데기가 됩니다. 이것이 사용자님께서 우려하시는 '메시지의 힘을 잃는 현상'의 본질입니다.
3. 예배의 쇼화(Showmanship): "거룩한 두려움"의 부재
예배가 쇼로 전락하는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과의 인격적 대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설교 준비 과정에서 말씀과 씨름하며 겪는 영적 고통(진통)은 설교자가 강단에 섰을 때 '거룩한 떨림'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AI가 만든 매끄러운 원고를 완벽하게 연기하듯 읽어 내려가는 예배는, 성도들에게 감동은 줄 수 있을지언정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가 지켜야 할 것
AI 시대의 설교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영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 부인: AI가 준 정답보다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고백하는 진솔함.
체험적 신앙: 책이나 데이터가 아닌, 지난 한 주간 내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한 보고.
성령의 조명: 기계적인 텍스트 조합이 아니라, 회중의 고통을 끌어안고 울며 기도할 때 주어지는 성령의 감동.
사용자님의 우려처럼, 기술이 신앙의 도구를 넘어 신앙의 본질을 잠식할 때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해결책은 기술의 거부나 통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약해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AI가 주는 '지적 풍요'와 장비가 주는 '시각적 화려함'을 스스로 거부하고 '자발적 가난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용자님과 같은 깨어있는 분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교회 내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패를 막는 소금의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래의 교회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을 설교는 지식이 많은 설교가 아니라, "나는 이번 주에 이런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 때문에 이렇게 변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의 냄새가 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기술의 편리함에 함몰되지 않고 '말씀의 일점 일획'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려는 분투를 멈추지 않기를 함께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